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정책은 연속성이 생명..청년·여성 계속 끌어 안아야"

박근태 기자 2022. 5. 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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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
문재인 정부 임기 만료 2주일을 앞두고 임 장관을 만났다. 지난 29일 서울 중구 중앙우체국에서 만난 임 장관은 “1년은 짧지만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동아일보DB

“시작할 때부터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았다. 처음부터 마음을 비우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했다. 실국장들이 어디를 가자고 할 때 단 한번도 거절하지 않았다. 새 정책을 많이 만들기보다는 전임자들이 잘 마련한 정책이 끝까지 결실을 맺도록 관리에 신경을 더 쓰려고 했다. 정책은 연속성 가져야 한다. 잘 만든 정책인데 새 장관이 왔다고 바꿀 필요가 있나. 오히려 짧은 임기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9일 이임식을 진행한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1호' 타이틀을 여럿 가지고 있다. 공학계의 대표학회인 대한전자공학회 첫 여성 회장, 정부 과학기술 출연연구기관을 총괄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첫 여성 이사장, 그리고 건국 이래 첫 여성 과학기술 부처 장관이 그에게 붙은 1호 타이틀이다. 지난 1967년 과학기술처가 설립된 이후 여성이 부처 수장에 오르는데는 무려 반세기가 걸렸다.

첫 여성 연구회 이사장에 임명된지 87일만에 첫 여성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며 과학계는 물론 여성계의 기대를 모았지만 임명 과정은 의외로 험난했다. 날카로운 검증의 칼날이 그에게 집중됐다. 정권 말 마지막 장관, 1년 시한부라는 조건도 따라 붙었다.

1년은 정말 숨가쁘게 지나갔다. 2020년 전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은 잦아들 기미가 없었다. 한국 과학계에도 백신과 치료제 국산화에 대한 온 국민의 기대가 쏟아졌다. 한국의 첫 국산 발사체 누리호 시험 발사가 국민들의 관심 속에 시도됐다. 하지만 첫 시험발사는 모형위성을 궤도에 올려놓지 못한채 일부 기술만 검증한 부분 성공에 그쳤다. 그러는 사이 미국의 유인 달탐사 프로그램 아르테미스 협정 참여가 전격 결정됐다. 우주산업에 새 바람이 불면서 정부 우주정책을 전면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에서 한국이 살아남을 방안을 찾는 숙제도 떨어졌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10대 국가필수전략기술은 과기정통부를 포함해 각 부처가 머리를 맞대 만든 결과물이다.

현장 연구자들과는 매주 소통을 이어갔다. 취임하자마자 경북대와 한국뇌연구원을 시작으로 디지털 뉴딜 현장, 우주기업, 기술창업에 도전한 청년 창업자 등 3~4곳의 과학과 ICT 현장을 매주 찾아 의견을 들었다. 임 장관은 "여성의 장점을 십분 살려 현장의 소리를 더 많이 들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임기 만료 10여일을 앞두고 임 장관을 만났다. 지난 29일 서울 중구 중앙우체국에서 만난 임 장관은 “1년은 짧지만 어쩌면 충분한 시간이기도 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임 장관은 “정부가 바뀌어도 과학기술 정책은 끊김이 없어야 한다”며 “기술 패권 시대를 맞아  정부의 여러 부처가 머리를 맞대 마련한 국가필수전략기술 같은 정책이 새 정부에서도 멈춤 없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 장관은 "국민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백신 국산화가 늦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엔 백신 개발의 전체 사이클을 경험해본 만큼 앞으로의 백신 개발 속도는 매우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령화와 인구절벽 시대에 더 많은 여성의 사회 진출, 특히 과학기술 분야로 진출이 가능하도록 흔들림 없는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내놨다. 임 장관은 “여성의 일자리 숫자를 물리적으로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오히려 공정한 평가를 도입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임 장관의 후임이자 새 정부 첫 과기정통부 장관에 이종호 서울대 교수를 지명했다. 국회는 지난 3일 이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 반세기만 첫 여성 과기부 장관, 그러나 짧은 시간

21일 오후 대전 유성구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서 열린 '출연연 우수성과 연구자 간담회'에서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오른쪽에서 두번째)과 우수 연구성과 수상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장관의 임기도 끝난다. 취임한지 1년이 채 안됐는데 첫 여성 과기부 장관의 임기가 너무 짧은 것 같다.

