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왜 그곳을 찾아갔을까?

한겨레 2022. 5. 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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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 혐의로 가정법원에 송치된 고등학생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소년사건에서 소년을 변호하는 국선보조인인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최근 청소년이 가담한 보이스피싱 범죄가 급증하면서 나한테 오는 사건들도 늘어나고 있다.

책임 있는 어른이라면 소년범 흉악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제는 엄벌하자'를 반복할 게 아니라, 가정환경, 친구관계, 사회구조적 시스템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소년범죄의 그늘부터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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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보호재판을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소년심판>. 넷플릭스 제공

[왜냐면] 박성태 | 변호사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 혐의로 가정법원에 송치된 고등학생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소년사건에서 소년을 변호하는 국선보조인인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국선보조인 통지가 있더라도 변호사 사무실로 찾아오거나 연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 보통은 내가 먼저 연락하는 편인데, 이번엔 달랐다. 학생은 자신의 비행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아르바이트 모집 사이트에서 공고만 보고 덜컥 갔다가 업주가 시킨 짓들을 했다는 얘기였다. 업주가 지시한 것들은 은행원인 척하며 돈을 받아오거나 은행원으로 가장해서 전화를 돌리는 일들이었다. 금융기관 사칭형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 학생은 면담하면서 내게 흐느끼며 말했다. 피해자 할머니를 속인 게 미안하고, 은행원인 척하라는 업주의 말을 의심하지 않은 자기 자신이 밉다고 했다.

최근 청소년이 가담한 보이스피싱 범죄가 급증하면서 나한테 오는 사건들도 늘어나고 있다. 자신의 비행 사실을 용기 있게 변호사에게 얘기하러 온 소년을 바라보며 왜 그곳을 찾아갔는지, 왜 의심하지 않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전과도 없던 소년이 이렇게 되었을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대개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 있다. 용돈벌이를 하러 갔거나, 친구의 꾐에 넘어가 갔거나, 아니면 호기심으로 가담했다가 빠져나오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비행을 처음 시작한 소년은 찜찜한 느낌은 있지만 보수로 받을 현금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하고 감당할 수 없는 범죄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

사건의 본질에서 벗어난 두가지 논란이 있다. 하나는 소년범죄가 심각하므로 소년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폐지가 어렵다면 소년범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낮추자는 것이다. 이 논란을 두고, 오늘도 현장에서 소년범들을 마주하고 있는 나의 답은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소년범죄가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처럼 흉포화되고, 신종 범죄 양상을 보이는 것을 외면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런 얘기를 하지 말자는 것도 아니다. 좀 더 신중하자는 것이다. 소년범에 관한 것이지만 소년에 대한 고민은 없는 이런 얘기들이 과연 소년범죄를 예방하고 줄이는 근본적인 시스템의 변화가 될 것인가.

소년의 처벌을 확대하자는 얘기에 앞서, 왜 소년이 비행을 저질렀는지. 비행 원인을 해석해야 한다는 얘기다. 왜 소년은 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가? 왜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를 본 소년은 그곳에 찾아갈 수밖에 없었는가?

형사미성년자 연령 하향 논의에 앞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얘기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소년들을 보호할 울타리가 돌봄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얼마나 더 큰 범죄와 생명의 위협에 노출되고 있는지, 소년보호의 안전망은 충분한지 살펴야 한다. 하나의 쟁점을 두고 응보냐 예방이냐의 갈림길에서 법의 목적을 살피고 정책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은 없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책임 있는 어른이라면 소년범 흉악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제는 엄벌하자’를 반복할 게 아니라, 가정환경, 친구관계, 사회구조적 시스템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소년범죄의 그늘부터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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