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 숨겨졌던 문화재 61건 베일 벗어.. 오운정·석조여래좌상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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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74년 만에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되면서 청와대 내부에 있던 석조여래좌상·오운정·침류각 등 유형문화재를 비롯해 경내 곳곳에 숨겨진 문화유산 수십건도 시민 품에 안기게 됐다.
청와대가 선조들의 정취가 담긴 유산을 감상하는 박물관으로, 일제 강점기 시절 아픈 역사를 되새길 수 있는 학습의 장으로 거듭난 셈이다.
침류각 역시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03호로 지정돼 있으나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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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운정·침류각·석조여래좌상 등 문화재 관람 가능해져
청와대가 74년 만에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되면서 청와대 내부에 있던 석조여래좌상·오운정·침류각 등 유형문화재를 비롯해 경내 곳곳에 숨겨진 문화유산 수십건도 시민 품에 안기게 됐다. 청와대가 선조들의 정취가 담긴 유산을 감상하는 박물관으로, 일제 강점기 시절 아픈 역사를 되새길 수 있는 학습의 장으로 거듭난 셈이다.
10일 문화재청과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청와대에는 내부 20건, 칠궁 권역 17건, 북악산 권역 24건 등 총 61건의 문화유산이 있다. 현 청와대 자리가 고려 문장 때는 남경 별궁으로, 조선시대에는 경복궁 후원으로 사용되면서 관련 유적이 다수 남아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대통령 관저 인근에 있는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 각자다. 하늘 아래 가장 복된 땅이란 의미로 과거 청와대 위치가 풍수지리적으로 길한 땅이라고 여겨졌음을 알려 준다. 천하제일복지 각자 아래와 대통령 관저 뒤쪽 사이에는 물이 나오는 ‘천하제일복지천’도 있다.
당시 고종은 천하제일복지천 주변에 오운정(五雲亭), 침류각(枕流閣) 등을 건립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오색 구름의 신선 세계를 뜻하는 ‘오운’과 흐르는 물을 베개 삼는다는 의미인 ‘침류’를 보면 풍류를 즐길 때 사용됐던 곳으로 추정된다. 오운정은 관저 뒤편에, 침류각은 관저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오운정은 청와대 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정자로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02호로 지정돼 있다. 고종이 건립할 당시에는 ‘오운각’이었는데, 1989년 대통령 관저를 신축할 당시 이름을 오운정으로 바꿔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현액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직접 썼다. 침류각 역시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03호로 지정돼 있으나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시화문과 영빈문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만나는 ‘칠궁(七宮)’에서는 조선시대의 유교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칠궁은 조선의 왕을 출산했지만 왕비가 되지 못한 후궁 7명의 신위를 모신 장소다. 칠궁은 당초 영조 생모이자 숙종의 후궁인 숙빈 최씨 신위를 모신 육상궁이었으나 다른 6개 묘당이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칠궁이라 불렸다. 이곳에는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 신위도 모셔져 있다.
한편 일제 강점기 시절의 아픈 역사가 담긴 문화재도 있다. 바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1977호인 석조여래좌상이다. 학계에서는 석조여래좌상이 9세기 통일신라 불상으로 본디 경주에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공식 명칭도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12년 데라우치 총독에 의해 서울 남산의 총독부박물관으로 이전됐다. 이후 1989년 현재의 북악산 인근으로 옮겨졌고, 2018년 4월 보물로 지정됐다.
청와대 영빈관 인근에 있던 ‘경농재(慶農齋)’와 ‘조선 팔도(八道) 배미’도 일제 총독부 관저를 건립하던 1939년 철거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농재는 1893년 고종이 풍년을 기원하는 뜻으로 지은 재당이다. 팔도 배미는 신무문 밖 후원에 풍년을 기원하고자 조성한 논밭으로 조선 전국 8도를 따서 8구역으로 나눴다. 관풍루·대유헌 등 경농재 부속건물들도 모두 일제 강점기 시절 철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밖에 과거를 보는 시험장이었던 융문당, 무예·활쏘기 등 시험 장소였던 융무당도 1868년 건립돼 현 상춘재·녹지원 인근에 있었으나, 1929년 서울 용산구의 일본 사찰이었던 용광사로 이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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