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히 국민만".. 최연소 동장이 대통령께 한 말씀 올립니다
"무조건 잘 듣고 주민 입장에서 보면 해법"
"공무원이 행복해야 민원인도 행복" 철학
“주민 입장에서 일하면 안 되는 게 없어요. 인구 2만 소담동이나 5,100만 대한민국 운영에서나 똑같이 적용될 겁니다.”
정경식(31) 세종특별자치시 소담동장은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을 TV로 지켜보며 4개월 전 주민센터 소회의실에서 가진 자신의 소박한 취임 행사가 떠올랐다고 한다. 5급 공무원(동장) 직책의 시작을 인구 5,100만 명 큰 나라 국가원수의 새 출발에 곧바로 비하기는 어렵지만, 동장이나 대통령이나 첫날 마음먹은 그 '초심’만은 같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주민이 직접 뽑은 31세 동장님
정 동장은 국내 자치단체를 통틀어 가장 나이가 어린 동장이다. 원래 동장은 지자체장이 임명하는 자리지만, 소담동장은 보통 동장과 달리 주민이 선임에 관여하는 반(半) 선출직이다. 세종시는 관내 공무원을 대상으로 소담동장 공모를 했고, 정 동장은 여기서 프레젠테이션(PT)까지 거치며 4대 1 경쟁률을 뚫고 선택을 받았다.
그는 이날 취임한 윤 대통령에게 “동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복잡한 일을 하시겠지만, 철저하게 국민 입장에서 행정을 펼쳐 주시면 좋겠다”면서 “최일선 공무원들도 일할 맛 나도록 나라를 이끌어 주시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정 동장은 소담동장에 부임하는 날 ‘일할 맛 나는 공무원, 행복한 주민’이라는 각오를 마음에 새겼다고 한다. 그의 각오가 특이한 지점은 정 동장 자신의 얘기가 없다는 것.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보단, 주민과 주민센터 동료들의 만족을 위하겠다는 의지만을 동 운영을 위한 첫 시책으로 삼은 점이다.
그가 자기보다 주민을 앞세운 이유는 2년 전 첫 동장 도전에서 쓴잔을 마셨던 경험에서 얻은 교훈 때문이다. “그땐 제가 제 의욕만 앞세웠더라고요. 뒤에 듣고 보니 제가 정작 주민의 이야기, 주민이 바라는 것에 소홀했던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교훈을 바탕으로 두 번째 도전에서는 주민들에 관한 이야기에만 집중했단다. 이 덕분에 투표권을 가진 30명 주민대표 중 15명의 표를 받아, 전국 최연소 동장이 됐다.
동민 얘기라면 무슨 일이든 들어야
'임명 동장'이 아닌 '선출 동장'이라는 특징 때문에 눈치를 덜 보면서 소신껏 일할 법도 하지만, 그는 주민에게 뽑힌 동장이라는 점 때문에 동민 이야기를 듣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인다고 했다. 정 동장은 “중앙부처와 상급 지자체가 위임한 각종 행정업무는 물론, 수시로 복병처럼 등장하는 자잘한 각종 민원에 대응하면서, 그 일을 처리하는 직원들도 챙겨야 한다”며 “우선 잘 듣고, 직원들과 고민하면 대부분 해결책이 나왔다”고 말했다.
실제 인터뷰 진행 도중 민원인 한 사람이 갑자기 동장실에 들이닥치는 일이 있었지만, 정 동장은 으레 있는 일이라는 듯 태연했다. "주민센터 외벽 유리에 아침 햇빛이 반사돼 눈이 너무 부시다"는 민원을 들고 온 아파트 주민이었다. 정 동장은 “다른 분들이 이런 걸 봤을 때는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오죽 답답했으면 이렇게 직접 오셨을까’ 주민 입장에서 생각하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과격할 수도 있는 행동에 대응하기보다 한발 물러서 도움을 주고, 자신의 편으로 만들면 그보다 더 큰 성과가 없다는 것이다. 소담동은 청사 외벽의 빛 반사를 줄이기 위한 대책 강구에 착수했다.
동료 직원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그의 일이다. 그중 하나가 부임 초 아침 7시 반에 출근을 하다 요즘은 출근 시간을 1시간 늦춘 것이다. 동장보다 나이가 많은 직원들이 'MZ세대 동장'을 어려워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런 일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노력이다. 자신의 방에만 앉아 있지 않고 직원들 책상 사이로 수시로 오가며 듣는 것은 물론이다.
“공무원이 행복하지 않은데, 그 서비스를 받는 주민들이 행복하겠습니까?” 국민들 모두 힘든데 공무원만 잘 살자는 게 아니라, 만족스러운 일터에서 만족스러운 서비스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세종=글·사진 정민승 기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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