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중심지' 청와대 74년 만에 열렸다..시민 문화공간으로
한국 현대사에서 최고 권력자들이 74년간 사실상 전유했던 공간인 청와대의 커다란 철문이 오늘(10일) 오전 11시 37분 활짝 열렸습니다.
손에 매화꽃을 든 국민대표 74명을 필두로 사전 신청을 거쳐 당첨된 사람들이 '청와대 정문 개방'이라는 구호와 함께 일제히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국민대표는 인간문화재와 서울시 문화해설사, 인근 학교 관계자들로 구성됐으며, 외국인도 일부 포함됐습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고 권력자들이 청와대에 머문 기간이 74년이라는 점을 고려해 대표 74명을 선정했으며, 매화는 윤석열 대통령이 봄이 가기 전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고 했던 약속의 실천을 뜻한다고 행사 진행자는 설명했습니다.
개방에 앞서 청와대 서쪽과 동쪽에서 각각 출발해 정문 앞에 집결한 농악과 퍼커션(타악기) 공연단이 음악을 연주하며 흥을 돋웠습니다.
청와대 개방 현장은 윤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국회에 설치된 스크린으로 실시간 중계됐습니다.
시민 품에 안긴 청와대는 문화 공간으로 완전히 변모했습니다.
정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정문을 통해 들어가는 데에만 8분이 걸렸습니다.
입장객들은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와 한국문화재재단이 청와대 개방에 맞춰 오늘 개막한 궁중문화축전 공연을 감상하고, 곳곳을 다니며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청와대 권역 입장과 퇴장은 정문, 영빈문, 춘추문 등을 통해 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에만 사전 신청을 거쳐 당첨된 2만6천 명이 청와대 권역에 입장해 경내를 자유롭게 둘러볼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19 확산 이전 청와대 일일 관람객은 1천500명 수준이었습니다.
궁중문화축전 장소에 처음 포함된 청와대 권역에서는 다양한 공연과 체험 행사가 이어집니다.
대정원, 춘추관 앞, 녹지원, 영빈관 앞, 칠궁 등에서 농악, 줄타기, 퓨전 음악 공연 등이 펼쳐집니다.
관람객은 기존 청와대 관람 동선에 있던 본관, 영빈관, 녹지원 외에도 관저, 침류각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청와대 불상', '미남불' 등으로 불린 보물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과 오운정도 관람할 수 있습니다.
다만 건물의 내부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권역 전체를 여유롭게 관람하는 데는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청와대는 역사적으로 고려시대 남경의 이궁이 있었다고 전하며, 조선시대에는 경복궁 후원으로 사용됐습니다.
1860년대 경복궁을 중건한 고종은 청와대 권역을 창덕궁 후원과 유사한 기능을 갖춘 곳으로 조성하고자 했습니다.
경복궁 중건 당시 배치도인 '북궐도형'과 '북궐후원도형'을 보면 청와대 권역에는 오운각, 융문당, 융무당 등이 있었습니다.
오운각은 휴식 공간이었고, 융문당과 융무당에서는 과거 시험을 치르거나 군사 훈련을 했습니다.
일제는 경복궁 후원 건물들을 허물고 총독 관저를 지었으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최고 권력자들이 이곳을 관저 부지로 활용했습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때는 '경무대'라고 했으나, 윤보선 전 대통령이 입주하면서 '청와대'로 개칭됐습니다.
정치적·역사적 상징성 덕분에 청와대 주소는 일제강점기부터 '광화문 1번지', '세종로 1번지', '청와대로 1번지' 등으로 정해졌습니다.
청와대가 개방되면서 조선시대 한양의 주산인 백악산(북악산), 청와대, 경복궁, 광화문 앞길인 세종대로, 숭례문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중심축을 도보로 여행할 수 있게 됐습니다.
청와대 개방에 앞서 오전 7시에는 청와대 서쪽 칠궁과 동쪽 춘추관 인근에서 백악산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열렸습니다.
문화재청은 종로구, SK텔레콤과 함께 백악산 명소 10곳을 안내하는 증강현실(AR)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서울시는 청와대 개방 행사가 예정된 22일까지 청와대 주변 지하철역인 안국역과 광화문역을 지나는 3·5호선에 전동차를 추가로 투입하고, 서울 도심을 순환하는 버스를 운행합니다.
이달 23일 이후 청와대 개방 계획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홍순민 명지대 교수는 "백악산, 청와대 권역, 경복궁은 조선시대 한양을 설계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주목했던 곳"이라며 "청와대 개방으로 사람들이 역사도시 서울의 정체성이 깃든 공간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유영규 기자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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