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강 칼럼] '사상 최저 출생률' 풀 해법? 차별 해소!

한겨레 2022. 5. 1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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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칼럼]자신이 살던 동네 이웃에는 대학교수 아내와 배관공 남편, 용접공 아내와 의사 남편 부부가 살았다고 한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금처럼 비정규직은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 받는 '마땅한 형벌'처럼 여기도록 가르치는 사회에서 출생률 저하 문제는 개선될 수 없다.
132주년 세계 노동절인 지난 1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주최로 ‘차별없는 노동권! 질좋은 일자리 쟁취! 불평등 체제교체! 2022 세계노동절대회’가 열려 참석한 1만4000여명(주최 쪽 추산) 노동자들이 “모든 노동자에게 차별 없는 노동기본권과 고용불안 없는 질 좋은 일자리를 보장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고등학교 한반에서 한명꼴로 나중에 대기업 정규직이 된다는 통계가 있다. 그런데 그 한명이 대부분 자사고·특목고에서 나오기 때문에, 일반 고등학교는 세 학급에서 한명 정도가 나중에 대기업 정규직이 된다. 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부모에게 질문해 본다. 여러분의 자녀가 나중에 대기업·공기업 정규직이 될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대부분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재벌 계열사 대기업에 청년 직장인들이 새 노동조합들을 설립했다. 이른바 ‘엠제트(MZ)세대 노조’다. 세대를 구분해 사회를 분석하는 시각이 놓치는 것 중 하나는 세대 내 계급갈등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모님이 고시촌 주변에 얻어준 오피스텔에서 온갖 뒷바라지를 받으며 입사시험을 준비하는 청년이 있는가 하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아르바이트 노동을 하면서 자투리 시간에 짬짬이 입사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청년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높은 임금을 받는다는 대기업 청년 직장인들을 몇번 만났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연락을 주고받다가 처음 만난 석·박사급 노동자들은 새 참석자가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아이디가 어떻게…?” 대답을 듣고는 아, 지난번에 이러저러한 내용의 글을 쓴 바로 그 사람이냐고 하면서 반가워하기도 했다. 십여년 전 소방관노조를 준비하는 소방관들이 계룡산 근처 민박집에 은밀히 모였을 때의 모습이 ‘데자뷔’처럼 되풀이됐다. 노동자들은 이렇게 조금씩 변화하며 전진한다.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했는데 그 청년 중 상당수가 결혼 계획은 있지만 출생 계획은 없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이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사회에서 자신의 자녀를 자기처럼 대기업 정규직으로 만들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신규 공무원이나 교사로 임용돼 사회에 첫발을 딛는 직장인들도 대동소이했다. 자신의 자녀를 자기처럼 공무원·교사 임용시험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시킬 자신이 없다고 했다. 예술을 전공한 사람 중에서 “비교적 잘 풀렸다”는 말을 듣는 국립 또는 도·시립 예술단원들을 만났을 때도 거의 비슷했다. 자신의 자녀에게 예술을 전공시켜 자기처럼 만들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 뒤 텔레비전 각종 연예 경연 프로그램에서 “영혼을 끌어모아” 혼신의 힘을 다해 공연하는 예술인들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애잔했다. 우리 사회의 가장 안정적인 직장이라고 여겨지는 곳에서 ‘고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생각이 그럴진대, 중소·영세·하청기업 노동자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떻게 마음 놓고 자녀를 낳을 계획을 세울 수 있겠는가?

유엔인구기금(UNFPA)이 2021년 4월 발간한 ‘2021년 세계 인구 현황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합계출생률은 198개국 가운데 198위로 2년 연속 전 세계 꼴찌를 기록했다. 출생률 저하는 경제성장률 저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래 사회의 재앙이 될 것이라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한 상황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에 차별이 없어져야만 비로소 해소될 수 있다.

그러한 사회가 실제로 가능할까? 충분히 가능하다. 북유럽 나라들처럼 대학교수와 대학교 경비의 연봉에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사회, 의사와 기술직 노동자의 소득에 차이가 별로 크지 않은 사회, 사회임금 비중이 높아 생계비 중에서 자신이 직접 벌어 감당해야 하는 비중이 낮은 사회가 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북유럽 나라에서 공부하다 온 친구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살던 동네 이웃에는 대학교수 아내와 배관공 남편, 용접공 아내와 의사 남편 부부가 살았다고 한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금처럼 대기업·공기업 정규직은 젊었을 때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누리는 ‘당연한 특권’이고, 비정규직은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 받는 ‘마땅한 형벌’처럼 여기도록 가르치는 사회에서 출생률 저하 문제는 개선될 수 없다. “기회의 평등” 못지않게 “결과의 평등”이 중요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노동자들 내부에서의 차별만 살펴봐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장애·성별(정체성)·나이·용모 등에 따른 차별에 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이 철폐돼야 하는 이유는 그들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차별이 없어지는 게 사회 전체에, 심지어 사회적 강자에게도 유익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한 채 문재인 정부가 막을 내렸다. 마음을 모아 더욱 노력해야 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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