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中 코로나 봉쇄.. 누구를 위한 승리인가

이귀전 2022. 5. 8.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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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봉쇄 후 주민들 극한 고통
베이징 시민들도 두려움에 사재기
최소한의 자유·권리 짓밟히고 있어
당국, 감염자 숫자 매몰 자화자찬만

몇 번째 핵산 검사인지도 알 수 없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다. 일상이 됐다. 3월 말부터 시작된 봉쇄 이후 핵산 검사 때 외에는 집을 벗어난 적이 없다. 아파트에 사는 이들이 모두 같은 상황이다. 봉쇄 초기 아파트 단지에서 매일 나오던 코로나19 감염자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열흘은 된 것 같다. 아파트 단지에서 감염자가 나올 일은 없어 보였다. 감염자만 없으면 단지 밖으로 잠시 외출이라도 가능할 것이란 기대감을 살짝 가져본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과했나보다. 며칠간 나오지 않던 감염자가 다시 발생했다. 끝을 알 수 없는 쳇바퀴 같은 일상이 다시 또 반복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도시가 봉쇄된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아파트에 격리된 채 지내고 있는 한국 교민과 최근 나눈 대화를 재구성했다.
이귀전 베이징 특파원
도시 봉쇄 이후 집밖에 나오지 못한 지 40일이 넘었지만 주거단지에서 감염자가 나오지 않다가 다시 발생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이 상하이시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 4월30일 기준 감염자가 발생한 주거단지 중 471곳이 앞선 29일 동안 한 번도 감염자가 나오지 않은 곳이다. 3월 말부터 도시를 봉쇄한 상하이에선 현실적으로 주거단지 내에서만 전파가 가능한 상황이다. 잠복기를 감안하더라도 29일 동안 감염자가 없던 아파트에서 감염자가 발생했다는 것은 40일 넘게 이어진 봉쇄 정책의 효과에 의문을 품게 한다.

중국은 그동안 봉쇄와 격리로 대표되는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을 막아왔다. 전파력이 강한 오미크론이 퍼진 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무작정 봉쇄를 통해 감염자 숫자가 줄기를 바라고 있다.

상하이만이 아니라 수도 베이징(北京)도 봉쇄 수순이다. 등교 수업은 멈췄다. 재택근무를 권고했다. 일부 지역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다. 식당들은 배달과 포장 판매로만 영업해야 한다. 관리·통제구역으로 봉쇄된 지역 외에는 아직 돌아다니는 데 지장은 없다. 하지만 조만간 상하이 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주민들도 언제 갑자기 시작될지 모르는 봉쇄에 대비해 최소 1∼2주를 버틸 수 있는 물과 음식 등을 쟁여놨다. 마치 전시 상황에 대비하는 것처럼 말이다. 베이징시에선 물자 공급이 풍부하고 봉쇄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 얘기하지만 중국인조차 “중국에선 바로 이럴 때 봉쇄된다”는 자조 섞인 얘기를 던지고 있다.

미국 전염병 권위자인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은 지난 4일 포린폴리시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는 봉쇄가 취약층에게 예방 접종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임시 조치라는 것을 먼저 인지해야만 한다”며 “자체 백신이 다른 나라 백신보다 효과적이지 않고, 노인들의 백신 접종률도 낮아 바이러스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는 중국의 코로나 상황은 ‘재앙’”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비판에도 꿈쩍 않는다. 오히려 지도부부터 승리를 할 것이라며 ‘제로 코로나’ 정책 고수를 강조하고 나섰다.

중국공산당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주재로 지난 5일 열린 회의에서 “우리의 방역정책은 이미 역사적 검증을 거쳤으며, 과학적으로 유효하다”며 “우리는 우한 보위전에서 승리했고, 상하이 보위전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이 말하는 ‘승리’가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상하이에서 핵산 검사 음성 결과가 없다는 이유로 응급실 진료를 받지 못하던 이가 사망했다. 진료를 받지 못하고 복통을 참다가 고통을 못 이겨 극단적 선택한 이도 있다. 한국 교민마저 봉쇄의 영향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상하이뿐 아니다. 중국 전역에서 봉쇄된 지역 여기저기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살기 위해 취한 봉쇄가 점점 ‘죽음의 수렁’으로 이끌고 있다. 코로나보다 격리와 봉쇄가 두려워지고 있다.

그저 감염자 숫자에 매몰된 이들에게 이런 상황은 보이지 않는다. 봉쇄가 더 이어지면 결국 숫자는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중국 지도부는 “우리가 승리했다”고 외칠 것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승리’인가. 개개인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자유와 권리가 정치권력을 위해 처참히 짓밟히고 있다.

이귀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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