[우인호 칼럼] 니들이 법치를 알아?
게맛도 모르는데 법치(法治)를 알 턱이 없다. 홍게맛, 대게맛 구별은 못하지만 게 모양 보고 아는 수준으로 살아도 무탈했다. 법치도 그저 '법에 따른 통치' 정도로만 알고 있어도 충분했다. 사실 깊이 알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법치의 맛까지 구별할 줄 알아야 되는 지경에 다다르고 있다.
극동 지역이 게 산지로 유명한 러시아에서는 우크라이나 관련, '전쟁'이나 '침공'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다. 법에 그렇게 되어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열흘쯤 지났을 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관련해 러시아 정부의 판단과 다른 주장을 하는 언론인을 징역 15년에 처할 수 있는 법안을 공포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 언론들은 "우크라이나에서 '특수군사작전'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군이 '평화유지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침공'을 '특수군사작전'으로, '전쟁'을 '평화유지활동'이라고 각각 했기 때문일까?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80%를 웃돌고 있다. 러시아 국민들은 '나치'에 신음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러시아군이 '특수군사작전'을 펼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현재 상황은 법치일까? 법에 따라 '전쟁'이라는 말을 쓰지 못하게 하니 법치인 것 같지만, "이건 아냐"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맞다. 법치가 아니라고 한다. 법 전문가들은 러시아 같은 예를 '형식적 법치(the Rule by Law, 법에 의한 지배)'라고 규정한다. 형식적 요건만 갖추면 정당하다고 생각하니 법치가 통치의 수단 정도로 전락하는 것이다. 권력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기 위해 법을 수단으로 쓰는 통치 방식인 셈이다.
이게 비단 러시아만의 일일까. 대한민국을 한번 보자.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소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을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통과시켰다. 소속 의원 위장 탈당, 국회 법사위 사보임, 국회 회기 쪼개기 등 법률에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없기에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임기를 일주일 남겨뒀던 그 당 출신 대통령은 이를 또 공포했다. 난데 없이 국무회의를 연기한 것도 법과 규정에 따라 가능한 일이긴 했다. 절차적 정당성이 하나도 없지만, 이 모두 법에 따른 결과다.
러시아군의 '특수군사작전'이 신(新) 나치의 우크라이나 돈바스 주민에 대한 대량 학살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진실이라면, 대한민국의 법이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완전 박탈하는 것이 국민을 위하는 길이란 주장도 '참'이다. 그렇지만 "이건 아냐"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게 '법에 의한 지배(the Rule by Law)'라고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일 터이다. 실제로 우리는 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에 검찰이 진심으로 나서자(공소장에 대통령이 무려 35번 적혀 있다) '검찰개혁'이 시대정신으로 떠받들어지기 시작했다. 검찰에 대한 인사 학살이 자행됐다. 그나마 조국이라는 분이 '내로남불'을 몸소 시현해주셨기에 그 정도였지, 그 분이 없었더라면….
그 결과 수사 개시권과 1차 수사 종결권을 경찰에 넘기는 것으로 검·경 수사권이 조정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탄생했다. 곧이어 상황이 달라졌다. 민주당이 대선에 졌고, 그 당 대선후보였던 분의 이마엔 전대미문의 의혹이 여전히 덕지덕지 붙어있다. 두려움을 넘어서는 공포가 법에 의한 지배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푸틴이 보도지침을 내리고, 중국 공산당이 구글을 막고, 북한 공산당이 주민을 외부와 절연하고 있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형식적 법치와 대비되는 실질적 법치는 '법의 지배(the Rule of law)'로 일컫는다고 한다. 나치 독일 등의 역사적 경험이 쌓이면서 개념이 분화, 발전되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어렵다. 그냥 'the Rule by Law'는 게맛살이고 'the Rule of law'는 진짜 게살이라고 생각하는 게 편할 것 같다. 냉동 명태와 각종 식품첨가물 범벅으로 만든 게맛살은 맛있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건강을 걱정하게 될 수도 있다. 진짜 게살은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10일 출범한 정권은 게맛 좀 아는 사람들이기를 바란다.
우인호 전략기획국장 buchner@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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