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심사숙고는 누구의 몫인가

변재원 작가·소수자정책연구자 2022. 5. 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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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심사숙고하다를 뜻하는 영어 단어 ‘contemplate’는 사원에서 파생되었다. 기도 공간을 뜻하는 temple에 각각 접두사와 접미사가 더해진 이 단어는 ‘곰곰이 생각하다’ ‘사물을 반성하다’ ‘심사숙고하다’는 뜻을 담고 있는데, 신중함을 넘어서 진중함을 담은 생각을 일컫는다. 즉 눈앞에 펼쳐진 현상의 근본을 고민하는 태도, 사물 이면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자세에 어울리는 단어다.

변재원 작가·소수자정책연구자

바쁜 현실을 살아내던 중 갑자기 닥쳐온 ‘현타’에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딘가” “나는 무얼 위해 존재하는가” 등을 질문한다는 것이 곧 삶의 책임을 다하는 심사숙고다. 로마제국의 중흥 시대를 통치했던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근본적 수준의 자연 질서를 심사숙고하는 것을 인간이 해야 할 일로 중요히 여겼다.

오늘날 삶의 배신에 뒤틀려 심사를 들여다볼 여유도, 시간에 쫓겨 숙고를 탐할 수도 없는 사회 속에 심사숙고라는 단어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당장 정치인들이 제일 그렇다. 어느 시기에는 정치가의 미덕이 심사숙고였을지언정, 지금은 아니다. 지난 한 달만 돌이켜보아도 심사숙고의 자세는 실종되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대통령 집무실이 바뀌었고, 장관 후보자가 발표되고 낙마하고 또 청문회가 진행되고, 여야 합의로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가, 결렬되었다가, 강행되었다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를 통과했고, 그 과정에서 회기 쪼개기에다 몸싸움, 고성이 끝없이 오갔다. 본질을 파악하려는 노력도, 그 진중한 자세도 모두 실종되었다.

2022년 정치의 모습은 하루 단위로 입장이 바뀌고, 새로운 소음으로 설쳤다가, 잠잠해졌다가, 또 반복되며 숨 넘어갈 듯한 여의도 운명교향곡이다. 그 속에서 진중함이 남은 곳은 국회의사당 앞 작은 농성장이었다.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를 외치며 곡기를 끊은 지 곧 한 달이 되어가는 두 활동가는 타인의 식사 시간마다 조용히 명상하며 위장 대신 질문을 채워갔다. 모진 풍파와 혐오의 갈등을 정면으로 버티는 이들은 끊임없이 명상하며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딘가, 나는 무얼 위해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되묻고 있었다.

농성장은 진중함이 깃든 여의도 앞 ‘사원’이 되었다. 대통령 취임식으로 곧 철거될 위태로운 운명에 처해 위태로운 그 사원에 진지함이 깃들어 있었다. 여러 시민과 종교인들이 심사숙고하며 모였다. 온 이웃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미사를 올리고, 합창했다.

농성장 그 너머 철문만 지나면 펼쳐지는 국회는 그야말로 각자도생에 급급했지만, 농성장에 모인 이들은 같이 평등한 미래를 심사숙고하고 있었다. 권력을 지닌 이들이 초조함과 이기심을 내비치는 동안, 약한 이들은 진중함과 책임감을 좇고 있었다.

새 대통령 취임과 맞물려 철거될 운명에 처한 위태로운 농성장 뒤편, 깨끗하고 으리으리한 국회를 번갈아 떠올리며 묻는다. 지금 이 시각,‘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심사숙고해야 할 이들은 누구인가. 차별 없는 국가, 존엄이 보장되는 사회를 위한 심사숙고의 자세는 누구의 몫이어야 하는가.

변재원 작가·소수자정책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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