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귀은의멜랑콜리아] 청년과의 불행배틀
미래 예정된 불행과 비교 안 돼
희망 잃은 청년들 '갓생'에 천착
현실 충실하며 공감의 삶 살아
불행배틀을 하면 이길 자신이 있다. 누구에게나 연민을 불러일으킬 치트키도 있다. 과거의 불행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캐릭터를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 슬픔에, 그 슬픔에 대한 겸허를 섞어 아이로니컬한 방식으로 스토리를 재구성할 것이다. 고품격 불행담론이 될 것이다. 불행담론은 어차피 선택적 사실을 재구성한 것. 누구에게나 불행은 기본값이고, 그 기본값에 어떤 변수를 입력하느냐에 따라 흥미로운 불행서사가 된다.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했다. 머스크는 이제 지구(테슬라)와 우주(스페이스X), 인터넷 공간(트위터)까지 접수했다. 인류가 거주하고 소통하는 모든 공간이 그의 휘하에 있다. 머스크는 트위터를 인수하면서 ‘표현의 자유’, ‘민주주의’, ‘오픈소스’를 언급했다. 스팸봇도 타도한다고 했다. 그래서 더 무섭다. 그는 스스로 모든 것을 다 실현시킬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머스크는 인간 뇌와 인공지능을 연결하는 ‘뉴럴링크’도 추진하고 있다. 그는 부자도 아니고, CEO도 아니다. 제왕이다.
최근 삼성전자 5년차 엔지니어가 이재용 부회장에게 이메일을 보냈다는 것이 이슈가 됐다. 회사가 위기라는 것이다.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삼성이 그간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으로 성장했지만, 급변하는 시대, 더 이상 그걸로는 버티지 못한다. 삼성이 흔들리면 한국 경제가 도미노처럼 위태로울 것이다.
뉴스에선 연일 검수완박 정쟁이 생중계됐다. 서로 치열하게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미러링(mirroring)일 뿐이다. 여야는 그 위치가 바뀔 뿐, 같은 일은 반복된다. 그들이 그렇게 갈등의 포즈를 취하는 사이, 코로나는 홍역과 같은 2급 감염병이 됐지만, 불안은 정확한 정보를 확보할 수 없는 각 개인의 몫이다.
지난 4월 24일,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고등학교 2학년생이 열리는 차 문에 받혀 사망했다. 작년에도 고3 학생이 배달일을 하다 사고로 숨졌다. 이들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매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이름도 없는 이들은 곧 잊힐 것이다. 잊히었으므로 또 다른 십대들은 천진하게 배달라이더로 들어설 것이다. 열여덟, 열아홉 배달라이더의 죽음은 교통사고가 아니다. 초양극화와 정치무능이 부른 참사다. 개인의 부주의 때문이 아니라 시스템의 부조리 때문이다.
이런 세계에서 청년은 ‘갓생’을 산다. 갓생은 좋은 것을 표현할 때 접두어처럼 붙이는 ‘갓’(God)과 ‘생’(生)의 합성어다. 이들은 세계를 통제할 수 없다면, 자기 자신이라도 통제해서 성취감을 얻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미러클 모닝’이나 잠 자기 전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 것, 건강이나 몸매를 위해 다이어트를 하거나 하루에 공부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 등이 갓생이다. 그날 하루 갓생을 실천하면 자기관리 애플리케이션에 기록하여 타인과 공유하고 인증받는다.
갓생은 과거 ‘하면 된다’의 이데올로기에 다름 아닌 듯 보이지만, 아니다. 갓생은 오히려 ‘하면 된다’에 회의적이다. 이 세계에서는 하면 되는 것이 별로 없다. ‘갓생러’(갓생을 사는 사람)는 맹목적인 희망을 갖지 않는다. 갓생은 ‘하면 된다’가 아니라 ‘뭐라도 하자’에 가깝다. 이른바 ‘소확성’, 작지만 확실한 성취가 그들의 목표다.
혹시 그들은 현실을 열심히 사는 것으로 현실을 잊는 것은 아닐까. 까다로운 루틴을 만들어 자기 인생을 산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인생을 비용으로 자기 과시만 일삼는 것은 아닐까. 자기 통제에서 희열을 얻는다면, 그것은 오히려 이 세계에 대한 도피가 아닐까.
이런 인식은 구세대의 편견이다. 이들은 ‘인정투쟁’이 아니라 ‘상호인정’을 나누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미지’를 전시하고 무작정 ‘좋아요’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타인과 공유하기 때문이다.
나의 1학년 학생들은 거의 매일 공강시간에 함께 산책과 운동을 하고 대화와 토론을 나눈단다. 매번 열 명 안팎이 함께 움직인단다. 하고 나면 뿌듯하단다. 갓생이다. 이들은 고2·고3, 한창 친구들과 어울릴 때 펜데믹을 겪어 낸 세대다. 대학에 들어온 지 이제 두 달 남짓, 이 스무 살들은 ‘함께’의 능력을 갖추었다. 무언가 함께해 본 경험이 누적돼서가 아니라, 코로나를 건너오면서 ‘함께’의 가치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청년이 ‘함께’의 길을 발명하고 있다. 나는 이제 이들 청년과 불행배틀을 하면 이길 자신이 있다. 이들이 기성세대로부터 희망이 약속된 땅을 상속받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함께’의 길을 명랑하게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귀은 국립경상대 교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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