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자유' 35번 사용했지만 청사진 모호..'반지성주의' 단어 등장[윤석열정부 출범]

문광호 기자 2022. 5. 10.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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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돌출 무대로 나와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16분 분량의 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 ‘국민’과 ‘시민’이란 단어을 각각 15번 언급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많이 쓴 10개의 단어를 역대 대통령의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특색 있는 단어나 구체성을 띤 단어가 적었다. 1997년 이후 두 번째 여소야대 취임 대통령임에도 국회의 협력을 요청하는 단어는 없었다. 대신 ‘반지성주의’의 폐해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당초 비서진이 보고한 30분 낭독 분량의 초안을 대폭 축소·수정해 취임사를 직접 탈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회의사당 앞뜰에서 낭독한 취임사에서 우리 사회가 공유해야할 가치로 자유를 꼽으며 총 35번 자유를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것(보편적 가치)은 바로 자유”라며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이 자유 시민이 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 “자유로운 시장” 등으로 국정 청사진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국민과 시민이라는 단어도 각각 15번, 나라도 14번 썼다. 취임식이 국민들을 대상으로 국정 비전을 설명하는 자리인 만큼 자연스럽게 쓰임도 많았다. 다음으로 많이 쓴 단어는 세계(13회), 평화(12회), 국제(9회), 위기(8회), 연대(6회)다. 코로나19 펜데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국제적 위기가 국내 경제, 사회 전 분야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1987년 직선제 이후 대통령 중 유일하게 윤 대통령만 쓴 단어는 반지성주의와 재건이다. 윤 대통령은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린다”고 했고,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겠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두 단어 모두 전임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의미가 담겼다. 1997년 이후 처음으로 여소야대 정국 속 출범하는 정부의 대통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강조하는 것 외에 협력, 소통, 통합 등의 단어를 쓰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내세워 온 ‘공정과 상식’도 별로 언급되지 않았다. 공정은 3번 언급하는 데 그쳤고 상식은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 취임사는 총 3440자로 약 16분간 낭독했다. 역대 대통령 취임사 분량을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 7170자, 노무현 전 대통령 5103자,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 8688자,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5196자, 문재인 전 대통령 3121자였다. 연설 시간으로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 25분, 노무현 전 대통령 20분,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 27분,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20분, 문재인 전 대통령 11분이었다.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사에서 특색 있고 구체적인 단어를 활용해 국정 운영의 방향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민족(20회)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그는 민족을 자존(8회)이라는 단어와 엮어 ‘민족자존의 새 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7·7 선언’(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 선언)으로 남북 관계 개선에 나섰다. 그는 또 직선제 개헌 이후 당선된 첫 대통령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취임사 전반에서 민주(20회)라는 말도 많이 썼다. 군 출신으로 쿠데타에 참여했다는 색채를 지우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역사 바로세우기 운동’을 추진했던 대통령답게 민족(15회), 신한국(12회), 개혁(5회), 부정부패(4회), 척결(2회) 등의 단어를 많이 썼다.

IMF 외환위기 속 정권을 맡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경제를 26번, 기업을 19번이나 언급하고 극복을 10번 외쳤다. ‘남북’도 14번 써 중요성을 부각했다. 1998년 여소야대 상황에서 대통령에 취임한 김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회의 다수당인 야당 여러분에게 간절히 부탁드린다”며 “오늘의 난국은 여러분의 협력 없이는 결코 극복할 수 없다. 나라가 벼랑 끝에 서 있는 금년 1년만이라도 저를 도와주셔야 하겠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은 ‘협력’이라는 단어를 10회 사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동북아(18회), 평화(17회), 북한(10회) 등의 단어를 많이 써 지향점을 확실히 했다. 기업인 출신으로 경제 대통령을 표방한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는 기업(14회), 경제(11회), 선진화(9회)를 많이 사용했다. 실용(5회), 개방(5회) 등에서도 국정 방향이 읽혔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는 취임사에서 행복(20회), 창조경제(8회) 등을 거듭 언급했다.‘국민 행복시대’, ‘경제 민주화’ 시대를 열겠다는 비전을 밝히기 위함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대통령(33회), 권력(4회), 대화(4회)를 언급하며 권력 분산과 견제, 적극적인 소통을 약속했다. 문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중 예외적으로 국민(24회)보다 대통령(33회)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썼다. 국민들에게 지향해야 할 가치를 제시하기 보다는 자신이 ‘어떠어떠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식의 표현이 많았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이 탄핵당한 영향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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