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익의 에볼루션] 학습 열망은 언제 사회를 무너뜨리는가

장대익 진화학자·과학철학자 2022. 5. 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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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국 사회가 이렇게 갈등이 많은 사회가 된 데에는 학습 열망이 현재의 극심한 경쟁 상황에서 폭발해버렸기 때문이다
현대 정치사에 똬리 틀고 있는 과열된 학습 열망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면, 사회를 다채롭게 조성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제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과열된 학습 열망에 냉각수를 흘려줘야 할 때다

“아이들은 밤이고 낮이고 책상머리에 앉아 책을 읽는다 … 그들이 글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을 보면 너무나 뛰어나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고3 교실에 대한 목격담이 아니다. 대치동 학원가의 풍경도 아니다. 이것은 1653년 제주도에 표류해 억류되었던 헨드릭 하멜이 자신의 제주살이 경험을 바탕으로 쓴 <하멜 표류기>에 나온 증언이다. 책상머리보다 대항해를 더 좋아했던 네덜란드인의 눈에는 조선 아이들의 이러한 학습열과 학습력이 꽤 큰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현재 한국은 선진국이다. 한국의 국내 총생산 규모는 2021년 기준 약 1조8000억달러로, 세계 10위다. 1인당 국민소득이 2020년에는 4만달러를 넘어섰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한국이 별다른 자원도 없이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교육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최단 기간 내에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 것은 엄청난 교육열 때문이라는 데에 시비를 걸 사람은 많지 않다. 이를 ‘학습 열망’이라고 하자.

이 학습 열망의 결과들을 보자. 한국 학생들은 수학 올림피아드나 국제학업성취도평가 등 각종 학업 능력 평가에서 전 세계 최상위권을 석권해왔다. 또한 세계 각지에 뻗어 있는 한국 유학생의 수(인구 대비)는 인도, 중국, 일본보다 월등히 많다. 한국의 고등 교육 이수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고등 교육 이수율이란 고등학교 이상 상위 교육을 이수한 성인의 비율을 의미하는데, 한국 청년층(25~34세)의 경우 69.6%(2018기준)로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우리의 높은 학습 열망을 단번에 알 수 있는 지표는 따로 있다. 대한민국은 부모 세대보다 자녀 세대의 학력이 높거나 같은 경우가 96%에 달하는 놀라운 나라다. “내가 굶는 한이 있더라도 내 자식은 공부시켜 좋은 대학에 보내고, 좋은 직장에 취직시키겠다”는 것이 경제 성장기 부모 세대의 전반적인 의지였다. 이 의지는 고스란히 자식 세대에게 전해져, 자식들은 그 의지에 부합하는 결과를 이루어 냈으며, 그 덕택에 한국은 압축적 근대화의 표본이 되었다. 외부자였던 하멜의 증언을 통해 알려졌듯이, 이 학습 열망은 적어도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화-유전자 공진화 이론은 조선 시대의 높은 학습 열망이 어떻게 확산되고 강화되었는가에 관한 이해를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 이것의 핵심에는 조선의 관료사회를 가능하게 한 과거제가 있다. 이 제도는 성리학이 고려 말에 들어와 조선 시대의 통치 철학이 되는 과정에서 정착되었다. 조선의 양반 제도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양인(평민 계급)이 과거제를 통해 양반이 될 수 있는데, 양반이 3대 이내에 관직에 오르지 못할 시에는 평민으로 강등되었다. 과거제는 계층 유지 및 상승을 위한 거의 유일한 가능성이었다. 이 제도는 유생들 사이에서 치열한 학습 경쟁을 부추겼는데 학습 조건이 좋고 학습 열망이 더 큰 이들이 급제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과거 제도와 관료 사회는 ‘학습 열망 유전자’(학습 열망의 차이를 만듦으로써 결국 관료가 될 개연성을 높이는 유전자)를 선택할 것이고, 이 유전자는 후대 집단 내에 확산될 것이다. 게다가 조선 시대의 수많은 서원과 향약은 학생의 학습 열망과 출세 욕망의 촉진자였다. 이것이 바로 학습 열망 유전자와 성리학의 공진화다.

