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만 강조한 취임식..초대받지 못한 이들은 "평등" 외쳤다
여의대로에선 전장연 집회 열려
"여가부 폐지 철회하라" 기습시위도
용산 집무실 인근에선 환경단체 집회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 공동대표와 미류 차제연 책임 집행위원은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던 10일 국회2문 앞 농성장에서 단식 농성 30일을 맞았다. 물과 소금, 효소만을 섭취하며 버텨왔다. 지난 2일 국회사무처는 경호와 미관 등을 이유로 들며 취임식 전 자진 철거를 요청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취임식 당일 농성장은 제자리를 지켰다. “저는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반드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가 들려오던 시간 즈음, 철제 울타리에 둘러싸인 농성장 앞 하늘에 무지개빛 채운이 떴다. 농성장 입구에 달린 무지개빛 천과 같은 빛깔이었다.
이날 오전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 약 4만명의 각계 대표와 시민들이 참석했다. 취임식이 열리는 국회의사당 앞은 오전 6시부터 비표를 받기 위한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취임식 참석을 위해 윤 대통령이 탄 차가 국회 정문으로 들어가자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국회의사당역 앞에는 얼음물과 냉커피를 파는 상인도 보였고, 시민들 사이에서는 “축제 같네”라는 말도 들려왔다.
그러나 같은 시각, 취임식에 초대받지 못한 시민들은 취임식장 밖에서 자신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바라는 듯 ‘차별금지법 제정’, ‘장애인 권리보장’, ‘여가부 폐지 철회’ 등을 간절히 외쳤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이날 오후 단식농성 30일차를 맞아 연 기자회견에서 임기 내 차별금지법 제정에 실패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했다. 지난 2월 문재인 전 대통령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남은 임기 동안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했고, 국회는 지난달 말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겠다고 했지만 공청회 일정은 현재 잡히지 않았다. 지오 차제연 공동집행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촛불로 들어선 정권에서는 끝내 평등이 유예됐고 혐오를 일삼던 새 정부는 어떤 각성도 없이 자유와 공정과 연대를 말한다”며 “우리의 삶은 계속되고 평등으로 나아가는 길은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정치권에 다시 한 번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고자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이날 취임사에서 ‘자유’를 여러 번 언급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미류 차제연 책임 집행위원은 “(윤 대통령은) 자유시민에도 자격이 필요해 이들이 교육을 받고 경제적 수준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자유시민이 따로 있고 자유롭지 못한 시민이 따로 있지 않다. 이런 구분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인권의 기본 정신이고, 인권에는 자유와 마찬가지로 평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오늘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자유와 평등의 심판대에 올라가 있다”며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가 평등을 논의할 공론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애인들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 취임식장에서 약 800m 떨어진 여의대로에서도 역시 ‘초대 받지 못한’ 이들이 집회를 열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은 탈시설 예산 등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고 장애인 관련 4대 법안(장애인권리보장법‧탈시설지원법‧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 특수교육법 개정)의 처리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구호를 외치며 손에 든 빨강·분홍 장미를 하늘로 던졌다.
앞서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등은 오전 9시께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여의도역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오체투지 방식으로 기어서 탑승했다. 이후 오전 10시20분께부터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그 가족 등 전장연 회원 90여명은 여의도역 4번 출구에서 여의도공원 방향으로 행진했으나 특별경호구역으로 지정된 여의도공원에는 진입하지 못해 공원 앞 여의대로에서 집회를 열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반대하는 시민들은 국회 앞에서 기습시위를 시도하다가 저지당했다. 이날 여성단체 연합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 공동행동’ 소속 활동가들은 오전 9시40분께 국회 앞에서 현수막을 펼치고 “여가부 폐지를 철회하라”는 구호를 외치다 경찰 등에 의해 150m 가량 떨어진 경호구역 바깥으로 끌려나갔다. 차 벽 앞에서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명숙 인권네트워크운동 바람 활동가는 “박근혜 탄핵 무효라는 현수막은 그대로 두더니 우리는 현수막을 펴자마자 경찰이 몰려와 막았다”며 “윤석열 정부가 외면한 여성의 현실을 전하기 위해 현수막을 펼쳤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윤 대통령의 집무실이 마련된 용산에서도 집회가 열렸다. 환경단체 연대체인 한국환경회의는 삼각지역 11번 출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는 기후위기와 생태위기 대응을 최우선 정책 기조로 삼으라”며 탈핵·에너지전환 위주의 에너지정책 수정 등을 요구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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