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과 '개별'을 적절히 배합하라

백우진 글쟁이(주) 대표 2022. 5. 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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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글쓰기 원포인트 레슨]일반적인 주장이 설득력 갖추려면 개별 사례 등의 뒷받침 필수

[편집자주] 많은 리더가 말하기도 어렵지만, 글쓰기는 더 어렵다고 호소한다. 고난도 소통 수단인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리더가 글을 통해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노하우를 구체적인 지침과 적절한 사례로 공유한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와 <일하는 문장들> 등 글쓰기 책을 쓴 백우진 글쟁이주식회사 대표가 연재한다. <편집자주>

▲백우진 글쟁이㈜ 대표

개별 없는 일반은 공허하고, 일반 없는 개별은 산만하다.

이는 글을 쓸 때 유념할 지침이다. 글에는 일반과 개별을 적절히 조합해 넣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공허한 글이 되기도 하고 산만한 글이 되기도 한다. 이 지침에서 ‘일반’과 ‘개별’은 각각 ‘추상’과 ‘구체’로 바꿔 생각해도 된다. 또는 ‘관념’과 ‘경험’이라고 여겨도 좋다.

글을 구성하는 개별과 일반에 대한 한 학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일본 사회학자 시미즈 이쿠타로(淸水 幾太郞)는 책 〈논문 잘 쓰는 법〉에서 대학 1,2학년생과 대학 3,4학년생의 리포트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1,2학년생의 리포트는 주로 학생 자신의 경험을 꼼꼼히, 혹은 장황하게 기술한 것이 많다.” “이와 반대로 3,4학년생이 되면 자신의 경험에 대한 구체적인 기술이 급격히 감소하고 그 대신 추상적 용어 사용이 눈에 띄게 증가한다.” 요컨대 대학 1,2학년생은 경험 위주로 쓰는 반면 대학 3,4학년생은 관념 위주로 쓴다는 것이다.

전자에 대해 시미즈 교수는 “일반적으로 무척 지루하다” “장황하게 쓴 기술이 대부분이다”라고 평가한다. 후자에 대해 그는 “특정 인간의 경험에서 벗어난다”면서 “읽어봐도 내용이 무엇인지 좀처럼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즉, 경험의 열거는 장황하고, 관념으로 일관하면 모호하다. 이는 서두에서 내가 제시한 ‘일반 없는 개별은 산만하고, 개별 없는 일반은 공허하다’는 경구와 비슷하다.

시미즈 교수는 “어려운 추상적 용어도 사용해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우리는 추상적 용어에 담긴 관념 그 자체를 잘 응시하면서 그 관념과 경험이 어떤 형태로 이어져 있는지를 직접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다소 추상적인 이 글쓰기 조언을 구체적으로 풀어내면, “글을 쓸 때에는 거론하는 추상과 관념에 담긴 구체와 경험을 예로 들라”가 되겠다. 또는 “일반적인 주장을 뒷받침하는 개별 사례를 제시하라”가 되겠다.

K신파가 출생률을 떨어뜨리나?
‘그런 지침은 누구나 알고 따르지 않나?’ 이렇게 반문하는 독자들도 계시리라. 그러나 지식과 실행은 별개임을 보여주는 글이 종종 눈에 띈다. 본문에서는 개별 없는 일반의 사례를 다룬다. 상자 글에서는 관념 없이 경험을 나열한 사례와 관념 아래 경험을 배치한 사례를 비교한다.
다음은 출생률을 주제로 한 칼럼의 끝 문단이다.

