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 만에 빗장 연 청와대 첫날 2만명 찾아.. "정말 궁궐과 같은 곳"

이학준 기자 2022. 5. 1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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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2시간마다 6500명씩 입장
"정문 개방" 외침과 함께 74년 만에 문 열린 청와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청와대 경내서 인증샷과 피크닉
어제까지 문재인 전 대통령 생활했던 관저 인기
10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정문이 열리고 있다./뉴스1
청와대 정문 개방!

10일 오전 11시 38분, 굳게 닫혀 있던 청와대 정문이 시민들의 함성과 함께 활짝 열렸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74년 동안 일반인의 출입이 불가능했던 청와대가 빗장을 여는 순간이었다.

청와대 정문이 열리자 국민대표로 선정된 74명은 봄의 약속을 상징하는 매화꽃을 흔들며 청와대 경내로 첫 발을 내딛었다. 그 뒤로 6500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정문으로 물밀 듯이 쏟아졌다.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청와대 경내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이날 오후 6시까지 청와대를 찾는 시민들은 총 1만9500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를 찾은 시민들은 남녀노소 다양했다. 아이들은 부모 손을 꼭 잡은 채 발걸음을 옮겼고, 노년의 어르신을 모시고 온 젊은 남녀도 있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청와대를 찾은 시민과 부산에서 올라온 단체 방문객들도 눈에 띄었다.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에서 열린 정문으로 시민들이 입장하고 있다./뉴스1

정문을 통과한 시민들은 북악산 봉우리 아래 청와대 본관이 보이기 시작하자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본관을 비롯한 청와대 경내 건물 내부로는 진입할 수 없었지만, 시민들은 휴대전화를 유리창에 밀착해 내부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햇볕이 내리쬐는 더운 날씨였지만 시민들 사이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본관 인근에서 만난 정종임(69)씨는 “경기도 안산에서 아침 일찍 왔는데, 청와대를 구경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며 “죽기 전에 이런 데 와볼 수 있겠나 했는데, 응모에 당첨돼 다행이다”고 했다.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를 찾은 시민들이 유리를 통해 본관 내부를 바라보고 있다./뉴스1

청와대 본관은 대통령 집무와 외빈 접견 등을 위한 공간으로 청와대의 중심 건물이자 청와대의 얼굴이다. 15만개의 청기와가 전통 궁궐 양식에 따라 지어진 팔작 지붕 위에 올려져 있는 모습으로 1991년 노태우 정부 때 신축됐다. 수문사 군사들을 위한 건물 ‘수궁’에 자리 잡았던 옛 청와대 본관은 김영삼 정부 때인 1993년 철거됐다.

청와대 본관 다음으로 인기가 많았던 곳은 대통령과 가족들의 거주 공간인 관저였다. 대통령의 사적 공간인 만큼 청와대 경내 시설 중 접근이 가장 어려웠던 곳이라 시민들의 호기심도 끊이지 않았다. 시민들은 경비를 서고 있던 경찰관들에게 “문재인 대통령이 실제 생활한 공간이냐” “어제도 여기 있었던 것이냐” 등을 물었다. 한 시민은 “윤석열 대통령은 이 좋은 데를 놔두고 왜 다른 곳을 가냐”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10일 대통령과 그 가족들의 생활공간인 관저에 시민들이 들어가고 있다./이학준 기자

관저 인근 풀밭은 아예 ‘피크닉’ 명소가 됐다. 시민들은 각자 가져온 돗자리를 그늘에 펴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챙겨온 김밥·빵 등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청와대의 자유로운 이용을 약속한 만큼 이를 제지하는 경찰관은 없었다.

관저에서 길을 따라 내려오면 보이는 녹지원(綠芝園) 인근은 계곡, 연못, 나무, 꽃이 있어 시민들의 ‘포토존’으로 변신했다. 녹지원은 사계절 내내 풍경이 바뀐다고 해서 청와대 경내 최고의 정원으로 꼽힌다. 120여종의 나무와 역대 대통령의 기념 식수도 볼 수 있다.

문현숙(61)씨는 “대통령 취임식은 초대된 사람만 가는 것인데, 일반인도 청와대에 와서 새로운 정부를 환영하는 행사에 동참할 수 있어 기분이 좋다”고 했다. 이어 “실제 청와대에 와 보니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나가기 싫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정말 궁궐과 같은 곳”이라고 덧붙였다.

200년 넘은 춘양목으로 만든 청와대 경내 최초 전통 한옥 상춘재(常春齋)도 시민들의 이목을 끌었다. 청와대 본관이나 관저보다는 인파가 적어 사진 찍기가 수월했다. 외빈 접견 등에 사용되는 상춘재는 1983년 4월 전통 한옥식 가옥으로 만들어져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과거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 관사 별관인 ‘매화실’이 철거된 자리에 지어졌다.

10일 200년 넘은 춘양목으로 만든 청와대 최초 전통 한옥 상춘재에서 시민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이학준 기자

향후 청와대 방문객은 더 많아질 전망이다. 대통령실 관리비서관실에 따르면 지난 4월 27일부터 3일 동안 청와대 관림신청을 한 시민은 112만명이 넘는다. 관람을 신청한 시민들이 모두 온다면 11일부터는 매일 3만9000명이 청와대를 방문하는 것이다.

청와대 터의 역사는 고려 숙종이 1104년 남경 궁궐을 완성시키면서 시작됐다. 이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고 경북궁을 창건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경복궁이 불탄 뒤로는 제대로 된 관리가 되지 않았다.

지난 9일 개방되기 전인 청와대. /뉴스1

청와대 터가 다시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고종 때인 1868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다. 당시 흥성 대원군은 이곳에 경무대(景武臺)라는 후원을 지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총독 관저가 들어서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일본이 패망하자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면서 조선총독 관저를 이어받았다. 관저 이름은 흥선대원군이 지었던 후원 이름인 경무대로 했다. 경무대라는 이름은 1948년부터 1960년까지 12년 동안 계속됐다.

경무대가 청와대로 바뀐 것은 윤보선 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다. 당시 윤보선 전 대통령은 경무대 이름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했고, 당시 언론인이던 이영상은 화령대(和寧臺)와 청와대(靑瓦臺) 두 가지 이름을 제시했다. 청와대는 미국 백악관(White House)을 염두에 둔 것으로 관저 지붕을 덮고 있는 푸른 기와에서 착안한 것이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선택했고, 당시의 청와대가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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