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대관령 불망비 (不忘碑)

최동열 2022. 5. 10. 00:1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거금을 이식해 은혜롭게 점막(店幕)을 설치하고, 길손에게 휴식처와 숙소를 제공하니, 작은 편석에 새기어 오래도록 기리고자 하노라.'

영동지역 관문인 대관령 옛길 중간 지점인 반정 즈음의 깊은 산속에 작은 비석 하나가 서 있다.

비석의 이름은 '기관 이병화 유혜 불망비(記官李秉華遺惠不忘碑)'.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거금을 이식해 은혜롭게 점막(店幕)을 설치하고, 길손에게 휴식처와 숙소를 제공하니, 작은 편석에 새기어 오래도록 기리고자 하노라.’

영동지역 관문인 대관령 옛길 중간 지점인 반정 즈음의 깊은 산속에 작은 비석 하나가 서 있다. 1m 남짓 크기에 비석 윗부분에 갓을 씌우고 주변 잔돌을 모아 나지막하게 담을 둘렀다. 등산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만날 수 있지만, 워낙 소박하게 세워져 있는 비석인지라 존재 자체를 모르고 지나치는 등산객들이 더 많다.

비석의 이름은 ‘기관 이병화 유혜 불망비(記官李秉華遺惠不忘碑)’. 이병화라는 옛 관리의 은혜를 기리는 것인데, 기관이라는 직명으로 보아 강릉 관아에서 행정 업무를 담당했던 사람으로 보인다. 비석이 세워진 때는 200여년 전인 1824년, 순조 임금 24년 9월이다.

지금은 자동차나 열차로 10분이면 넘어갈 수 있지만, 옛사람들에게 대관령은 정말 험준한 고개였다. 강릉에 관향(貫鄕)을 두고 있는 매월당 김시습은 조도(鳥道), 즉 하늘을 나는 새나 넘나드는 길이라고 했고, 교산 허균은 ‘벼랑에 선반처럼 걸린 길’이라며 잔도(棧道)라고 표현했다. 이따금 호랑이도 출몰하고, 겨울철에는 살을 에는 엄동 한파 때문에 길손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비석이 세워진 19세기는 물산의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부보상(負褓商)을 비롯 주민들의 왕래가 한층 늘어나는 시기다. 기관 이병화는 고갯길을 넘는 민초들의 고충을 헤아려 거액의 사재를 기부, 중턱에 주막 겸 유숙처를 세웠고, 주민들은 불망비로 고마운 뜻을 기렸으니 작고 초라한 비석이지만 후대에 전하는 메시지는 더없이 아름답고 정겹다.

새 정부 출범과 6·1 지방선거가 동시에 겹치면서 전례 없는 역대급 공직 교대가 예상된다. 2년 이상 민생을 짓누른 역병 홍역에 지칠 대로 지쳐 대관령 고갯길 고행만큼 힘겨운 세파를 헤쳐야 하는 민초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애민(愛民), 휼민(恤民)의 리더십이다.

그래서 묻노니 “후일 이병화처럼 유혜 불망비를 세워줄 만한 후보자 어디 없습니까?” 최동열 강릉본부장

Copyright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