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이고, 아이를 키우는 백지선 작가가 가장 잘한 일은 '입양'[플랫]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 저자 백지선 작가가 사는 법
바야흐로 가정의 달이다. 5월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외에도, 한부모가정의 날(5월 10일)과 입양의 날(5월 11일)이 연이어 있다. 공식 ‘빨간 날’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 속 가정을 대표한다. 여기에 이어 ‘비혼 입양가정’이라는 사뭇 낯선 교집합이 등장했다. 지난 2월 출간한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또다른우주)의 저자 백지선씨(49)와 큰딸(12), 작은딸(9)의 이야기다. 비혼인 백씨는 두 딸을 3년 터울로 입양해 키우고 있다.
이 책의 부제는 ‘결혼도 출산도 아닌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다. 정작 입양과 비혼을 강권하지 않고, 하물며 ‘비혼 입양’을 홍보하지도 않는다. 다만 가족이 무엇인지, 주어진 가족 말고 내가 선택해 꾸려갈 수 있는 ‘가족’은 어떻게 형성할 수 있는지 한 단면을 담백하게 보여준다. 백지선씨를 지난 4월 28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가 ‘비혼 입양’에서 본 가능성과 가족의 의미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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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그리고 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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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선씨는 2010년 첫째를, 2013년 둘째를 입양했다. 결혼을 하지 않은 ‘비혼’ 상태였다. 형식적으론 ‘한부모가정’이긴 하나, 한부모가정 대부분이 이혼·사별을 겪었거나 미혼모·미혼부인 점, 방송인 사유리씨처럼 직접 임신과 출산을 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비혼 입양가정’이란 결은 확실히 독특하다. 저서에서 그는 “두 아이를 입양한 것은 지금까지 내가 한 일 중에서 가장 잘한 일”로 꼽았다. 그에게 두 딸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님”이다.
-입양엔 만만찮은 결심이 필요했을 것 같다. 어떤 고민을 했나.
“고민하거나 마음에 걸리는 건 없었다. 우리 부모님은 친부모에다 이혼도 안 하고 키웠지만,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 같은 부모는 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애정이 하나도 없는 분이었다. (비혼 입양은) 내가 용감해서라기보다는 정상가족의 허상을 너무 어릴 때부터 깨달은 탓이다. 그러면서 혈연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아이를 입양하고 싶었고, 아이를 키우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혈연의 중요성을 반박하는 가장 큰 관계가 부부 아닌가. 30여년 동안 따로 살다가, 서로가 바뀌기 어려운 나이에 만나 늙어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사는 부부도 많다. 이것이 어떤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생판 모르는 이성이 만나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내가 아이를 입양해 아기 때부터 키우는 건 성공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남들이 하는 대로 하는 게 안전해보이니 결혼은 안전하고 입양은 위험하다고 흔히들 생각하는데, 혼인보다 입양의 성공률이 훨씬 더 높으리라고 확신한다.”
백씨의 입양은 독신자도 입양을 할 수 있게끔 때마침 제도가 바뀌면서 가능해졌다. 2006년 12월 30일자로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 시행규칙이 개정됐다. 이를 통해 ‘양친 될 자의 자격 조건’ 중 ‘혼인 중일 것’이란 단서가 빠졌다. 보육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공적보호를 받는, 양육자로부터 분리된 ‘요(要)보호아동’을 독신자가 입양하는 경우의 수가 열리게 됐다.
-유사한 사례를 참고하기 어렵지 않았나. 어떤 절차를 거쳤나.
“아마 선례 자체가 거의 없는 희박한 사례였을 것이다. 입양기관에서 꼼꼼하게 상담을 진행했다. 부부가 애를 입양한다고 하면 흔히 납득하는데, 내 경우엔 ‘왜 결혼을 하지 않았냐’, ‘혹시 남성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냐’ 등을 물어보며 자세하게 상담했다. (혼자 돈을 벌어야 하는) 비혼이기 때문에 경제적 부분도 엄격하게 봤다. 특히 아이를 혼자 키워야 하는 점을 고려해 가족들도 상담에 참여했다. 아이를 키우는 건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입양률이 전반적으로 낮아 비혼에게도 순번이 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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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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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늘 정서적 허기를 채워줄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싶어하지만, 이성과의 결혼을 통해서만 가족을 만들 수 있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덫에 걸리기도 한다.”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 속 백지선씨의 진단이다. 그가 자신의 부모, 특히 끝내 아버지와 이혼하지 않은 어머니를 보며 깨달은 바이기도 하다. 사회가 부여한 ‘정상가족’에 대한 집착이 덫이라면, 대안은 무엇일까. 이 대안은 새로운 ‘가족’론을 필요로 한다.