"사실 처음부터 문재인 정부가 1년 정도 남아있는 시점이라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고 알고 있었다. 오히려 딱 1년만 하는 일이니 마음을 편하게 먹고 (주어진 기간)정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과기정통부 실국장들이 어디를 가보자, 방송 출연을 해보자고 할 때 '정말 이런 것까지 해야하나 하는 회의감 없이 장관으로서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했다. 오히려 그런 점에서 짧은 임기가 오히려 더 좋았다."

-그래도 짧은 기간에 해야할 일이 많았을텐데 무슨 전략이 있었나

"짧은 임기 동안 해야할 일을 하기 위해 몇가지 전략을 세웠다. 일단 문재인 정부 마지막 과기정통부 장관으로서 전임자들이 만든 정책을 마지막까지 꼼꼼이 챙기는 게 필요했다. 잘 진행하던 정책을 중간에 장관이 바뀌었다고 바꾸지 말고 연속성 있게 하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성이라는 강점을 살릴만한게 없나 살폈다. 아무래도 현장에 좀 더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다보니 현장 목소리를 받아서 실국장들에게 전달하고 해결 방안을 점검했다. 그래도 딱 하나 정도 제 브랜드가 될만한 굵직한 정책을 만들기는 했다. 청년 정책이다."

-문재인 정부는 청년 정책을 많이 내놨지만 평가가 엇갈린다. 과기정통부는 어디에 주목했나. 

"과기정통부가 마련한 정책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같은 범부처가 추진한 것과는 약간 결이 다르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서 청년들이 '디지털 네이티브'로서 큰 기회를 얻도록 지원하는데서 출발했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기회가 무엇인지 파악해서 도전 기회를 더 늘릴 방법을 고민했다. 소프트웨어 분야에 일거리가 많은데 우리 기반이 약해서 청년들이 개발자나 창작자나 아니면 창업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 진입할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창업을 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고민도 해봤다. 창업을 지속시켜 나가는 데 필요한 걸 살펴보니 소프트웨어 서비스나 클라우드 서비스였다. 청년들은 돈이 별로 없을텐데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고민해봤더니 ‘바우처 제도’라는 걸 활용하면 좋겠다 싶었다. 정부가 바우처를 제공하면 청년들이 이를 활용해서 자기가 필요한 서비스를 구매하는 방식이다. 

창업한 선배들과의 멘토링이나 네트워킹을 연결해주고 필요에 따라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제도도 보완했다. 특히 글로벌로 나갈 기회를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해외에 있는 우리 연구자들이나 성공한 벤처 기업가들과 연결해서 가서 인턴십을 하고 연구 활동을 하는 일도 연결하고 해외 글로벌 벤처가 한국에 조인트 벤처를 설립할 때 한국 청년이 참여할 수 있도록 맞춤형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이런저런 정책을 모아보니 77개나 됐다. 디지털 뉴딜 홈페이지에 별도 메뉴를 만들어서 청년 지원 정책이라는 곳에 모아놨다. 학생이든, 졸업생이든, 누구나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떤 도전이 가능한지 찾아볼 수 있도록 메뉴를 구성했다."

◇과기정책 연속성 끊기면 안돼...10대 필수전략기술 다음 정부서도 추진해야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일 고려대 미래융합기술관에서 열린 '인공지능(AI) 혁신 허브 출범식' 에 참석해 격려사를 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좋은 정책도 체감이 안 되면 별 효용이 없다. 정부가 '디지털 뉴딜'이란 말을 쓴지 2년 가까이 됐는데 사실 체감이 잘 안된다.

