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시론] 그리고 빛이 있었다

홍지영 2022. 5. 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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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아우라'라고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후광'이 비친다고도 한다.

스스로는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 태양처럼 '배우'는 우리에게 그런 존재다.

이렇듯 배우는 우리에게 이미지와 소리가 있는 정확한 물질, 즉 영화로 그 부재를 극복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배우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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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화적 뮤즈
강수연 배우가 사라졌다
작품이름을 부르는 순간
즉 영화로 그 부재를 극복한다
▲ 홍지영 영화감독·강원영상위원장

누군가는 ‘아우라’라고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후광’이 비친다고도 한다. 스스로는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 태양처럼 ‘배우’는 우리에게 그런 존재다. 좀처럼 사라질 것 같지 않은 상징으로 우리 곁에 머물다 인간의 모습으로 끝내 고고하게 퇴장하는 한 사람!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 깊이 흔적을 남긴다. 2022년 5월 7일 나의 영화적 뮤즈 강수연 배우가 그렇게 사라졌다.

그는 동아시아 최초로 세계적인 국제 영화제 본상을 수상한 월드 스타이기 이전에 이미 하이틴 스타였고 아역 배우였다. 그리고 이후 당당히 영화로 성인식을 치른 그에게 뜬금없이 신인 배우상을 수여했을 때 과감하게 수상을 거절했던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영화 안팎에서 자존감과 자기감을 정확히 표현하고 실천했던 멋진 롤 모델이자, 어려운 시절 영화인들 사이의 심리적 연대를 치하하고 격려했던 쾌활한 리더였다. 벌써 그가 그리워진다.

‘씨받이’,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아제 아제 바라아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경마장 가는 길’, ‘그대 안의 블루’, ‘지독한 사랑’, ‘블랙잭’, ‘처녀들의 저녁식사’, ‘송어’, ‘주리’ 그리고 유작이 될 ‘정이’에 이르기까지 아직 일일이 헤아리지 못한 작품들을 모두 열거한다 해도 이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겠지만, 작품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마치 그를 지금 우리 곁으로 소환한 것만 같은 기쁨을 맛본다. 이렇듯 배우는 우리에게 이미지와 소리가 있는 정확한 물질, 즉 영화로 그 부재를 극복한다.

좋은 배우는 총 천연색 팔레트를 가지고 있다. 감독이 화가가 되어 캔버스와 붓을 준비하면 배우는 기꺼이 아름답고 적절한 색이 되어 함께 바라본 세상을 그려낸다. 만약 완성된 그림을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을 한순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었다면 그야말로 삼위일체가 된 거다. 가장 영화적인 것은 이렇게 세 요소, 감독과 배우와 관객이 예상치 못한 시너지 조합을 이룰 때 가능해진다.

어쩌면 가까운 지인의 죽음보다 먼 배우의 부음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이런 배우의 속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배우를 기억한다. 나에게 강수연이라는 배우는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동갑내기 두 대학 동기에게 끝까지 의리를 지키는 당찬 대학생 미미이자, 엄청난 무게의 사회적 관계망 대잔치 결혼식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로 탈출을 감행하는 멋진 신부 유림이다. 이처럼 배우는 영화라는 불멸의 흔적 안에서 한 시대와 특정한 공간을 점하며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존재로서 더 이상 늙지도 않은 채 생을 반복적으로 살아갈 운명을 가진 영혼이다. 그러니 배우는 죽지 않고 그저 사라질 뿐이다.

내가 요즘 매일 오르는 남산의 자연이 제대로 초록을 입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가능할 거 같지 않던 푸름이 날마다 색을 더한다. 머무르고 싶은 깊은 칩거의 겨울이 몸과 마음을 부지런히 작동시키는 봄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그렇다.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그가 우리에게 왔듯이 또 자연스럽게 이 봄 그는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기억한다. 스산했으나 운치 있었던 메마른 겨울의 그 살아있던 느낌을. 이 봄이 되돌릴 수 없는 자연의 흐름이라면 이 상실도 조용히 맞으려 한다. 죽음의 자리에 드디어 빛이 보인다. 그리고 빛은 언제나 거기에 있었다.

홍지영 △영월 △강릉여고 △연세대 대학원 철학 석사·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영상예술 박사 수료 △영화 ‘키친’,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새해전야’ 등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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