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시인 김지하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수가 된 김지하가 옥중에서 시 ‘타는 목마름으로’(1975)를 발표했다. 7년 뒤 창비에서 동명의 시집을 내자 당국은 다음 날 금서(禁書) 조치를 내렸다. 서점들은 리어카에 시집을 싣고 대학에 들어가 파는 것으로 맞섰다. 그 시절 시인 김지하는 민주화 장정의 선봉에 선 투사였다. 청년들은 김지하의 ‘오적(五賊)’과 ‘타는 목마름으로’를 기도문처럼 외웠다.
▶그랬던 김지하가 1991년 4월 명지대생 강경대의 사망과 이어진 분신 사태를 계기로 동지들과 갈라섰다. 진보 진영은 언론에 ‘죽음의 굿판을 집어치워라’를 기고한 그를 변절자로 몰았다. 당시 대학 도서관 벽에 연일 나붙었던 대자보는 화법이 묘했다. 앞쪽엔 더는 죽지 말라 썼지만, 뒤에선 분신한 이들을 열사라 칭송했다. 어느 쪽이 진심인지 묻고 싶었다.
▶김지하는 훗날 “사형수로 6년 가까이 복역했지만 민주 투사가 될 생각은 없었다”고 술회했다. 감옥 안에서 그는 생명 사상을 잉태하고 숙성시켰다. 유신에 대한 저항도, 죽음의 굿판을 향한 분노도 뿌리는 생명이 존중받는 세상을 향한 비원이었다. 세상을 편 갈라 보는 이들 눈에 그런 김지하는 이해 못 할 사람이었다. 옥중에서 박정희 서거 소식을 들었을 때 “잘 가시오”라 한 것도, 2012년 대선 때 독재자의 딸을 지지한 것도 배신으로 비쳤을 뿐이다.
▶김지하는 평생 시의 힘을 빌려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다. ‘시란 어둠을/ 어둠대로 쓰면서 어둠을/ 수정하는 것// 쓰면서/ 저도 몰래 햇살을 이끄는 일’(‘속3′ 일부)이라고 했다. 한국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 뛰어들었다가 깊은 내상을 입어 쓰러지고 힘겹게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동지라 믿었던 이들의 비난에 충격받아 정신병원에 12번 입원했고 평생 두통에 시달렸다.
▶김지하가 미국을 둘러보고 돌아와 2007년 여행기를 냈을 때 그와 따로 만난 적이 있다. 처음엔 “탁 트인 애리조나 사막을 달렸더니 끔찍했던 두통이 사라졌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나 잠시 후 속내를 털어놓았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공항에 몰려와 왜 미국 갔느냐고 비난하면 어쩌나 걱정돼 귀국 비행기 안에서 두통이 도졌어. 그런데 입국장에 아무도 없더라고. 마음이 얼마나 놓이던지, 아픈 게 싹 가셨지.” 김지하는 여린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저항시 쓰고 사형수 되고 한때 동지였던 이들에게 변절자 소리까지 들었으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싶었다. 시인 김지하가 그제 영면에 들었다. 편 가르기도, 다툼도 없는 곳으로 떠났다. 이제 편안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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