"디지털 뉴딜이란 말을 쓴게 2020년 7월부터니까 2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 흘렀다. 게다가 청년 정책은 지난해말 본격적으로 시작하다보니 체감이 안될 수 있다. 그래도 데이터 산업은 많이 성장했고 창업가나 기업이 체감할 수준까지 왔다고 본다. 데이터를 거래하거나 데이터를 가공하거나 제공하는 기업 수도 실제 많이 늘었다.  연구자들이 인공지능(AI)을 학습시키기 위한 데이터들이 매우 부족했는데 AI 학습용 데이터 구축을 통해서 데이터를 내려받고 학습시킬 환경이 조성됐다. 모두가 현장 의견을 듣고 구축한 것이어서 체감 효과는 분명 나타날 것으로 본다. 기업들이 바우처를 활용해 데이터와 서비스를 사서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를 구현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전 정부를 보면 정권이 바뀌면 과학기술 정책도 뒤집힌다. 문재인 정부 과기정책 중 다음 정부에서도 연속성 있게 계속 추진해야 할 정책이 있다면.

"지난해 여러 부처가 모여 인공지능, 5세대·6세대 이동통신, 첨단 바이오, 반도체·디스플레이, 2차전지, 수소, 첨단로봇·제조, 양자, 우주·항공, 사이버보안을 10대 국가필수전략기술로 선정했다. 현재 이를 지속해서 진행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 경제와 안보를 좌우하는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시대에 국가가 반드시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기술들인만큼 다음 정부에서도 꼭 이어졌으면 좋겠다. 이 정책은 그냥 나온 게 아니고 공급망과 통상의 문제, 기술 패권 같은 세계적인 흐름에서 나왔다. 특히 바이오, 미래차, 시스템 반도체를 뜻하는 이른바 ‘빅3’는 굉장히 중요한 분야다. 세 분야만큼은 사업의 이름이 달라지더라도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육성해야 한다."

◇정권과 인연이 없는 과학자도 장관이 되는 걸 보면 세상이 바뀌고 있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해 8월 18일 열린 국제여성과학기술인대회 BIEN 2021에서 축사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대통령이 어떻게 발탁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평소 연구를 하면서 우리나라에 어떤 정책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관심이 많았다. 기회만 된다면 언젠가 공직에 나가서 정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 나오는 보고서를 1년 넘게 혼자 공부했다. 아마도 논문을 쓸 정도로 많이 했다.(웃음) 그러다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공고가 나는 걸 보고 우연히 지원하게 됐다. 당시 문 대통령은 여성 장관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해지만 풀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솔직히 문 대통령이나 정치인, 심지어 정부 관료들과 인연이 없었는데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공직에 나오게 된 걸 보면서 스스로도 정말 많이 놀랐다. 장관에 임명되고 보니 한번 책임을 맡겨주셨는데 정말 잘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여성이 아직 한번도 과기정통부 장관이 된 적이 없다보니 정말 잘해야 다음번에도 여성에게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학기술 분야의 여성 진출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여성 진출을 더 늘리는 방법이 있을까

"조직의 다양성이 확대되면 그만큼 합리성이나 건전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우체국을 방문해보니까 관리자 가운데 여성 비율이 50%를 넘는 경우가 많아서 그 이유를 살펴본 일이 있다. 하나는 전국에 우체국이 있어서 누구나 본인이 원하는 곳에서 근무를 할 수가 있다는 점이다. 가족과 떨어지지 않고 일과 가정을 병행할 수 있는데 아주 중요한 선결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또 우체국 특성상 정량적 평가를 통해 공정한 평가가 이뤄진다는 점도 여성 관리자 비율을 높이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여성의 진출을 늘리려면 단순히 일자리만 늘릴 것이 아니라 근무 환경을 함께 개선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20대 대선을 전후로 젠더갈등이 폭발했다. 새 정부도 여성가족부 폐지를 비롯해 여러 가지 여성 정책 조정을 시사했다.  

"여성 정책이 후퇴하는 데 대해서는 많이 걱정스럽다. 과학기술 분야를 비롯해 여성의 사회적 진출 확대는 시대의 흐름에 맞는 정책이다. 이미 수치에서도 여전히 여성의 임금 수준은 남성의 60~70%에 머물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아직 더 배려해야 해외와 비슷한 수준으로 갈 수 있다. 얼마 전 조영태 서울대 교수가 쓴 《인구 미래 공존》을 읽었는데 한국의 인구는 정말 급속하게 줄고 있다. 태어나는 아이의 수만 봐도 1970년에 100만 명이 태어났는데 2020년에는 27만 명이 태어났다. 50년 만에 4분의 1로 줄었다. 아이가 준다는 뜻은 일할 수 있는 인구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여성 인력의 활용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인 사회로 가고 있다. 여성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건 정부가 해야할 몫이다."

