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끝날 때까지..반전 연주 계속해요"
3월 21일부터 34차례 걸쳐
평일 낮 정동서 평화 음악회
맞은편 러시아 대사관 향해
우크라이나 국가 불러 화제
내달 레바논서도 공연 예정
"종전 바라는 마음처럼
이 연주도 얼른 끝나길"
지난 6일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 앞에서 열린 '평화를 위한 작은 음악회'에서 관중 앞에 선 우크라이나인 엘레나는 서툰 한국어로 말을 이어갔다. 지난해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조국에서 전쟁이 터지면서 우크라이나에 있는 가족과 지인들의 걱정 속에 하루하루 지내왔다. 하지만 그는 긍정의 힘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이날 자신이 선 무대와 마주한 주한 러시아대사관을 향해 우크라이나 국가 '우크라이나의 영광은 사라지지 않으리'를 열창하며 자신을 둘러싼 모든 관중과 함께 굳은 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의 목소리와 함께 공간을 채운 사람들이 있다. 배일환 이화여대 음대 관현악과 교수와 그의 제자 첼리스트들이 모인 연주봉사 동아리 '이화첼리' 부원들이다. 지난 3월 21일부터 평일 낮 12시 30분 같은 자리에서 30분 정도 악기를 연주하며 하루라도 빨리 전쟁이 끝나기를 기원해왔다. 횟수로 34번째인 이날 공연에서는 서울용산국제학교 학생들이 우크라이나 국기 위에 'PRAY FOR PEACE(평화를 위한 기도)'라는 문구를 새긴 피켓을 들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청중들에게 반전의 메시지를 전했다.
"전쟁이 났다는 것이 너무 비상식적이고 이해가 안 갔죠. 너무 화가 났고요. 그래서 문화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해야겠다 싶어서 음악회를 열게 됐어요. 제가 전쟁을 멈추지는 못하지만, 참상을 알리고 위로를 줄 수 있다면 의미가 있겠다 싶었죠. 그리고 한 명이라도 음악회로 마음의 변화가 생긴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배일환 교수)
음악회는 배 교수가 제자들에게 먼저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점심시간에 맞춰 식사하러 나오는 러시아대사관 직원들에게라도 반전의 의미를 전하자는 취지였다. 음악회는 정동길을 산책하는 시민들의 입을 타고 소문이 났고, 배 교수의 동료들도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이날 공연에는 소프라노인 양귀비 이대 음대 성악과 교수가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의 소프라노 아리아 '나를 울게 하소서'와 세자르 프랑크의 '생명의 양식'을 불렀다.
"리날도에서 '알미레나'는 죽음의 순간들이 여러 번 찾아오는 갖은 핍박 속에서 노래를 불러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의 상황은 지금의 우크라이나와 비슷한 것 같아요. 의미 없는 전쟁이 하루빨리 끝나고 평화를 간절히 기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저희 음악이 생명의 양식이 됐으면 좋겠습니다."(양귀비 교수)
배 교수는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음악적인 힘을 보태왔다. 2006년에는 문화외교 자선단체 '뷰티풀마인드'를 설립해 장애인과 저소득층 청소년 연주자들에게 음악 교육을 해왔다. 공연 수익금도 기부하고 있다. 지금은 단체에서 총괄이사이면서 재능 기부 연주자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음악회가 반전의 메시지와 함께 다양한 레퍼토리를 시민들에게 전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공연 요청도 이어지고 있다. 다음달에는 레바논에서 평화 콘서트를 열어 달라는 요청을 받아 출국할 예정이다. 배 교수는 "주한 우크라이나대사관에서는 기꺼이 자리를 내줄 수 있다며 연락이 왔다"며 "평화와 화합의 의미를 담아 러시아 피아니스트를 모시고 연주하는 방법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만 열 계획이던 음악회는 2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배 교수와 제자들은 전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가 전해져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기만을 바라는 마음뿐이다.
"다행히 아직까지 비가 온 적이 없어 하루도 멈추지 않고 음악회를 열고 있지만 빨리 끝냈으면 좋겠어요. 종전까지 열겠다고 했는데 주변에서는 내년까지도 할 수도 있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해요.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 이 음악회도 끝나기만을 바랍니다."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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