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보] 故 김지하 시인 생애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2022. 5. 8.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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Δ1941년 2월4일 전라남도 목포의 동학농민운동가 집안에서 출생.

Δ1963년 3월 '목포문학'에 김지하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시 '저녁 이야기'가 처음으로 활자화됐고, 같은 달 2년 동안의 도피 생활을 청산하고, 복학해 이듬해부터 전투적인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Δ1985년 8월 창작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학인 401 선언.

Δ2001년 5월 '실천문학' 여름호에 '죽음의 굿판' 발언에 대한 유감 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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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지하 시인 (뉴스1 DB)2022.5.8/뉴스1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Δ1941년 2월4일 전라남도 목포의 동학농민운동가 집안에서 출생. 원주중학교 재학 중 천주교 원주교구의 지학순(池學淳) 주교와 인연을 맺은 뒤 서울 중동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Δ1959년 서울대 문리대 미학과 입학

Δ1960년 4·19혁명 참가.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남쪽 학생 대표로 활동하면서 학생운동에 앞장서는 한편, 5·16군사정변 이후에는 수배를 피해 항만의 인부나 광부 등으로 일하며 도피 생활했다.

Δ1963년 3월 '목포문학'에 김지하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시 '저녁 이야기'가 처음으로 활자화됐고, 같은 달 2년 동안의 도피 생활을 청산하고, 복학해 이듬해부터 전투적인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Δ1964년 6월 '서울대학교 6·3한일굴욕회담반대 학생총연합회' 소속으로 활동하다 체포돼 4개월의 수감 끝에 풀려나다.

Δ1966년 8월 7년6개월만에 서울대학교 미학과 졸업.

Δ1969년 '황톳길' 등 5편의 시를 '시인'지에 발표, 작품 활동 시작.

Δ1970년 장편 담시(譚詩) '오적'(五賊)을 '사상계' 5월호에 발표. 반공법 위반 혐의로 체포돼 100일만에 석방. 이 작품 발표로 그는 박정희 군사독재시대의 '뜨거운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 '오적'으로 인해 '사상계'와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의 발행인·편집인이 연행됐고, '사상계'는 정간됐다. 희곡 '나폴레옹코냑' 상연, 평론 '풍자냐 자살이냐' 발표. 첫 시집 '황토(黃土)' 간행

Δ1971년 담시(譚詩) '앵적가(櫻賊歌)', 희곡 '구리 이순신' 발표.

Δ1972년 담시(譚詩) '비어(蜚語)' 발표, 이로 인해 마산결핵요양원에 강제 입원

Δ1974년 '민청학련사건' 관련, 긴급조치 4호 위반·국보위 내란선동죄 등으로 사형 선고 받음. 무기로 감형

Δ1975년 출옥 후 옥중기 '고행 1974' 발표, 다시 구속. 옥중에서 '양심 선언' 발표. 아시아·아프리카 작가회의의 '로터스' 특별상 수상. 노벨 평화상·문학상 후보로 추천.

Δ1976년 반공법 위반으로 징역 7년 선고

Δ1978년 일본 펜클럽 객원회원. 12월 무기징역에서 20년으로 감형.

Δ1980년 형 집행 정지로 석방

Δ1981년 '세계시인대회'의 '위대한 시인상' 수상. 브르노 크라이스키 인권상 수상.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 소설 '남(南)', 이야기모음 '밥', '남녘땅 뱃노래' 등 간행

Δ1982년 9월 오적사건(五賊事件) 원심 확정(징역 1년, 자격종지 1년, 집행유예 2년)

Δ1984년 사면복권.

Δ1985년 8월 창작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학인 401 선언.

Δ1987년 시집 '검은산 하얀방' 간행

Δ1990년 4월 반공법 재판 시효(15년) 만료로 면소(免訴)

Δ1991년 '김지하 전집' 발간.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 걷어치워라' 기고. 사단법인 '생명과 평화의 길' 이사장 취임.

Δ1993년 제5회 이상문학상 수상

Δ1995년 9월17일자 일간지 에 김지하 시인은 고통과 수난, 압제의 상징이었던 과거의 '지하'란 이름을 버리고 '김형'이라는 필명(筆名)을 사용한다고 하며, 새롭게 태어난 모습으로 활동하고 싶다고 밝혔다

Δ1998년 전통풍류도 통한 문화운동 단체 '율려학회' 발족, 현재까지 '율려학회' 회장. 재2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

Δ1999년 명지대 인문대 문예창작학과 석좌교수

Δ2000년 12월 (현)독도찾기운동본부 상임대표

Δ2001년 5월 '실천문학' 여름호에 '죽음의 굿판' 발언에 대한 유감 표명. 명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좌교수(∼2004)

Δ2003년 '세계생명문화포럼-경기 2003' 공동추진위원장

Δ2004년 7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석좌교수

Δ2005년 영남대학교 교양학부 석좌교수

Δ2007년 9월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Δ2008년 (현)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석좌교수

Δ2012년 11월26일 시국강연회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지지의사 선언.

Δ2013년 건국대학교 대학원 석좌교수

Δ2018년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선언에 대해 잘못된 판단이라 인정.

Δ2019년 11월25일 부인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별세. 향년 73세.

Δ2022년 5월8일 강원도 원주시 자택에서 별세.

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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