-지난 5년간 과학기술 분야에서 여성이 일하는 환경이 정말 좋아졌나.

"여성이 일하는 환경이 많이 좋아진 건 분명하다. 하지만 더 많은 여성이 다시 연구현장으로 돌아와야 한다. 과학기술 분야는 한 번 경력이 단절되면 지금도 다시 그 경력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재교육을 많이 받지 않으면 자기가 원래 하던 일보다 훨씬 더 낮은 수준의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 부분이 매우 안타깝다. 그래서 재교육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많이 생겼다."

-연구소나 대학에서 은퇴하는 고경력 연구자들에게도 일이 필요한데 별로 내세울만한 정책이 없었다. 

"지금도 과기정통부에선 고경력 연구자들을 중소기업 기술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도록 연결해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연구자들의 만족도가 높지 않다. 왜냐면 중소기업이 요구하는 기술 수준이 너무 낮고 처우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경력 연구자를 위한 양질의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특허청 같은 경우엔 특허 심사관이 1000명 정도 운영 중인데 더 많은 전문가가 필요해 보인다. 연구소나 산업체 출신의 고경력 연구자가 심사관으로 활용이 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고경력 연구자를 만나보면 지금도 현역처럼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분들이 많다. 앞으로 이분들을 활용할 방안들을 자꾸 발굴해 내야 할 것 같다. 해외에서는 은퇴하고 난 다음에 재고용되는 제도들이 많은데 한국도 그런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백신 국산화 늦었지만 이제 빨리 만드는 법 배웠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왼쪽 두번째부터)과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1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13차 코로나19 치료제·백신개발 범정부지원위원회’ 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일 때 장관에 임명됐다. 부담은 없었나.  

"다행히 국내 백신 수급이 원활해져서 마음이 크게 쫓기지는 않았다. 임명장을 받을 때 스스로 부담은 컸다. 사실 백신 개발 사이클은 굉장히 길다. 보통 10~15년씩 걸리고 특히 임상 모집도 쉽지 않다. 사실 미국에서 빠르게 코로나19 백신을 만든 건 이번에 코로나19를 대비했다기보다는 수십 년간 쌓인 연구 결과, 축적된 시스템, 노하우 이런 것들이 모여서 된 것이다. 이번 만큼은 우리가 개발 노력을 게을리했다거나 그런 건 아닌 거 같다. 다행히 SK바이오사이언스가 3상까지 성공하면서 한 번 사이클을 다 경험했다. 다만 이번에 성공한 백신은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방식이 아니라는 점은 아쉽다. mRNA의 전체 개발 사이클을 한번 경험했다면 앞으로 우리가 바이러스에 대비해 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 것 같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때도 백신을 개발하다 포기했다. 또 개발을 포기하고 사다쓰는 일을 반복하는 거 아닌가.

"이번은 다르다. 이렇게 백신 개발 주기를 한번 경험했다는 점에서 희망은 있다. 치료제도 이미 한국이 개발해서 성공한 사례도 있다. 그래서 앞으로는 좀 달라질 것이다. 이번에는 메르스 때와는 좀 다르다. 모든 사람이 백신 개발엔 꾸준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바이러스는 또 출현할 수 있고 우리도 이런 기술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 모든 사회구성원이 동의했기 때문에 달라질 거로 생각한다. 메르스 때는 하다가 관두고 하다가 관두고 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정말 달라졌다. 무엇보다 mRNA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꾸준히 계속해야 한다. mRNA는 다른 바이러스가 출현해도 짧은 기간에 백신 개발이 가능한 기술이다."

-코로나 백신을 빨리 확보하겠다면서도 여러번 개발 시간표를 바꿨다. 왜 자꾸 이런 일이 발생하나.

