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한국판 ‘웜비어法’ 기대한다
지난달 28일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의 버지니아대 나우(Nau) 강당에 100여 명이 모였다. 북한 체류 중 억류돼 의식불명 상태로 돌아와 스물셋에 숨진 이 학교 출신 오토 웜비어의 5주기를 앞두고 열린 추모 행사였다. 그의 친구와 교수, 북한 인권운동가 등이 단상에 올라 고인을 추억하고 이 사건의 교훈과 북한 인권 탄압 문제에 대해 발언했다.
누구보다 주목받은 참석자는 고인의 부모 프레드·신디 웜비어였다. 사건 뒤 5년 만에 아들이 다니던 학교를 처음 찾은 것이다. 아버지 프레드는 예정에 없이 자신과 아내가 북한에 대해 지금까지 어떻게 책임을 물었는지를 소개했다. 부부는 아들에 대한 불법 감금과 고문, 살해 혐의로 북한 정부를 미국 법원에 제소했다. 궐석 재판에서 법원은 북한 정부가 웜비어 부부에게 5억100만달러(약 6345억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판결 효력을 위해 인도네시아에서 불법 석탄 운송으로 억류된 북한 선박 소유권을 인정받아 처분 가능하다는 결정까지 받아냈다. 부모는 북한의 악행에 대한 국제 제재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호소했다.
이 같은 노력은 죽은 아들의 이름을 딴 대북제재법 입법으로 이어졌다. 북한과의 금융 거래에 대한 제재를 강화한 ‘오토 웜비어 은행거래 제한법’과 북한 주민들이 자유롭게 외부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돕는 ‘오토 웜비어 북한검열 감시법’이다.
웜비어 가족의 법정 싸움과 비슷한 소송이 한국에서도 시작됐다. 2020년 9월 서해상에서 북한군에게 살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유족이 북한 정부를 상대로 우리 법원에 지난달 2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낸 것이다. 웜비어 부모는 북한의 책임을 묻고 응징하는 과정에서 자국 정부와 호흡을 맞췄고 도움을 받았지만, 해수부 공무원 유족들은 그러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오히려 훼방꾼이었다. 고인의 사생활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면서 자진 월북으로 몰아갔다. 유족들은 사건 발생 경위를 알기 위해 정보 공개 청구 소송을 냈지만, 청와대와 해경은 필요한 정보를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에 항소해 진상 파악은 제자리걸음이다. 이런 모습은 9일 문 정부의 퇴진과 함께 볼 수 없게 되기를 바란다.
새 정부는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고 북한에 책임을 엄중히 물을 수 있도록 고인의 유족을 적극 지원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사건을 당사자 잘못으로 몰아가는 과정에서 명예훼손이나 인격권 침해가 인정된다면 정부가 책임지는 모습도 보였으면 한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국가 본연의 책무에 새 정부가 최선을 다할 때 진영과 이념을 불문하고 국민들은 신뢰를 보낼 것이다. 그래서 훗날 언젠가는 고인의 실명(實名)이 오토 웜비어처럼 북한의 악행에 대한 국가의 단호한 대응, 국민 생명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상징으로 기억되는 장면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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