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후보자 딸 '영문 논문' 읽어보니 [왜냐면]

한겨레 2022. 5. 9.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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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인사청문회]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메모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최승환ㅣ일리노이주립대 정치학과 교수

요즘 한국에서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이 쓴 논문들이 명문대학 진학을 위한 스펙 쌓기냐 아니냐를 가지고 여야가 공방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공방에서 논문들의 가치와 내용에 관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어, 학자인 나로서는 이상하게 느껴졌다. 마침 한 후보 딸이 쓴 영문 논문들이 내 연구영역과도 유사해 한번 읽어보기로 하고, 해당 저널 웹사이트에서 해당 논문 네편을 내려받아 출력했다. 그런데 첫번째 논문인 ‘분쟁 이후의 교육과 보건의료의 개선방안’을 읽고 나서, 나머지 논문들을 읽는 것은 괜한 시간낭비가 될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우선 내가 읽은 논문은 ‘인문, 예술 및 문학 아시아저널’(Asian Journal of Humanity, Art and Literature)에 실린 것으로 제목, 초록, 전문, 본문, 결론, 참고논문들로 이뤄져 논문의 기본적인 요소들은 모두 갖추고 있었다. 분량은 9쪽이었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고교 1학년이 이 정도 영문 논문을 쓸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것에 잠시 기뻤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일리노이주립대학교에 다니는 일부 학생들은, 자신의 집안에서는 처음으로 대학 진학을 해서인지 논문 쓰기가 한 후보 딸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한 후보 딸이 쓴 ‘분쟁 이후의 교육과 보건의료의 개선방안’은 전문학술논문집에 실린 것이니, 단순히 고등학생의 리포트나 에세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게 내 의견이다. 해당 저널 웹사이트에서는 ‘아시아 비즈니스 컨소시엄에서 만든 논문집으로 외부심사위원들의 평가로 출간 여부를 결정하는 학술지’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한 후보 딸이 쓴 논문이 어떻게 출간될 수 있었는지 수긍하기 어려웠다.

첫째, 해당 저널 웹사이트는 ‘논문은 반드시 새로운 연구여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한 후보 딸이 쓴 논문은 기존 논문 20개를 여기저기 짜깁기한 것으로 독창적인 요소가 전혀 없었다. 특히 88~89쪽 교육시스템에 관한 서술은, 4개의 기존 논문에 있는 내용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둘째, 논문은 사실에 바탕을 둬 쓰여야 하는데, 이 논문은 사실과 정반대로 서술된 부분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87쪽 ‘알바니아인들은 더는 숨어서 자녀들을 교육할 필요가 없다’는 대목은 사실과 정반대다. 한 후보 딸이 참고한 푸포브치(2013) 논문(552쪽)에서는 “알바니아인들이 중심이 돼 만든 학교는 공개적으로 운용됐다”고 서술돼 있기 때문이다. 한 후보 딸은 아마도 알바니아인들이 교육에 있어서 세르비아계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에 의해 차별과 탄압을 받았다는 주장을 강하게 하고 싶어서 사실과 반대로 서술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논문은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 논문은 앞뒤가 서로 통하지 않았다. 제목은 ‘분쟁 이후의 교육과 보건의료의 개선방안’ 논문인데, 결론에서 교육에 관한 내용은 전혀 제시되지 않다가 마지막 부분에 ‘교육’이란 단어가 갑자기 등장한 게 이상했다. 교육과 관련된 개선방향이라지만, 본문과 결론은 아무런 관련성이 없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고교 1학년인 천재 학생이 쓴 영문 논문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기에 내 연구와 비슷한 주제이기도 해서 한번 읽어 보려 했지만, 연구자로서 가장 중요한 연구윤리를 따르지 않았기에 크게 실망하고 다른 논문들은 읽어보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말았다. 학술논문은 정식으로 출판된 이후에는 모든 이들에게 접근 가능한 공공재와도 같다. 만약 논문이 연구윤리를 위반했을 경우에는 연구자 개인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가는 게 당연하기에, 학술 연구자들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학술지에 발표하는 데 있어 마지막까지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연구윤리에 대한 책임은 나이, 성별, 인종 등과 상관없이 모든 연구자에게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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