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6일 만의 퇴근길..문 대통령 "성공한 대통령이었습니까? 다시 출마할까요?"

정대연 기자 2022. 5. 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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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청와대 앞 분수대 환송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날인 9일 저녁 만 명 넘는 시민들의 환호 속에 청와대를 나왔다. 2017년 5월10일 취임 후 1826일 만의 ‘퇴근’이다.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가장 높은 임기 말 지지율을 기록한 문 대통령은 공과에 대한 평가를 역사에 맡긴 채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간다. 문 대통령은 10일 취임하는 윤석열 신임 대통령을 향해 문재인 정부를 비롯한 역대 정부의 성과를 계승하고 국민 통합에 매진할 것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도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전날 역대 대통령 중 마지막일 가능성이 큰 청와대 관저에서의 밤을 보낸 문 대통령은 이날 아침 부인 김정숙 여사 등과 함께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독립유공자 묘역을 잇따라 참배했다. 문 대통령은 두 곳에서 방명록에 각각 “더 당당한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라고 적었다.

청와대로 돌아온 문 대통령은 오전 10시부터 12분간 본관 1층 로비에서 준비한 퇴임 연설문을 담담하게 읽어내려갔다.

문 대통령은 퇴임사에 “위대한 국민께 바치는 헌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다”며 “이제 평범한 시민의 삶으로 돌아가 성공하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5년은 국민과 함께 격동하는 세계사의 한복판에서 연속되는 국가적 위기를 헤쳐온 시기였다”며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이며, 선도국가가 됐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전쟁 위기를 대화 국면으로 전환시킨 평창동계올림픽, 일본의 수출규제 극복, 코로나19 방역, 1인당 국민소득 3만5000달러 돌파, 한류 확산, 한국판 뉴딜 등을 임기 중 성과로 내세웠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대한민국은 어느덧 민주주의, 경제, 수출, 디지털, 혁신, 방역, 보건의료, 문화, 군사력, 방산, 기후위기 대응, 외교와 국제협력 등 많은 분야에서 선도국가가 돼 있었다”며 “우리나라는 2차 세계대전 후 지난 70년 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 2차 세계대전 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유일한 나라가 됐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위기 속에서 ‘위기에 강한 나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로 도약했다”며 “우리 모두 위대한 국민으로서 높아진 우리의 국격에 당당하게 자부심을 가지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윤 신임 대통령에게 “다음 정부에서도 성공하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계속 이어나가기를 기대한다”며 “이전 정부들의 축적된 성과를 계승하고 발전시켜 더 국력이 커지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를 기원한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이를 위해서는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선거 과정에서 더욱 깊어진 갈등의 골을 메우며 국민 통합의 길로 나아갈 때 대한민국은 진정한 성공의 길로 더욱 힘차게 전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임기 중 이룬 성과를 부정하지 말고 계승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또한 윤 신임 대통령이 역대 최소 득표율 차(0.73%포인트)로 당선된 것을 염두에 두고 통합과 협치를 지향해야 한다고 충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퇴임사 대부분은 성과를 강조하는 데 할애됐지만, 아쉬움을 내비친 대목도 있었다. 다만 부동산 가격 폭등이나 ‘내로남불’이라 비판받은 인사 문제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문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헌정질서가 무너졌을 때 우리 국민은 가장 평화적이고 문화적인 촛불집회를 통해 정부를 교체하고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며 “나라다운 나라를 요구한 촛불광장의 열망에 우리 정부가 얼마나 부응했는지 숙연한 마음이 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가 다 이루지 못했더라도 나라다운 나라를 향한 국민의 열망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와 관련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은 우리의 의지와 노력이 부족한 탓만은 아니었다”며 “우리의 의지만으로 넘기 힘든 장벽이 있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이후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는 현 상황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연설을 마친 뒤 평소와 마찬가지로 일일 참모회의를 주재했다. 회의에서는 급박한 국제 정세에 따른 국내 경제 현안 대응 문제가 주로 다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오후에도 일정이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윤 신임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위해 방한한 할리마 야콥 싱가포르 대통령 면담과 왕치산 중국 국가 부주석 접견 등 외교 일정을 소화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를 나오기 40분 전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등 국무위원 3명의 사표를 수리한 것으로 청와대에서의 모든 업무를 마쳤다.

오후 6시쯤 문 대통령은 700여명의 청와대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직원들은 청와대 본관부터 정문까지 서서 환호하며 문 대통령과 김 여사가 떠나는 길을 지켜봤다. 문 대통령은 울먹이는 직원을 다독이기도 했다.

정문 밖은 흡사 선거 유세장 같았다. 만 명 넘는 시민들이 문 대통령을 맞기 위해 운집했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윤건영·홍영표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강경화·박영선 전 장관 등 문재인 정부 출신 인사들도 나와있었다. 시민들은 파란색·하얀색 풍선과 손팻말을 흔들며 “사랑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건강하세요”라고 외쳤다.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문 대통령 내외는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걸어갔다. 앞줄에 선 시민들과는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약 30분 만에 청와대 앞 분수대 근처에 마련된 무대에 오른 문 대통령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인파에 다소 흥분한 표정으로 “다시 출마할까요?”라는 우스갯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하루 근무를 마치는 퇴근이 아니라 5년 근무를 마치는 퇴근”이라며 “마지막 퇴근을 하고 나니 정말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 같아서 정말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아내와 전임 대통령으로서 ‘정말 보기 좋구나’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잘 살아보겠다”며 “여러분 덕분에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러분, 성공한 대통령이었습니까?”라는 말에 시민들이 “네”라고 대답하자, 문 대통령은 “감사하다. (이제) 성공한 전임 대통령이 되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 내외는 준비된 차량에 탑승해 숙소로 이동하면서도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었다. 문 대통령은 숙소에서 이날 자정까지 핫라인을 유지하며 군 통수권자로서 소임을 다했다.

문 대통령은 10일 오전 11시 국회에서 열리는 새 대통령 취임식에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참석한다. 문 대통령은 취임식이 끝나면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울산(통도사)역으로 이동한다. 역에서 준비된 차량으로 새로 지은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후 3시 무렵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마을회관 앞에서 지지자들의 환영에 대한 감사의 뜻을 재차 밝힐 예정이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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