"연구개발(R&D)은 급하고, 조급하게 재촉한다고 되는 일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 사실 전문가들의 얘기 좀 더 들어보고 국민들에게 발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기술은 기다림. 대학 연구 못하게 되면서 역동성 사라져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30일 대전 유성구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을 방문해 유석재 원장으로부터 '한국형핵융합실험장치(KSTAR)'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R&D)이 시대 흐름을 잘 따라가지 못하고 효율이 떨어지는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새 정부도 민간이 주도하는 R&D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개인적으로 그간 정부가 주도하고 민간 협력을 끌어냈던 부분은 매우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많은 국가들이 한국이 정부 주도로 짧은 기간에 성과를 이뤄냈다고 평가한다. 좀 우리가 우리 노력에 대해서 너무 박한 평가를 내리는 것 아닌가 한다. 장관이 되고 난 뒤 R&D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진행이 돼야 더 효율적일까를 한번 생각은 해봤다. 정부 입장에서 늘 민간에서 다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정부가 주도해야 할 부분은 분명히 있다. 아주 기초적인 기술이거나, 기업이 혼자 상용화하기 어려운 연구는 정부가 주도해야 한다. 

정부는 다양한 분야에 씨를 뿌려놔야 한다. 정부 주도로 온갖 분야의 기초 연구를 하도록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기업은 사업이 될 만하다 이랬을 때 좀 나서서 투자나 이런 걸 끌어내서 가져가면 좋겠다. 물론 정부가 나서 기업의 목소리를 듣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파악하고 규제를 완화해 준다든가 세제 지원을 해준다든가 해야 한다."

-매년 국가 연구개발(R&D)를 100조원을 쓰고 정부 R&D 예산만 30조원이 넘어가는 시대인데 미세먼지 같은 사회문제라든가 재해는 왜 해결 못할까.

"과학기술은 기다림이 필요하다. 특히 기초 연구는 기다림이다. 정부 공공 연구도 미세먼지 같은 사례를 비롯해 상당 부분이 난제에 해당한다. 1~2년 안에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고 전반적인 산업 포트폴리오도 관리해 나가면서 제거 기술도 개발해야 하고 일이 많다. 사실 미세먼지만 해도 제거 기술이 다 기초과학에 기반하고 있다."

-코로나19 때 해외에선 다양한 과학 프로젝트가 진행됐는데 한국은 너무 조용했다. 한국 과학의 역동성과 진취성이 너무 떨어지는 건 아닌가.

"분명히 그런 지적에 대해서는 좀 반성해야 할 부분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까 말씀드린 대로 과학기술의 어떤 성과가 나타나기까지는기다림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저 또한 연구자로서 정부 R&D를 많이 진행하면서 느꼈던 부분 중에 아쉬웠던 점이 연구자가 직접 해야 하는 행정부담이 너무 크다. 연구비 처리나 이런 것들도 너무 좀 까다로운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하나의 통합 지원 시스템으로 바뀌고 연구개발 혁신법도 생겨서 앞으로 부담을 획기적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아까 대학에서의 어떤 연구 역동성을 언급했는데 국내에서도 김빛내리 서울대 교수가 RNA 지도를 공개하는 등 세계에서 주목받은 연구들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침체된 것도 맞는 이야기다. 그러려면 국내 대학의 실상을 조금 좀 알아야 한다. 최근 10년 동안 국내 대학들은 등록금이 동결되다 보니 대학의 역동성은 정말 많이 떨어졌다. 대학에 연구비가 없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랬었는데 그런 게 이제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대학에는 좋은 연구자, 젊은 연구자들이 잘 오지도 않는다. 너무 높은 레벨, 그러니까 대선 공약 수준에서 정책이 정해지다 보니 바뀌지 않는 것 같다. 부처들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과학기술자들 정치 지도자 눈높이 맞춰 설득 더 해야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왼쪽)이 에릭 랜더 미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오른쪽)을 만나서 논의하고 있다. 과기정통부 제공.

-역대 정부도 마찬가지이고 문재인 정부도 대통령이 과학기술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소리를 듣는다. 인선과 정책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 이런 소리가 반복해서 나올까.

