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기념일에 '침략' 정당화한 푸틴

박용하 기자 2022. 5. 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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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우크라 전쟁, 안보 위한 싸움”
‘특수 군사작전’ 지속 뜻 밝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이 9일(현지시간) 수도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서 열린 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식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확장을 비난하며 우크라이나 침공은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선제적이고 주권적인 결정이었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국가총동원령 선포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우크라이나에서 전개하고 있는 ‘특수 군사작전’은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시스카야가제타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전승기념식 연설에서 “나토 국가들의 최신 무기들이 정기적으로 공급되는 것을 봤다”며 “러시아는 공세에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이는 불가피하고 시의적절한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서방의 위협에 대한 불가피한 대응이었다는 논리다. 푸틴 대통령은 “합리적 타협안 모색을 촉구했지만 나토 국가들은 우리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며 전쟁 책임을 서방에 돌렸다. 그는 “우리의 의무는 나치즘을 붕괴시키고 우리에게 세계적 전쟁 공포가 반복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라고 유언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푸틴 대통령의 연설에 이어 대대적인 사열식이 진행됐다. 1만1000명의 병력과 131대의 군사장비가 참여한 것으로 추산된다. 각종 핵전력도 눈길을 끌었다. RS-24 ‘야르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이스칸데르’ 단거리탄도미사일 등이다.

푸틴, ‘전쟁 영향’ 규모 줄인 사열식…국민들은 ‘동원령’ 불안감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서 9일(현지시간) 열린 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식에서 병사들 머리 위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연설 모습이 중계되고 있다. 모스크바 | AFP연합뉴스

앞서 서방국가들은 이번 사열식을 통해 러시아가 핵위협을 강화할 것이란 예상을 내놓은 바 있다. 다만 일각에선 지난해 기념일에 비해 러시아가 적은 병력과 장비를 선보인 점을 거론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피해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21년 기념식에선 병력 1만2000여명과 차량 등 군용장비 190여대가 동원됐으나, 올해는 이보다 규모가 줄어들었다.

푸틴 대통령은 사열식을 참관한 뒤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 전투에서 전사한 러시아 ‘스파르트’ 대대 대대장 블라디미르 죠가의 부친과 면담하면서 “우리 군인들은 용감하고 영웅적이며 전문가답게 싸우고 있다. 모든 설정한 계획은 이행되고 있다. 전과(목표)가 달성될 것이며 이에 대해선 추호의 의심도 없다”고 말했다. 목표 달성 때까지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 군사작전’을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전승기념일 행사를 보는 러시아 시민들 표정은 엇갈리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는 대부분의 러시아인이 전쟁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푸틴 대통령 지지율이 전쟁 전에 비해 14%포인트 이상 오른 81.5%를 기록한 결과도 나왔다.

반면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국민들에게 직접적으로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AP통신은 러시아 인권단체들 말을 인용해 “이번 행사를 앞두고 정부의 동원령 선포를 걱정해 입대명령을 받을 경우 대응 방안에 대한 문의 전화가 최근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날 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일을 이용하는 러시아의 행태를 비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성명에서 “우리는 반히틀러 연합에서 다른 나라들과 함께 나치를 물리친 우리 조상들이 자랑스럽다”며 “우리는 누구도 이 승리를 도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그때(2차 대전)도 이겼으며 지금도 이기고 있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의 서방 책임론에도 불구하고 올해 전승절을 맞는 러시아는 이제 2차 대전 승전국이 아니라 침략국이 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의 전승절이 세계대전 승리와 종전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의 현대적 군사력을 자축하는 날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우크라이나를 독일 나치 계승자로 깎아내림으로써 전쟁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얻으려 한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언론인 막심 트루돌뤼보프는 “그들은 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실제 전쟁에 대한 정당성으로 바꿔놨다”며 “승리의 숭배에서 전쟁 숭배로 모든 것을 뒤집어놓았다”고 비판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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