-가족에 관해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가족이란 ‘정서적으로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사람들’이다. 어떤 의미에선 친구나 공동체도 가족이다. 누구에게나 가족이 필요한데, 지금 가족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영화에서처럼 ‘로맨틱한 사랑에 빠져 결혼하겠다’는 너무 현실과 멀다. 굶어 죽지 않는 건 국가에서 해줄지 몰라도, 자신을 ‘정서적으로’ 지켜줄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고민이 있을 때 얘기할 사람, 병원에 입원하거나 늙어서 요양원에 갔을 때 나를 찾아와줄 사람이란 건 젊었을 때부터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 만들 수 없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너무 외로워지는데, 가족을 만들지 않으면 어떻게 사나. ‘쿨하게 연애만 하자’ 같은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비혼으로 아이를 입양하거나 사유리씨처럼 낳는 방법도 가족을 이루는 하나의 대안이다.
나는 아이들을 입양함으로써 공고한 관계를 구축했다. 애들을 키우자는 공동의 목표 덕에 우리 (혈연적 의미의) 가족이 뭉치게 됐다. 두 아이가 나의 가장 강력한 결속을 이루고 있지만, 사실 이 결속은 아이들과 아이들의 할머니-이모-삼촌-사촌 같은 관계에까지 연결된다. 나와 우리 언니의 관계뿐만 아니라 내 딸과 이모의 관계도 공고하다. 딸이 나와 싸우고선 이모에게 가서 하소연할 수 있는 것이다.”
입양은 흔히 한국 드라마에서 ‘반전 소재’로 이용된다. ‘A가 알고 보니 B의 딸이었다’는 식이다. 자신이 입양됐다는 걸 알게 된 등장인물이 방황하거나 탈선하는 것 또한 클리셰다. 이는 어디까지나 ‘비밀입양’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그렇다. 백지선씨는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정보를 제공했다. 씩씩한 둘째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배우는 수업시간에 손을 들고 자신이 “입양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두 딸이 살아가면서 겪게 될 편견과 난관에 대해 “나와 같은 고민, 같은 고통을 겪는 자매가 서로를 지탱하는 강한 지지대가 돼줄 것”이라고 했다.
-입양 사실을 어떻게 알렸나. 충격은 없었나.
“입양할 때 입양교육을 의무적으로 거쳤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공개입양을 권한다. 영원한 비밀은 없고, 오히려 아이가 나중에 알게 되면 상처를 극복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첫째의 경우는 네 살 즈음 둘째 입양을 위해 입양기관을 같이 다니며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그러면서 ‘아 엄마가 나도 이렇게 데려왔구나’를 받아들였다. 우리 가족이 전혀 숨기질 않았으니 둘째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또 유아를 대상으로 한 입양에 관한 그림책이 많이 나와 있다. 그리고 사실 아이들은 그런 문제를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 가족이 이상하게도 코로나19에 아무도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애들이 ‘우리 가족은 슈퍼유전자’라고 했는데, 그러면 나는 ‘너랑 나랑 유전자 다르거든’ 식으로 (농담을) 했다. 분위기 잡고 심각하게 하는 게 아니고, 자연스럽게 웃으며 이런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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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워킹맘’이 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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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선씨는 책 서문에서 비혼 입양 가정의 장점으로 “배우자가 없으므로 어머니, 자매가 스스럼없이 드나들며 육아를 도와준 점”과 아이들이 “흔한 부부싸움 한 번 본 적이 없는 점”을 꼽았다. 양육 갈등이나 부부관계 같은 ‘부부 사이’의 리스크를 아이들이 겪을 일이 없다는 뜻이다. 그는 “우리 아이들은 심각한 갈등을 경험한 적 없이 늘 안정적인 환경에서 양육됐다”고 했다.
-서문 내용은 한국의 ‘웃픈’ 현실로 느껴진다.
