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게이머가 된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란 투리스모 7
최근 두 딸과 함께하고 싶은 게임이 생겼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독점 타이틀인 <그란 투리스모 7>이다. 내 전공인 레이싱 시뮬레이션. <마리오 카트>처럼 아케이드성 오락물이 아니라 물리 엔진 기반의 진짜 리얼한 자동차 게임이다. <그란 투리스모 7>은 요즘 시대 레이싱 게임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훨씬 진지하다. 자동차의 기본 원리와 튜닝의 변화를 배운다. 드라이빙 스쿨에서는 기초부터 고급까지 다양한 기술을 경험하고 익힐 수 있다. 그리고 일정한 배움 끝에 실력을 입증해야 한다. 시험을 통과해서 새로운 자동차와 경험치, 게임 머니를 받을 수 있다. 이런 보상이 있어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
게임의 스토리는 특정 자동차 브랜드 철학과 제품의 이야기에 초점을 둔다. 그리고 경쟁사와 라이벌, 모터스포츠, 자동차 문화로 이야기가 확장된다. 자동차 도감에서 각 제품을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도 특징. 처음엔 복잡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인 그란 투리스모 카페를 통해 여러 장르의 레이스를 경험하며 자연스럽게 게임에 동화된다. 90여 개의 세계적인 레이싱 트랙과 60개 브랜드, 4백여 대 자동차가 등장해서 지루할 틈이 없다. 게임 속 자동차에 적용된 물리 엔진은 대단히 사실적이다. 차마다 특성을 사실적으로 구현했다. 코너에서 타이어가 미끄러지거나 하중이 변하는 느낌도 확실하다. 그런데도 이전 시리즈보다 다루기가 수월하다. 게임 난이도 선택에 따라 초보자부터 전문가까지 아주 넓은 영역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당장 가속과 브레이크 페달을 헷갈리는 두 딸에겐 게임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애들은 모든 것에 빠르게 익숙해진다. 그리고 언젠간 가상 서킷에서 나보다 빠른 랩타임을 기록하게 될 것이다.
Words 김태영(자동차 저널니스트)
GTA: 산 안드레아스
<GTA>는 어떨까? Grand Theft Auto 제목 그대로 자동차 도둑질로 시작해서 마약, 매춘, 살인, 강도까지 온갖 흉악 범죄로 점철된 반사회적 게임이다. 당연히 18세 미만 이용 불가다. 하지만 게임 초반, 범죄가 점입가경으로 이어지기 전까지의 스토리에는 범죄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GTA: 산 안드레아스>를 보자. 주인공은 이제 막 출소해서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가족은 흩어졌고 경찰은 그에게 누명을 씌우려 든다. 의지할 곳이라고는 동네 친구들뿐이다. 그 고마운 친구가 옆 동네 갱들과 시비 붙었다는 소식에 분기탱천해 일어나면 당신은 총격전에 휘말린다. 그 사건은 경찰 수배자 명단 등극으로 이어지고 그다음부터는 빼도 박도 못하는 범죄의 길이 열린다.
보통 범죄는 나와 상관없는, 나쁜 놈들이나 저지르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범죄는 바로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안 좋은 상황에 처했을 때 저지르게 된다. <GTA: 산 안드레아스>가 하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범죄는 상황의 결과다. 그 상황을 피하지 않으면 당신도 범죄자가 될 수 있다. 학교 폭력도 대부분 사소한 계기로 시작되지 않던가.
게다가 이 게임은 범죄가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도 보여준다. 제목이 자동차 절도니 아무 차나 빼앗아 탈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지만 그것도 임계치를 넘으면 경찰 추적이 붙는다. 게다가 주어진 퀘스트를 완수하지 못하면 당신 인생은 그냥 끝난다. 우리가 법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그게 옳아서가 아니라 그게 제일 쉽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GTA>는 실제 범죄를 저지르거나 다중 교통사고를 내지 않고서도 이런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게임이다. 물론 게임의 분기점마다 자녀와 그 상황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현명한 부모가 가이드해줄 수만 있다면 말이다.
