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노무현과 이재명의 '다른 길'

기자 2022. 5. 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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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제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1.5%포인트(39만557표) 차로 석패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8개월 뒤 당 총재로 선출되면서 일선에 복귀했다.

이런 진정성이 전해졌는지 2년 뒤 제16대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손쉽게 당선되기는 했지만 편한 지역에 출마해 당선되고 2000년 5월 당 총재로 재선출돼 대선 재수의 발판 마련에 성공했지만, 2년 뒤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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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1997년 12월 제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1.5%포인트(39만557표) 차로 석패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8개월 뒤 당 총재로 선출되면서 일선에 복귀했다. 당시만 해도 아주 빠른 복귀라는 비판이 있었다. 특히, 1998년 7월에 이명박 의원의 사퇴로 공석이 된 종로 보궐선거에 출마하라는 당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제15대 총선에서 종로에 출마해 낙선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종로 보궐선거에 출마해 54.4%의 지지를 얻어 여의도에 재입성했다. 3번의 선거 실패 이후 종로에서 당선된 노 전 대통령은 재도약의 기회를 잡았다.

6년 만에 국회에 복귀한 노 전 대통령은 2년 뒤인 2000년 4월 제16대 총선에서 다시 부산에 출마한다. 부인과 자녀들, 보좌관 등이 모두 반대했지만 지역주의를 깨기 위한 신념으로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해 결국 낙선하고 말았다. 무모한 도전을 한다는 이유로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이 생겼다. 이런 진정성이 전해졌는지 2년 뒤 제16대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반면, 종로 출마 권유를 뿌리쳤던 이회창 전 총재는 1999년 6월 3일 “당과 민주주의를 살리겠다”는 명분으로 송파갑 재선거에 출마한다. 손쉽게 당선되기는 했지만 편한 지역에 출마해 당선되고 2000년 5월 당 총재로 재선출돼 대선 재수의 발판 마련에 성공했지만, 2년 뒤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패했다.

무모했지만 의미 있는 도전을 했던 노 전 대통령과 편안한 길만 찾았던 이 전 총재의 운명은 대선에서 갈렸다. 2007년 제17대 대선에서 패배한 정동영 전 의원도 이듬해 무리하게 총선에 나서 패배했다.

지난 3·9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2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6월 1일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기로 했다. 역대 가장 빠른 대선 후보의 복귀전인데 자신의 거주지이자 정치적 연고지인 성남 분당갑이 아닌 지지세가 강한 지역에 출마하는 데 대해 당 안팎의 비판 여론이 거세다. 범죄 방탄용 주장까지 쏟아진다. 0.73%포인트 차이의 패배의 아쉬움이 가시지 않아서인지 모르지만 ‘제2의 이회창’ 길을 갈 우려가 크다. ‘축적의 시간’ 없이 다시 일선에 나서는 이 고문의 도전이 불안하게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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