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 함께 되살린 '지역의 잊힌 역사', 대한민국이 기억하다

김지훈 대전MBC 기자 2022. 5. 10.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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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속으로] 김지훈 대전MBC 기자
다큐 '기억의 봄, 3월 대전' 취재기

모두가 기억하는 4·19혁명, 자유당의 독재와 부정부패에 맞선 청춘들이 이 땅에 자유·민주·정의를 아로새기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진정한 출발을 알렸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는 1960년 2·28대구민주의거와 3·15마산의거는 일찌감치 역사의 평가를 받았지만, 1960년 대전지역 7개 고등학교, 1600여명의 학생이 참여했던 3·8민주의거는 여전히 기억의 저편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팔순을 넘겼어. 우리가 떠나면 잊혀져. 지역 언론에서 당시의 역사를 기록해주면 어떻겠나?” 3·8민주의거에 참여했던 김영광 전 대전MBC 보도국장은 지난해 한 식사 자리에서 씁쓸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 봄의 기억을 소환하는 작업, 3·8민주의거를 다룬 첫 다큐멘터리는 이렇게 시작됐다.

지역의 잊힌 역사, 62년 만에 봉인은 해제됐지만…

암담했다. 본격적인 자료 수집에 나섰지만 3·8민주의거 당시를 담아낸 자료는 흐릿한 흑백사진 5장과 20명의 체험담이 담긴 증언록이 고작이었다. 그나마 증언록에 실린 20명 중 6명은 세상을 떠난 상태였다. 한마디로 방송용 다큐멘터리로는 부족한 주제였다. 하지만 어르신과의 약속을 그대로 저버릴 순 없었다. 재연 영상을 확보하기 위해 먼저 지역 연극 극단 2곳과 접촉했다. 3·8민주의거 당시 1600여명의 학생들이 학교 담장을 넘어 대전 곳곳을 행진하고, 이 과정에서 경찰에게 무자비한 진압당하는 장면은 차치하고라도 당시 민주의거 참여자들의 순수한 열정과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의지만이라도 오롯이 담아내겠다는 의도였다. 돌아온 답변은 “다큐 제작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연극으로 무대에 올리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차가운 거절이었다.

시민과 함께 그날의 함성을… 시민 참여 독립영화 추진

연극이 어렵다면 독립영화는 어떨까? 다양한 독립영화를 제작해온 배기원 감독이 뜻을 같이했다. 우선 62년 만에 부활하는 3·8민주의거의 기억을 제대로 고증하기 위해 당시 대전고 교사였던 95세의 조남호 선생 등 참여자 20명에 대해 심층 인터뷰를 실시했다. 시민과 함께 영광의 그 날을 재연하기 위해 시민배우 모집도 진행했다. 대전 시민들이 영화 배역을 직접 맡아 62년 전 3·8민주의거를 직접 느껴보고 그 기억을 공유하자는 취지다. 시민배우 모집 PR을 실시해 진행된 오디션에는 무려 300여 명이 지원할 만큼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선발된 20여 명의 시민배우 등 배우와 스태프 100여 명의 열정이 담긴 40분 분량의 시민 참여 독립영화 <대전, 1960>은 이렇게 탄생했다. 시사회에 참석한 민주의거 실제 참여자들은 “너무 깊은 감명을 많이 받았다.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라며 잊힌 역사를 제대로 되살렸다고 평가했다.

김지훈 대전MBC 기자

3·8민주의거를 담아낸 첫 다큐멘터리와 시민 참여 독립영화도 나름의 의의가 있지만, 취재 과정에서 새롭게 발굴된 역사적 사실들이 추가돼 국가기념식에서 소개된다면 더 큰 의미를 가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마침 국가보훈처가 2022년 3월8일 3·8민주의거 국가기념식을 준비 중이었다. 제작진은 국가보훈처와 접촉해 3·8민주의거 관련 생생한 육성 증언들과 시민 참여 독립영화 제작, 3·8정신의 대한민국 민주화 영향 등을 자세히 소개했다. 마침내 다큐에 사용된 다양한 영상자료와 독립영화 등이 국가기념식에서 소개될 수 있었다. 3·8민주의거가 대한민국 민주화의 또 다른 출발점이라는 역사적 재평가를 받게 됐고, 시민들의 힘이 보태져 대한민국이 기억하는 당당한 역사로 거듭난 순간이었다.

기억의 조각 맞춰가는 건 이제 우리의 몫

“이런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지 달려가서 봉사할 생각입니다. 앞으로 살면 얼마나 더 살고, 활동할 수 있겠어요? 남은 여력이 있는 한 이런 활동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3·8민주의거 주역 중 한 분인 최우영 선생이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서 3·8민주의거 특별 수업을 한 뒤 꺼낸 말이다.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3·8민주의거에 대한 내용을 전혀 들어본 적이 없어서 대전 시민으로서, 학생으로서 부끄러웠다”며 “저희가 좋은 세상에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했고, 지금 삶의 태도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음미하는 과정이다. 정의롭지 못했던 시대, 1960년 3월 그날의 용기는 역사를 바꾸는 힘이었고 민주화를 향한 긴 여정의 출발이었다. 모든 것이 기억의 조각에 의지한 역사지만 그 파편 하나하나를 맞춰가고 이어가는 건 이제 우리의 몫이다. 1960년 3월, 우리는 그날의 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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