Words 장근영(심리학자)
파이널 판타지
나는 아이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배우지 않도록 꽤 많이 노력해왔다. 가린다고 안 보는 건 아니겠지만 스마트폰의 역할은 게임보다 기록을 남기고, 생각을 담고, 필요한 정보를 찾는 쪽에 더 우선적으로 반응하길 바랐다. 게임은 게임기로 즐겼으면 했다. 이유는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지만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콘텐츠들의 지향점 때문이다. 스마트폰은 게임이 주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십자 키처럼 예민한 조작이 필요한 게임에서 묘한 불편함이 있다. 그리고 언제든 간편하게 돈을 낼 수 있는 결제 시스템이 붙어 있다.
결국 스마트폰의 게임은 조작을 간편하게 하면서 ‘조작의 실력’ 대신 ‘아이템의 능력’을 변별력으로 만들었고, PC에서 이어져온 ‘힘자랑의 반복’이 중심이 되어버렸다. 모든 모바일 게임에 낙인을 찍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게임에는 ‘스토리’와 ‘엔딩’이 있으면 좋겠다. 반복해서 2회차, 3회차를 하더라도 맺음이 있는 이야기를 즐겼으면 좋겠다.
그 속의 스토리들, 뭔가 중2병 같은 대사들, 화려하지는 않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도 기계의 한계를 뛰어넘어 꾸려낸 노래와 춤은 요즘 게임들과 비교되지 않지만 나름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번역 대사집을 손에 쥐고 스토리를 떠올리며 진행하던 그 흥분은 요즘 차세대 게임기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 같다.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를 꼽았지만 <창세기전>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같은 쟁쟁한 국산 게임들도 마찬가지다. JRPG로 설명되는 당시 세기말적인, 또 중세풍의 판타지 게임들은 그 어떤 콘텐츠 이상으로 촉촉한 감성을 느끼게 해주었고, 큰 세계관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언제든 그 기억이 단순 추억 보정이 아니라 ‘진짜 판타지’라는 점을 되새길 수 있도록 때마다 새로 분칠을 한다. 욕하면서도 기꺼이 지갑을 여는 이유다. 그리고 그 기억이 아이와 나눌 수 있는 공감대가 될 수 있다면 그 ‘분칠’ 얼마든지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Words 최호섭(IT 칼럼니스트)
PES2021
재작년에 생일 선물로 축구 게임 <PES2021>을 선물받았다. 이제는 어엿한 사장님이 된 그 친구가 보내줬다. 그런데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에서 <PES2021>을 내려받는 동안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기대감도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이 안타까웠다. 정말 늙은 것 같았거든. 게임에 흥미가 없는 아저씨는 진짜 아저씨니까. 하드디스크에 남아 있는 <PES2021>은 언젠가 아들이 자라면 함께 플레이할 거다. 십몇 년 뒤가 될 테니, 그때 가면 구닥다리 게임이라고 하겠지. 느닷없이 레트로 축구 게임이 유행해서 아들이 관심을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바람이고.
어쨌든 는 대화하기 좋은 게임이다. 아빠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춘기 아들에게 그래 나는 아무것도 몰라. 근데 스루패스 좀 해봐, 라고 말하고 싶다. 쓸데없는 얘기를 나누고 싶다. 넘쳐나는 체력을 어두침침한 골방에서 함께 게임하며 보내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그냥 나는 네 편임을 알려주고 싶다. 아들은 게임에 관심이 없을 수도, 축구를 싫어할 수도 있다. 그래도 보여주고 싶다. 아빠도 일부러 새벽까지 게임하며 청춘을 낭비하던, 적의로 가득 찬 시절이 있었음을. 그러니 서럽고 화가 나도 언젠가는 나아진다는 것을. 마음껏 살아도 됨을 아들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다.
Editor 조진혁
Editor : 조진혁
Copyright © 아레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