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兄에게 바치는 병동의 노래.. 불가 삼계육도 윤회 따라 또 만나리
■ 그립습니다 - 유영식(1973~2021)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이기를/ 창밖에 오가는 군중들/저 속에 내가 있었으면/ 있었으면/ 그러나 저 꿈 이룰 수 없는 여기는 암 병동이다./ 신전을 오르듯 눈을 감고 걷는다./ 거치대에 집어등처럼 매달린 링거병에/ 봄볕이 짤그랑거릴 뿐/ 모두는 그렇게 입을 다물고/ 병동 복도에서는/ 침묵으로 인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오는가 눈물은/ 병동의 불빛이 하나둘 자정을 더듬는 밤/ 얼굴은 창호지를 바른 듯 창백하고/ 뼈와 살이 육신의 흔적을 지우려/ 봄밤을 서성거리면/ 병실 벽시계의 야윈 눈빛은/ 나약한 자신의 기도에 눈물을 흘린다./ 밤이슬 아직 잠든 새벽/ 간호사는 말벌 침 같은 주삿바늘을 또 꽂는다./ 팔뚝 너머로 느리게 꿈틀거리는 흑사(黑蛇)가/ 충혈된 눈을 파먹고/ 파도를 잃어버린 밤바다는/ 4월은 목련꽃 한 송이 들고/ 이승의 마지막 다리를 건너온다.
그렇게 가는가 슬픔은/ 낙하지점을 찾는 숨소리가 거칠게/ 간극을 좁힌다./ 한 움큼씩 뽑혀 나오는 생의 끝자락은/ 구름 밖 세상 어디에 나부끼고/ 동공 속으로 사라지는 이승의 인연은/ 차마 손은 놓지 못한 채/ 가지 말라고 가지 말라/ 옛날 부부싸움 하던 큰소리로 욕 한번 해 보라/ 문을 걷어차며 나가보라고/ 당신과 함께해 온 저 파랑 같은 날들을/ 어떡하라고 무정하게…무정하게 떠나느냐고.
그녀가 울부짖는 동안 그의 몸은 점점 차가워진다./ 그는 무슨 말을 하려는 듯 그녀의 손을 잡는다./ 그녀의 손이 청색의 입술에 닿는 순간, 그는 평온의 눈을 감는다./ 하얀 숨소리가 간극을 좁혔다 멀어진다./ 벽시계의 초침소리가 점점 느려지는 A병동 5인실 2002호/ 이제 돌아가자고/ 어서 돌아가자고/ 길을 재촉하는 목련 꽃잎이/ 창밖을 기웃거리는 밤이다.
지난해 4월 그는 떠났다. 입원실 창밖 하얀 목련이 데리고 갔다. 목련꽃 걸음걸음 뒤돌아보며 바람 걸음 앞세워 그는 떠났다. 누가 불러 갔을까. 하얀 시포(屍布)가 눈물 밖 그 모습 감추려 돌아서는 밤, 달빛은 차마 미안한 듯 구름 뒤로 가만가만 길을 비춰주었다. 이승의 인연 하나하나 눈물로 부르며 구름계단 건너 건너 하늘로 갔다. 그날 밤 반짝이는 별이 되었다. 봄이면 피어나는 목련이 되었다. 산비탈 걸터앉아 피가 맺혀 울었는지 올해는 자목련이 피었다.
유영식 형, 잘 계시는가?
작년 이맘때 남두열 국장과 강남성모병원 입원실을 찾았었지. 그때 입원실 침대에 노란 개나리처럼 누워 금방 퇴원할 테니 나가면 막걸리 한잔하자고 약속했었지. 그러나 그 약속 어느 구름에 적어두었는지 바람이 다 지워버렸더군. 여기는 그날처럼 꽃들이 피었네. 영식이 형 떠나던 그날도 지천에 꽃들은 피어 꽃잎 몇 장 징검돌을 놓고 요단강 건너던 그대 모습 아직 생생한데 벌써 1년이 지났구먼. 그러게, 뭐가 그리 급했던가. 아직 40대의 나이에 YTN에서 활기차게 일하고 그 능력 인정받아 한국조사기자협회 회장까지 맡아 남보다 더 바쁘게 살아온 그 패기는 어느 별을 잘못 건드려 미움을 샀는지.
옛말에 잘난 놈 먼저 데려간다고 했듯,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여 냉정과 합리의 일 처리 능력이 죄가 아니었을까. 오늘 그대 떠난 뒷모습 바라보며 우리는 기도의 잔을 나눴네. 어쩌겠는가. 그대 없으니 잔 하나는 비워 둘 수밖에.
언젠가 우리 태국 파타야로 해외 워크숍 한 번 더 가자던 약속은 아직 유효하던가? 혹여 그 약속도 어느 구름에 잘못 적어둔 건 아니겠지? 그때 부족한 경비 아끼려 택시 한번 못 타고 털털거리는 ‘툭툭이’만 땀나게 타던 그 책임감을 우리는 모른 척 투덜거리며 회장 그만두라고 떼쓰던 파타야의 푸른 물결!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웃으며 노상에서 술잔 기울이던 밤 푸른 그날의 추억들, 그 추억 그리워 목련꽃 피는 봄밤 반짝이는 별 하나 불러 전갈 보내면 내 기꺼이 우리 자주 만나던 서대문 그 통술집 막걸리 두어 병 구름 실어 보내겠네.
잘 있게나 친구여! 우리 불가의 삼계육도 윤회 따라 또 만나리….
시인 김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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