“비혼으로 아이를 키워도 별로 문제가 안 된다 생각한 건 한국 남성의 육아참여율이 워낙 낮아서다. 육아 때문에 여성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경제력을 잃는 상황이 많지 않나. 여성의 입장에선 친정엄마와 육아하는 게 오히려 더 보편적이기 때문에 내 선택도 무모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한국 노동문화, 직장의 문제가 있다. 남편이 회사일만 죽어라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그가 성평등 의식이 있다 하더라도, 부부 사이가 좋더라도 육아를 같이할 수가 없다.”
-정책 대상이 주로 혼인관계 내에서의 출산을 상정하고, 비혼 양육을 특별히 권하거나 언급하진 않는 것 같아보인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아마 정부가 대놓고 혼외출산을 장려할 순 없긴 하지만 이미 제도적인 장벽은 없앴다. 예를 들어 맞벌이 부부의 경우 여성에 이어 남성이 육아휴직을 할 경우 수당을 더 주고, 한부모가정도 혼자서 두 번 휴직할 경우 수당을 준다. 내세우진 않지만 혜택은 비슷하다. 무엇보다 여성이 경제력을 가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비혼 입양이든 결혼해 출산하는 것이든 경제력이 관건이다. 그 경제력은 남편이 가족을 부양하고 아내는 시간제로 일하는 차원이 아니다. 남성과 대등한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 경제력이 없는 상태에서 한부모가정, 비혼가정이 늘어나면 정말 열악해질 수 있다. 지금처럼 한부모가정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혼외출산을 권장했다간 더 취약해질 것이다.”
📌[플랫]‘자발적’ 비혼모 사유리
📌[플랫]14명의 비혼모 작가가 쓴 ‘결혼은 모르겠고, 아무튼 아이는 있어요’
-워킹맘으로서 필요한 지원은 무엇인가.
“국공립 어린이집은 무료에, 아이돌보미도 지원받을 수 있어 (명목적인) 제도상으론 별문제가 없다. 그런데 실제로 일할 때 불편을 느끼는 부분은, 아이돌보미를 쓰려면 최소한 며칠 전에 예약해야 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갑자기 일이 생겨 야근할 경우 지원을 받기가 힘들다. 이건 제도보다는 일 문화의 문제다. 모든 직업이 예측불가능한 성격인 것도 아닌데, 예측할 수 없도록 일하게 만드는 사회문화 자체가 문제다. 지금은 육아하는 엄마들이 회사에서 소수인 탓에 이들만 예외적 존재로, ‘불성실하다’는 취급을 받는다. 여성들이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것도 결혼해 애를 낳으면 경제력을 잃을 것이란 걱정 때문에 그렇다. 한국 출산율이 낮은 건 사람들이 책임감이 강해서다. 출산했을 때 내 삶, 아이의 삶이 악화될 게 딱 보이니까 안 낳는다. 예를 들어 남성육아휴직률을 반영한 ‘일가정양립지수’를 적용해 인센티브를 준다면 기업이 바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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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의 가두리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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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어머니가 입양을 반대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편견을 어떻게 다루는 편인가.
“주변 사람들은 다 ‘대단하다’, ‘잘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자기 가족일 때는 달라진다. 어머니는 기본적으로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아무리 심한 편견을 갖고 있더라도 마음이 따뜻한 이들은 열리기 때문에 어머니도 분명히 열리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편견과 우려는 있고, 은연중에 얘기도 한다. 흔히 입양된 아이가 ‘나도 엄마가 낳아줬으면 좋았을 걸’이라 생각한다고들 하는데, 이건 부모나 어른의 편견이 아이들에게 반영된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은 (둘 다) 처음부터 입양돼 자랐기 때문에 입양된 것과 아닌 것의 차이를 모른다. 입양한 사람이 ‘내가 직접 낳아 키웠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같은 생각을 계속하면 이게 무의식중에 아이에게도 전염되는 것 아닐까. 나부터가 직접 낳은 애를 키워보지 않았기 때문에 차이를 모르고, 그런 생각도 하지 않는다.”
-앞으로 딸들과 무엇을 하고 싶나.
“여행 다니고 싶다. 평소에 TV에 좋은 곳이 나오면, 나중에 가보자고 한다. 코로나19 끝나면 가보자고 했지만 사실 코로나19 시절에도 산으로 공원으로 열심히 다녔다. 초등학생 애들과 다니면 호기심과 에너지가 넘쳐 좋다.”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를 어떤 이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나.
“기존의 결혼과 가족 모델이 스스로와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 아직 가족을 이루지 않은 분들이 이걸 보면서 어떤 식으로 가족을 꾸릴지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가족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깨달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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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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