학습열망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그런데 조선 초기의 신분 구조(양반 20%, 양인 40%, 노비 40%)는 조선 후기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크게 변모했다. 온 국민의 양반화가 시작되었다. 게다가 경제 권력을 가진 지주들이 일제강점기, 해방, 농지 개혁을 거치며 몰락하면서 새로운 경제 엘리트가 탄생하게 되었다. 신분 상승을 위해 조선 왕조에서는 과거제의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했다면, 구한말-대한민국 건국을 거치면서는 말 그대로 누구나 가능했기 때문에 경쟁은 훨씬 더 치열해졌다. 조선 왕조 문화에서 선택된 학습 열망은 이렇게 근현대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잘 통했고 더욱 증폭되었다. 대한민국의 근대화가 압축적이고 역동적이었던 것도 선진국으로부터 배우려는 열망, 그리고 더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 배우려는 열망이 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열망은 우리 사회에서 집단 내 구성원들 간의 치열한 경쟁, 그리고 집단들 사이의 깊은 갈등을 원인으로도 작용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는 여전히 명문대 입시가 인생 최고의 목표인 양 인생의 연료를 거기서 탕진한다. 마치 대학 이후의 삶은 없는 것처럼 말이다. 대학입시와 관련된 온갖 불법, 탈법, 꼼수 행위들에 관한 논란들이 전 국민 감정 소비의 1번 주제가 된 것도 과열된 학습 열망의 부산물이다. 이러다 보니 교육은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어 정치인의 어젠다에서조차 슬그머니 빠져 있고, 과열 경쟁에 중독된 우리 사회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초저출산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출산이라는 행위를 우리네 생애사에 중요한 예산 집행 결정 과정이라고 생각해보자. 이때 ‘언제 번식하는 것이 좋을까’ ‘얼마나 낳으면 좋을까’ ‘언제까지 살면 좋을까’와 같은 생애사의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 바로 ‘생애사 전략’이다. 이 과정에서 여러 요인이 충돌한다. ‘성장을 더 할 것이냐’, 아니면 ‘번식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쓸 것이냐’에 대한 의사결정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결국 이것이 상충과 균형을 이루어 어떤 사람은 특정 환경에서 빨리, 많은 아기를 낳는 쪽으로(빠른 전략가), 다른 사람은 같은 환경에서도 아기를 늦게, 그리고 적게 갖는 쪽으로 행동한다(느린 전략가).

과열 경쟁이 부른 초저출산의 늪

진화심리학자 올리버 승에 따르면, 인구 밀도가 높을 경우 사람들은 느린 생애사 전략가가 된다. 인구 밀도가 높은 국가의 국민일수록 성적인 엄격성이 높은데, 다시 말해 아기를 낳을 가능성을 만드는 짝짓기에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런 사람일수록 기대 수명이 높다. 즉, 출산에 투자해 자녀를 빨리, 많이 낳고 일찍 사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장에 자원을 더 많이 사용함으로써 오래 사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구 밀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유치원 등록률도 높다. 추가 번식보다는 이미 출산한 자녀의 성장에 투자한다는 또 다른 증거이다. 결과적으로 인구 고밀도 국민들의 출산력은 상대적으로 더 낮다. 다시 말해, 내 주변이 사람들로 넘쳐난다고 감지하면 ‘아이를 낳는 것보다는 그냥 내가 성장해 경쟁력을 길러야겠다’는 판단 회로가 작동해 출산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환경을 어떻게 지각(인식)하는가’이다. 우선 환경이 객관적으로 어떠한가가 중요하다. 인구 밀도가 높으면, 즉, 사용 가능한 바람직한 자원에 대비해 경쟁자 수 혹은 인구 크기가 늘었다면, 진화를 거쳐 형성된 인간 심리의 반응 체계(느린 전략)가 작동한다. 실제로 작년도 감사원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종시 정부부처 직원들의 실제 및 희망 자녀 수를 비교해보면 부처가 서울에 있을 때부터 근무한 직원보다 세종으로 이전한 후부터 근무한 직원이 더 많은 자녀를 가지거나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에 남아 있는 부처의 경우에 세종 이전 시기 이전부터 근무한 직원과 이후부터 근무한 직원의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통해 이러한 효과가 단지 시간에 의한 효과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한편 환경에 대한 주관적 지각도 중요하다. 결국 지각을 통해 적응적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경쟁이 심한 것으로 지각되면 목표는 고정되고 가치는 일원화된다. 가령 ‘고3 모두가 수능을 보는구나’ ‘SKY 대학 입학이 하늘의 별 따기구나’라고 경쟁 지각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대개 경쟁을 포기하거나 다른 대안을 찾기보다는 그 목표를 위해 더 매진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 입시는 지옥이 되고 일자리는 전쟁이 된다. 헬조선으로 가는 길이다. 모두가 한곳만을 바라보고 있으므로.

한국 사회가 이렇게 갈등이 많은 사회가 된 데에는 적어도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온 학습 열망이 현재 주민들이 매일 느끼는 극심한 경쟁 상황에서 폭발해버렸기 때문이다. 이 과도한 학습 열망은 경쟁과 승리를 최상위 가치로 만들어버렸다. 서울-수도권에 살아야만 하고, 명문대에 입학해야 하며, 대기업에 취직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거주, 입시, 일자리를 위한 서열화와 경쟁은 피할 수 없다. 입시 부정부터 논문 표절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 정치사에 똬리를 틀고 있는 과열된 학습 열망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면, 사회를 다채롭게 조성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제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과열된 학습 열망에 냉각수를 흘려줘야 할 때다.

■장대익



진화학자이며 과학철학자. 인간 본성과 기술의 진화를 연결시키는 연구와 개발을 병행하고 있다. 과학과 인문의 경계를 오가며 인간, 기술, 사회의 진화를 이야기해왔다. 현재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인지과학회 회장을 지냈다. 작년부터 서울대학교 초학제 교육AI연구센터 소장으로 있으며 에듀테크 벤처기업 트랜스버스의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다윈의 식탁> <다윈의 정원> <울트라 소셜>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종의 기원> <통섭>(공역) 등이 있다.

장대익 진화학자·과학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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