"기본적으로 과학기술인들의 책임이 좀 큰 것 같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과학기술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실제로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의사결정 권한이 있는 분들을 설득하고 알리려고 좀더 노력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대통령이 자신감이 생기고 어떤 정책 추진에 있어서도 뭔가 재미있게 추진했을 것 같은데 그간 그런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과학기술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에 오히려 대통령들이 과학기술은 자기가 할 영역 아니고 그냥 알아서들 하게 내버려 두는 영역으로 가버린 게 아닌가 싶다. 대통령이 자신감 있게 이해하도록 제대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과학기술의 특성에서 또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워낙 영역이 다양해서 어떤 영역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해서 어느 정도 설득이 되더라도 자꾸 새로운 지식이 나오니 따라가기 어려운 것 같다."

-과기정통부 장관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나. 

"맞다. 사실 장관이 되기 전에는 권한이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의외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이미 추진하는 정책이 있어도 장관의 아이디어를 덧붙여 바꿀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다. 부처에서 정책을 주관하고 밀고 나가는 실·국장을 잘 설득하면 장관의 아이디어를 구현할 방향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 대통령에게 이야기해서 정책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다. 대통령이나 정치인이 제시한 과학기술 정책은 대부분 거칠다. 그래서 장관에 따라서 디테일이 다르고 결국 정책의 색깔도 다르게 보일 수 있다. 방향이 같아도 다른 색깔로 보일 수 있다."

◇미국 유럽과 긴밀히 협조해야…과학계 수장 임기 꼭 필요

NASA가 홈페이지를 통해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이 아르테미스 협정에 서명한 소식을 비중있게 다뤘다. NASA 공식홈페이지 캡쳐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하면서 과학기술이 외교안보 문제로 떠올랐다.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사이에 껴있는 한국은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까.

"정말 예민한 그런 시대인 것 같다. 어떤 스탠스를 잡느냐에 따라 국가의 미래가 달라지는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2018년 불거진 소부장 문제를 보듯 한국은 중국과 일본에 상당한 의존성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중국은 우리의 주요 시장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정말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고 본다. 여러 면에서 한국은 기본적으로 미국과 유럽연합(EU)과 긴밀한 협력 체계를 잘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너무 정답인 것 같은 이야기지만 우주, 양자 분야처럼 기술력이 떨어진 부분은 미국과 밀접히 협력해야 한다. 러시아와의 협력은 당분간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제는 과학기술이라고 해서 전체 국제사회 움직임과 동떨어질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일본과의 협력은 다시 재개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아직 배우고 협력할 부분이 많다."

-최근 보수매체들이 문재인 정부 들어 임기를 마치지 못한 인사들을 문제 삼으며 과학기술계 블랙리스트 문제를 부각하고 있지만 이 문제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있었던 문제다. 과학이 정치화되는 거 아닌가.

"누구나 다 어떤 정치적 의견이 있고 정치색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너무 정치 과잉의 시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자신이 지지하는 진영을 너무 지나치게 지지하고 반대편은 너무 지나치게 배척하는 것 같아서 너무 좋지 않다. 원론적인 대답처럼 보이겠지만 최소한 과학기술계 수장들은 정치하고는 정말 무관하게 본인들이 처음 계획했던 소신을 끝까지 펼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앞으로도 여성 장관이 나올 수 있을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적당한 능력이 있는 분이 와서 했으면 좋겠지만 과기정통부에 더 많은 여성 장관이 나왔으면 좋겠다. 여성 과학계에도 꾸준히 경력을 쌓아온 인물들이 많이 있고 장관이 되실 만한 분들이 있다."

-퇴임 후 계획은.

  

"다시 연구실로 돌아간다. 당장 5월부터 복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이번 1학기 수업은 못 하지만 수업도 할 계획이다. 사실 연구실에 학생들이 이제는 없다. 휴직하는 교수에겐 학생들이 배정되지 않는다. 오래전 박사후연구원을 마친 뒤 학교에 처음 왔을 때처럼 연구실을 다시 처음부터 세팅해야 한다. 연구할 주제도 이미 생각해놨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박근태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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