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자유 '35번' 외칠 동안 불평등·차별은 '0번'
10일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인권·공정·연대의 가치’를 강조했지만, 우리의 존엄한 삶을 위협하는 현실인 ‘불평등과 차별’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한겨레>는 이러한 사회적 난제 해결을 고민하는 개인·단체에게 취임사 평가를 들었다. 이들은 시장과 기술에만 의존하는 해법으로는 사회·경제적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여성·사회적 소수자 무시
황연주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사무국장은 “대선 기간 내내 여성 유권자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대통령답다”며 “성차별 문제도 ‘사회적 갈등’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린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민주주의 위기 원인으로 반지성주의를 꼽았다는 게 놀랍다”며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구조적 성차별을 증명하는 수많은 데이터를 무시하고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했던 것이 대통령 본인”이라고 말했다.
권영국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변호사)는 “여성 차별과 혐오,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는 반지성의 선거 전략을 전면에 내세워 당선된 대통령이 어떠한 반성도 없이 반지성을 들먹이는 것은 희극이며 본인이 민주주의 위기를 조장한 당사자임을 알고 있는지도 의문”이라며 “민주주의 위기를 반지성주의로 진단하는 것은 자기당착”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정부의 요직을 검찰과 특권인사들로 가득 채우면서 공정과 지성을 입에 담는 것은 모순의 절정이며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지 묻고 싶은 정도다. 내용도 해법도 없는 화려한 단어 짜깁기, 이것이 새로이 맞는 대통령 취임사에서 느끼는 당혹감”이라고 말했다.
노동
권두섭 직장갑질119 대표(변호사)는 “자유 시민과 국민 대부분이 노동자인데 노동 문제에 대해선 한 마디도 언급이 없다”며 “우리 사회는 성장을 못해서 문제라기보다 성장의 과실을 일부 재벌 대기업과 특정 계층만 가져가고 중소기업, 비정규직 등은 거의 가져가지 못해 문제인 것인데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는 고민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권영국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는 “대통령 취임사는 19세기 산업혁명 시기 부르조아의 성명을 연상케 한다. 자유로운 시장과 자본이 지배하는 과학과 기술 혁신이 만들어놓은 불평등과 갈등의 해법을 다시 자유의 확대에서 찾는 철학의 빈곤을 여지없이 드러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나친 양극화와 사회갈등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규정하면서 양극화의 주된 원인인 자유로운 시장과 불평등 문제에 대한 어떠한 해법도 제시하지 않는다”며 “맥락도 없이 불평등을 확대해온 자유시장과 과학과 기술 혁신, 도약과 성장을 양극화의 해법으로 제시하는 무지로 가득하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윤 당선자는 사회 양극화를 문제로 지적하면서도 어떻게 부를 재분배할지에 대한 대책은 없이 ‘빠른 성장’만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하고 있다”며 “지금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는 고용형태와 성별, 기업 규모에 따른 각종 불합리한 임금 격차와 차별을 없애는 것이지 무조건적으로 성장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기후변화
황인철 기후위기비상행동집행위원장은 “취임사에는 기후위기, 생태위기라는 인류가 마주한 초유의 위기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도, 그 해결을 위한 의지와 해법도 담겨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후위기와 생태위기의 뿌리는 경제성장을 우선으로 한 불평등한 사회 구조”라며 “대통령은 양극화의 해결책으로 빠른 성장과 그 수단으로 과학기술을 강조하고 있지만, 시장과 기술에만 의존하는 해법으로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교육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논평을 내어 “자사고 등 특권학교를 유지·확대하겠다고 하고, 교육‘자유’특구를 지정해 학교에 대한 모든 규제를 풀겠다고 밝힌 터라 취임사 가운데 교육 부분에서 자유의 강조가 자칫 ‘교육을 시장화할 자유’, ‘자유로운 선택권 보장을 위한 귀족학교 부활’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렵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만약 교육에서 ‘시장’의 자유를 얘기하며 교육의 공공성을 훼손한다면 윤석열 정부는 거대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건의료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성장을 통한 복지를 하자는 이야기인데 허구라고 생각한다. 복지는 노동력이 없는 사람들까지 고려해야 하는 것” 이라며 “성장을 강조하면 보건의료 분야를 결국 ‘비즈니스’로 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주빈·신다은·남종영·이유진·박준용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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