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인물과 식물] 법정 스님과 일본목련
[경향신문]
도량(度量)이 넓은 김영한이 법정 스님께 시주하여 도량(道場)이 된 길상사. 서울 도심에 있는 사찰이지만, 성북동의 조용한 주택가 사이에 계곡을 끼고 있어 불자가 아니더라도 산책과 사색을 위해 찾는 이들이 많다. 계곡을 따라 들어서면 큰 나무들이 제법 울창하여 마치 깊은 산속에 와 있는 듯하다. 그 안쪽의 호젓한 곳에는 법정 스님이 잠시 거처했던 진영각이 있는데, 안에 전시된 원고와 평소 쓰시던 소품 등이 스님의 검박한 품성을 짐작게 한다. 툇마루 옆에는 일명 빠삐용 의자도 놓여 있어 흡사 불일암을 옮겨 온 듯하다.
법정 스님이 오랫동안 기거했던 전남 순천의 불일암. 마당 한쪽에는 스님께서 좋아했던 후박나무가 이제 암자를 지키고 있다. 스님의 글에도 종종 등장하여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바로 그 나무다. 평소 스님은 이 나무를 통해 풍광과 심상을 전하였다. 후박나무 아래에서 때론 잠옷 바람으로 달마중하기도 하고 잎 사이로 흘러가는 구름을 감상하다가, 스치는 바람 소리와 떨어지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또 출타했다 돌아오면 나무에게 ‘잘 있었냐’고 안부를 묻곤 하셨다니, 스님의 글처럼 이 나무를 ‘서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1975년에 스님이 손수 심었으니 이 나무도 불혹을 넘겼다. 스님은 이제 ‘서 있는 사람’ 아래에 누워 계신다.
그러나 스님이 후박나무로 알고 있던 이 나무의 원래 이름은 일본목련이다. 일본목련은 목련의 일종으로 일본이 원산지이고, 꽃잎과 잎이 모두 큰 편이다. 잎은 거의 팔뚝만 해서 스님은 잎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발걸음 소리 같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데, 잎은 항균 작용을 하여 마른 잎을 음식 아래에 깔거나 음식을 포장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경에 일본에서 수입되었을 당시 우리나라에는 없던 나무라 수입업자가 일본목련의 한자어 厚朴(후박)을 그대로 사용하였던 것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북한에서는 일본목련을 꽃잎이 노란색을 띠어 황목련이라 부르며,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진짜 후박나무는 녹나뭇과의 상록성으로, 크게 자라면 웅장한 수관이 마치 거대한 쑥 찐빵을 연상케 하며, 남쪽 바닷가에서 잘 자라 어촌의 당산목으로 사랑받는다.
법정 스님이 생전에 아끼던 이 나무의 본명을 알았더라면 어떠했을까? 하지만 후박이든 일본목련이든 아무렴 어떠랴. 스님이 즐겨 부르던 나무 이름에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 역시 ‘말빚’이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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