[관념 위주의 글] 대중 서사는 대중의 경험을 귀납적으로 재현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로부터 대중적 경험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숱한 사랑의 서사는 실제 사랑들을 모델로 삼은 것이지만, 그 서사를 모방하며 사랑을 시작할 이들에게는 서사 자체가 모델이다. 부모 자식 관계를 재현하는 서사도 마찬가지다. 자식을 위한 희생이 부모의 운명임을 강조하는 K신파를 모델로 강요받는 일이 반복되면 청년 세대는 자신이 그런 부모가 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는 쪽으로 더 나아가게 될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식과 ‘함께’ 사는 존재라는 점을 정당하게 강조하는 이야기가 많아져야 감히 부모가 되기로 마음먹는 이들도 늘어나리라. 그래서 오늘의 가설적 결론은 이것이다. ‘K신파는 출생률을 떨어뜨린다.’ (출처: 신형철, K신파와 출생률의 상관성 가설, 경향신문, 2021.02.22.)

이 칼럼의 가설은 ‘K신파가 출생률을 떨어뜨린다’이다. 그렇다면 ‘K신파를 구성하는 부모의 희생이라는 요소가 줄어들면 출생률이 높아진다’는 가설이 도출된다. 이 가설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이 칼럼의 취약점은 논의하거나 반박할 개별 사례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내가 최근 모임에서 만난 20대와 30대 몇 명이 결혼을 미루거나 출산을 포기하는 이유로 K신파를 들었다’와 같은 사례가 없다. 인용된 마지막 문단 밖의 부분에도 없다. (설령 이 칼럼이 그런 사례를 들었더라도 “극히 일부의 예를 일반화한 결론”이라는 반박이 가능하지만.)

결론. 이 칼럼은 경험이 없는 관념의 산물이다. 생생하지 않다. 설득력이 없다.
당신이 출생률을 높이는 방안을 주제로 칼럼을 쓴다고 하자. 먼저 낮은 출생률의 요인을 파악하기 위해 직간접적으로 실상을 조사해야 한다. 실상은 기존 사례나 설문조사를 통해 알아볼 수 있다. 실태를 보여주는 통계도 찾아보면 좋다. 보도된 기사와 칼럼을 검색하는 작업은 기본이다.

방안은 ‘관념’ 아닌 ‘현실’에서 찾아야
기사로 보도된 다음 사례들과 설문조사는 결혼 전후의 경제적 부담, 육아 부담, 경력 단절 등이 낮은 출생률의 요인임을 보여준다. 칼럼을 쓸 때 이와 같은 개별 사례와 설문조사 결과를 든 뒤 출생률을 높이는 방안을 제시해야 주장이 내실을 갖춘다.

[사례1] 직장인 김모(31)씨는 “30대가 돼서야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에서 결혼하게 되면 경제적 여유가 없어질 것 같다”며 “결혼할 만큼 모아둔 자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어서 그냥 혼자 사는 지금이 편하다”고 했다. (출처: 아시아경제, “먹고살기 바쁜데 언제 결혼하고 애 낳냐” 출산 포기하는 20·30, 2021.02.27.)

[사례2] 두 딸을 키우는 A씨는 50대 후반이다. A씨는 맏딸이 아이를 낳으면 지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딸이 사는 동네로 이사 가서 육아를 전담해줄 생각이다. A씨는 “내 딸이 경력단절을 겪지 않으려면 고된 ‘황혼 육아’라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씁쓸해했다. (출처: 여성신문, “인구정책 아웃! 여성에게 책임 묻지 마라” 저출생 용어 사용 운동, 2017.02.08.)

[설문조사] 인구감소가 이대로 유지된다면 10년 후 몇 개의 학교가 남을 것인가. 우리나라 2020년 2분기 출생률이 0.84%라고 한다. 20~30대를 대상으로 한 어느 설문조사에서는 우리나라의 출생률 저조 이유로 “우리 아이가 나보다 못한 삶을 살까 봐” 와 “아이 키우기 어려워서”가 이유로 꼽혔다. 정부가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출처: 김상권, 현장교육을 고민할 때다, 경남일보, 2021.01.07.)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이고, 직관 없는 개념은 공허하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가르침이다. 구체적인 개별 사례(또는 경험)가 없는 추상적인 일반(또는 관념)은 공허하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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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진 글쟁이(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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