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통계에 가려진 사람들

김향미 정책사회부 차장 2022. 5. 1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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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A씨는 지난해 1월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코로나19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했다. A씨가 지금껏 모은 음성확인서는 60여장. A씨는 밥을 먹고 물을 마시기 위해 음성확인서가 필요했다. 기본권 침해라는 비판이 거셌던 ‘방역패스’(코로나19 접종증명·음성확인제)가 A씨에겐 1년 넘게 적용됐던 셈이다. A씨는 노숙인이다.

김향미 정책사회부 차장

경향신문 ‘K방역에 가려진 사람들’ 기획 시리즈 3회(5월5일자 8면)에 실린 내용이다. A씨는 음성확인서 종이 뭉치를 코로나19 대유행 속 “나의 역사”라고 했다. A씨를 인터뷰한 민서영 기자는 이를 두고 “차별의 역사”라고 썼다. 방역당국은 노숙인, 이주노동자 등 집단생활을 하는 이들 중 감염자가 나오면 시설 이용자 전체에게 선제검사를 명령했다. 이 조치로 누군가 끼니를 거르고, 누군가는 아파도 치료를 받지 못했지만 “추가 감염을 막는다”는 명분은 힘이 셌다.

2년 넘게 일상을 옥죄던 방역조치들이 사라졌다. 정권교체기가 겹치면서 ‘K방역’에 대한 평가가 쏟아졌다. ‘성공이냐, 실패냐’로 단정지을 수 없다.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은 “서는 위치가 다르면 코로나19에 대한 평가도 다를 것”이라고 했다.

흔히 K방역을 평가할 때 확진자 규모나 누적 치명률과 같은 통계를 근거로 댄다. 지난 3월 오미크론 확산 때 일각에서 “한국의 일일 확진 규모가 세계 1위”라며 방역당국을 비판했던 일이나, 최근 정부가 “누적 치명률이 0.1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세 번째로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고 자찬한 것이 대표적이다.통계는 유행상황 진단과 예측 등에 유효한 틀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주간 위험도 평가를 하면서 중환자실 병상 가동률, 주간 신규 위중증 환자 수, 60세 이상 확진자 비율 등을 핵심 지표로 삼았다. 이를테면 방역당국은 중환자 병상 가동률이 70%를 넘어가면 위험 신호로 봤고, 50%를 밑돌면 안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지표만 안정적이면 괜찮은 걸까. 정부가 코로나 환자 치료에 격리 병상 외 일반 병상을 사용하면서 ‘병상 가동률’이란 지표가 일부 개선됐다. 이 조치로 어떤 중환자들은 갑자기 병상을 옮겨야 했다. 통계만 강조하다보면 어떤 이는 가려진다. 지난 2월23일 김부겸 국무총리는 당시 누적 확진자 200만명 중 최근 15일간 100만명의 확진자가 나왔는데 사망자 수는 절반이 되지 않고 “7.8%에 불과하다”고 표현했다. 인권단체들은 당시 성명을 내고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기억이라는 국가의 의무를 망각한 채, 정부의 방역대책만을 정당화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코로나19 대유행에 취약계층이 경험한 어려움에 대해 들어야 한다. 요양원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손 한 번 맞잡지 못한 가족들의 애타는 마음, 마지막 작별 인사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한 유족들의 눈물까지도 살펴야 한다. 그 상황에서의 방역이 최선이었는지, 다른 방법이 없다면 그 조치를 더 짧게 할 수는 없었는지 평가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감염병 대응 국정과제를 보면 ‘국민 일상회복 및 국민 생명보호’와 ‘새로운 팬데믹 대비’를 내세웠다. 기존 방역정책의 목표가 이와 다르지 않았다. 정부는 “통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새겨야 한다.

김향미 정책사회부 차장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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