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104] 때로는 극복보다 버티기가 낫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22. 5. 1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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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한심하다”는 고민을 자주 듣는다. 예를 들면 회사에 각별한 애사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 인정을 받아왔는데, 최근에는 상사의 지나치다 싶은 부정적인 피드백에다 승진까지 못하는 일이 겹쳐 사직까지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장단점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로 삼으라는 지인의 조언을 따라 몇 개월째 노력하고 있는데,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하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다는 내용이다.

최선을 다해도 위기가 찾아오는 것이 인생의 팩트이다. 이런 위기의 순간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인생을 잘 꾸려나가는 데 있어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위기에 좌절하지 않고 ‘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우선 옳다.

그런데 균형이 중요하다.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자세와 실제적인 목표 사이에 균형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앞에서 소개한 사연은 상당한 수준의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킬 내용이다. 아마도 회사와 나를 거의 하나의 정체성으로 여기는 마음이 존재했을 텐데,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은 깊은 배신과 억울한 감정을 일으킬 수 있다. 믿지 않으면 배신을 느낄 일도 없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억울할 일도 적다. 그래서 의외로 배신과 억울은 열심히 살다 보면 한 번쯤은 경험하게 되는 흔한 감정이다. 흔하다고 해서 안 아픈 것은 아니다. 매우 아프다.

내 감정을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것은 노력하면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런 사람이 강한 멘털을 가진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감정은 자율성을 상당히 가지고 있고 나의 통제에서 튕겨나가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내가 감정을 조정하려고 힘을 더하면 그 힘을 오히려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더 강하게 저항하기도 한다.

앞의 사연으로 돌아가면 극복이란 자세는 훌륭하지만 목표는 ‘버티자’로 바꾸어 보자고 제안했다. 오랜 시간 믿었던 곳에서 배신과 억울의 감정이 느껴지는데 몇 개월 만에 그 감정을 없앨 수 있다는 생각은 팩트가 아니다. 그 감정을 찍어 눌러 잠시 못 느끼는 정도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이런 경우는 더 오랜 시간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스스로에 대한 정확하고도 따뜻한 판단이 마인드 케어(mind care)에 필요하다. 극복하려고 최대치 노력을 하고 있는데도 부정적 감정이 남아있을 수 있다. 이는 정상적인 것이다.

몸에 상처가 나면 회복에 시간이 필요하다. 빨리 낫겠다고 환부를 함부로 만지면 오히려 덧날 수도 있다. 마음도 똑같다. 맘에 상처가 생겼을 때 회복해야지 마음먹는 것은 옳다. 그러나 따뜻하게 스스로를 안아주며 기다려 주어야 한다. 마음의 상처가 아무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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