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윤석열 정부, '통합'과 '협치'는 시대적 요구다

한겨레 2022. 5. 9.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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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마음 하나로 모으겠다" 다짐 지키길
진영 갈등이나 대결적 관점으론 이루지 못해
불평등·기후·노동 등 시계 되돌려서는 안 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을 하루 앞둔 9일 오후 새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될 서울 용산구 옛 국방부 청사에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 마크가 부착돼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취임한다.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 국정을 책임질 ‘윤석열 정부’가 공식 출범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당선 일성으로 의회 존중과 협치를 강조했고, 최근에도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국민 통합, 야당과의 협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무엇보다 지난 대선에서 박빙의 표차로 당선된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국민까지도 포용하는 폭넓은 정치가 필요한 이유다. 또 국회는 전형적인 ‘여소야대’ 상황으로, 다수당의 협력 없이는 국정 운영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 앞에 산적한 과제는 어느 것 하나 녹록지 않다. 진보와 보수 양 진영 간 갈등과 반목은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세대나 젠더 격차를 메우는 역할을 해야 하는 정치는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자신의 지지기반에 이용하는 모습까지 보여왔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소득 양극화와 자산 불평등은 더욱 심해졌고, 취약한 사회안전망 속에서 미래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은 더욱 많아졌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출생률과 높은 자살률, 초고령화와 인구절벽에서 나타나듯 대한민국 국민은 행복하지 않다.

특히 코로나19로 생계를 잃었거나 위협받고 있는 국민을 보살피는 일이 차기 정부의 급선무가 돼 있다. 집값 안정, 치솟는 물가와 일자리 대책 등 민생 현안들도 한시가 급하다.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재개 조짐은 남북관계가 다시 5년 전의 긴장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음을 뜻한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화로 재무장을 노리는 일본의 부상 등 외교적 난제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부 출범을 앞두고 주어진 인수위 두 달은 그런 점에서 금쪽같은 시간이었다. 시대적 난제를 해결하려면 국민의 힘과 지혜를 한데 모으는 노력이 절실했다. 그런데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를 첫 과제로 들고나와 아까운 시간과 국민적 에너지를 소모했다. 더 중요한 국정과제들이 집무실 논란에 가려진 채 공론의 장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고, 결국은 인수위의 부실 활동으로 귀결됐다.

인수위에서 그나마 정책적 검토가 이뤄진 사안들도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대표적으로 기후위기와 노동 문제를 꼽을 수 있다. 기후위기는 다음 세대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구체적 프로그램을 다듬어야 한다. 탄소중립의 기준 완화나 어설픈 ‘원전 르네상스’는 국제사회의 흐름에 역행하는 무모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사회적 합의로 이뤄진 노동시간의 재연장, 이제 막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의 완화처럼 이른바 ‘노동의 유연화’와 관련된 움직임이나 발언들도 나오는데, 한국 사회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대결 지향적인 윤 대통령의 대북관도 그 자체로 염려스럽다. 외교에서 한국의 국익과 균형이라는 관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윤석열 정부는 내각도 제대로 꾸리지 못한 채 출범하게 된다. ‘이해충돌’, ‘회전문 인사’ 등의 비판을 받은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는 국회에서 인준을 받지 못했고, 기약도 없는 상태다. 총리 포함 후보자 19명 가운데 국회 청문회를 통과한 사람은 9일 현재 7명뿐이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총리 없이 가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이날 차관 인사도 계획대로 강행했다.

첫 내각에 대한 국회 동의 절차가 이렇게 꼬인 데는 무엇보다 윤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아는 사람’, ‘써본 사람’ 위주의 인선으로 애 초 예고했던 ‘능력 위주’ 인사 방침을 스스로 뒤집었다. 대통령실에만 6명 등 다수의 검찰 출신 인사들을 요직에 배치해 ‘검찰 공화국’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키웠다. 반면 여성·청년 입각은 극소수에 그쳤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등 결정적 흠결이 드러나 국회의 동의를 받기 어려운 후보자도 ‘위법·불법 사유가 없다’며 ‘사퇴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여론을 거스르는 대통령의 고집은 자칫 ‘불통’과 ‘아집’의 부정적 이미지만 키울 뿐이다.

윤 대통령은 이제 출발선에 서 있다. 앞으로 5년간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당선 이후 지난 2개월을 겸허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검찰총장 이외에 국회의원이나 도지사 등 ‘선출직’ 공직자의 경험이 전무한 그로서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 추진과 인수위 활동, 내각 인선에 대한 반추와 성찰에서 값진 교훈을 얻게 될 것이다.

윤 대통령의 취임을 하루 앞두고 ‘국정 수행을 잘할 것’이라는 국민의 기대치가 절반을 겨우 넘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역대 가장 낮은 수치지만, 앞으로 이 수치의 향방을 좌우하는 것 또한 윤 대통령 자신이다. 더 낮고 겸손한 자세로 국민 통합과 협치에 나서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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