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 못쓰는 중증장애 딛고.. 초중고 검정고시 만점 받은 이 남자

신정훈 기자 2022. 5. 1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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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를 딛고 고졸 검정고시에 만점 합격한 지체장애 1급 이수찬씨(34).(충북교육청 제공)/뉴스1

“눈으로만 공부할 수밖에 없었어요”

온몸을 움직일 수 없는 30대 지체장애인이 고졸검정고시 전 과목 만점을 받았다.

10일 충북도교육청에 따르면 충북 옥천에 사는 이수찬(33)씨가 지난 9일 치러진 제1회 고졸 검정고시에서 7과목 모두 만점을 받아 합격했다.

이씨는 초등학교 1학년 때 근이영양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 병은 근육이 점점 퇴화하여 움직이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는 난치병이다. 점점 상태가 나빠진 이씨는 걷지도 못하게 되면서 결국 초등학교 3학년 때 학업을 포기해야만 했다.

어머니 최선미(58)씨는 “쉬는 시간에도 화장실을 데려 다닐 정도로 건강이 많이 악화됐다”며 “아이가 다닐 학교도 찾지 못해 결국 수찬이는 집에서만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어머니의 도움 없이는 생활할 수 없다고 한다. 자가 호흡이 어려워 24시간 내내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어야 한다. 앉아있기 어려워 대부분 침대에 누워 생활한다. 양손도 힘이 빠져 두 손을 모아 힘을 합쳐야 무선마우스 키를 겨우 누를 수 있을 정도다.

초등학교 3학년 이후 이씨의 일과는 온종일 TV를 보거나 컴퓨터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2020년 국회의원 선거 때 옥천의 한 학교 투표소를 찾았다가 검정고시를 결심했다.

이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학생들이 사용하는 책상과 의자를 보면서 학교 다니던 시절을 떠올렸다”며 “몸은 불편해도 사회 구성원으로 도움을 주고 싶어 공부를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 평생교육시설인 ‘해뜨는 학교’에서 검정고시와 관련된 정보를 얻고서, 인터넷으로 강의를 들으며 초등과정을 공부했다.

책도 한 장 넘기지 못할 정도로 몸이 불편했지만, 어머니와 장애인자립센터의 활동보조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공부를 이어갔다. 다른 학생처럼 밑줄을 긋지도 못하고 필기도 하지 못해 오로지 눈으로만 공부해야만 했다.

고졸 검정고시는 국어·수학·영어·사회·과학·한국사 등 공통과목과 선택과목 등 7과목을 치른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과목은 수학이었다고 한다. 다른 학생처럼 필기 도구를 이용해 연습장에 계산할 수 없어 오로지 암산으로만 문제를 풀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사람들이 연습장에 문제를 풀듯이 머릿속에서 계속 그림을 그리는 연습을 했어요”라며 “안되면 또 보고 머릿속에 그려보고, 또 보고 반복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하루에 평균 4∼5시간씩 공부에 매진했다.

이씨는 2020년 제2회 초졸 검정고시와 2021년 제1회 중졸 검정고시에서도 만점을 받았다.

이씨는 “아이즈원 장원영씨 팬인데 검정고시에서 ‘국·영·수’ 과목 만점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라며 “검정고시도 그래서 알게 됐고, 꼭 만점을 받고 싶었어요”라고 웃었다.

그는 고졸검정고시 때는 감독관이 그를 대신해 OMR 카드에 답안을 표시해 주는 방식으로 시험을 치렀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대독·대필할 경우 과목에 따라 5∼10분의 시험시간을 더 준다”며 “하지만 이씨는 눈으로만 풀었는데도 시간 연장 없이 일반 응시자와 똑같이 시험을 치러 만점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장애인자립센터에서 신문기사 스크랩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장애인 인권 개선에 관심 갖게 됐다”며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해 장애인 인권 개선에 도움을 주는 것이 목표”라고 앞으로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 “못할 줄 알았다. 도전해보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라며 “저와 같은 아픔을 가진 분들도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이씨가 치른 이번 고졸검정시험에서는 914명의 응시자 중 83.15%인 760명이 합격했다. 최고령 합격자는 중졸 김정례(80) 할머니다. 도교육청은 11일 오후 본청 회의실에서 이들에게 합격증서를 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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