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의 날, 한 청년을 생각한다

한겨레 2022. 5. 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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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대신 원가정 보호·지원만이 해답?
게티이미지뱅크

[왜냐면] 정은주 | <그렇게 가족이 된다> 저자

그는 보육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만 18살이 되어 자립했다. 생모와 연락이 닿았지만 편지만 전해 받았을 뿐 만날 수 없었다. 두번 버림받았다는 생각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던 그는 유서를 써서 늘 지니고 다닌다고 했다. 텔레비전을 통해서 본 그의 이름은 강한. 국가대표 봅슬레이 선수다.

입양의 날(5월11일)을 앞두고 그를 생각하는 이유는 지금도 전국 200여개 보육원에서 자라고 있는 만여명의 아이들 때문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부모가 수년간 면접교섭을 하지 않으면서도 친권을 유지하고 있어 원천적으로 입양이 불가능하다. 아예 부모의 존재를 알 수 없는 아이들도 입양기관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처럼 장기간 집단양육되는 아동 수가 만명이 넘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한마디로 ‘재앙’이다.

진보적 정책담당자들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원가정을 지원하고 회복시키는 방안을 앞세우고 있으나 실제로 보육원 아동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아동이 원가정에 돌아갈 수 있도록 일정 기간 노력하되,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신속하게 입양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10년 전 법이 개정돼 입양을 보내려면 생모가 자신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아이의 이름을 올려야 했고, 이를 두려워한 생모들은 키울 수 없는 아기를 두고 가는 장소인 ‘베이비박스’에 아기들을 둔 채 발길을 돌렸다. 거의 2천명에 이르는 이 아기들 대부분은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입양기관이 아닌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장애아나 남자아이는 국내입양이 되지 않아 대부분 해외입양이 되는 현실 또한 우리 사회의 가슴 아픈 자화상이다. 그럼에도 무작정 ‘해외입양 즉각 중단’을 외치는 이들은 아이들을 시설에서 자라도록 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이처럼 경직된 일련의 아동보호 정책들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미혼모와 해외입양인의 인권을 옹호하는 진보적 운동가들이 우리 사회에 긍정적 변화를 끌어낸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입양은 마치 보수주의자들의 철 지난 타령 같은 주제로 전락하고 말았다. 운동가들이 자신들의 가치관을 부각하기 위한 방편으로 입양을 위축시키는 데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이들은 베이비박스 폐지와 해외입양 즉각 중단을 일관되게 주장해왔고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이에 적극 부응했다. 남 의원은 입양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내입양 활성화를 국가 책무조항에서 삭제하는 등 입양을 축소할 수 있는 법 조항 신설에 앞장섰다.

나는 지금껏 진보의 가치와 철학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최근에는 반대편에서 진정한 진보의 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이 발의한 입양특례법 개정안에는 국내입양의 활성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해외입양이 줄어들도록 하는 구체적 방안들이 담겼다. 이는 보수-진보 논리를 떠나 한 아이의 삶을 오래도록 들여다본 시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그의 법안은 5년 단위로 국내입양 활성화 기본계획을 수립, 시행하도록 해 국내입양을 활성화하도록 했다. 또한 친생부모가 3년 이상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면접교섭을 하지 않는 경우 바로 입양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에서도 우리보다 30년 앞서 원가정 보호정책을 강조한 결과, 아이들은 시설과 위탁으로 떠돌아야만 했다. 많은 아이의 희생을 치른 뒤 늦게나마 입양 활성화 정책으로 선회한 것을 우리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봅슬레이 선수 강한씨에게 이제야 우리 사회는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혈연이 아니어도 마음으로 가족이 되어준 유명인사들이 잇따른 것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 어른의 일대일 눈길과 사랑이 절실했던 한 아이에게 지금과 같은 관심이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입양 활성화를 앞세운 개정안이 바로 이런 간절한 바람을 담고 있다. 보육원 퇴소 뒤 노숙생활까지 했던 강한 선수가 자신을 흰 도화지에 찍힌 하나의 점처럼 느꼈다는 말이 잊히지 않는다. 입양부모로서 시설을 퇴소한 수많은 청년이 어쩌면 내 아이일 수도 있었다는 데서 오는 부채감 때문일까. 입양의 날을 맞아 이 청년들을 중심에 놓고 정책을 논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입양 활성화 철학을 담은 입양특례법 개정안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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