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시민일까?

한겨레 2022. 5. 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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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필자에게 각인된 세가지 일화를 나누려고 한다.

첫번째 일화는 내가 사는 지역에서 몇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이번 연수는 한참 재미질라는디 ○○가 아조 베려부렀당게." 나에게 일화를 전한 선배의 말끝은 이랬다.

위에 언급한 첫번째 일화에서 한 사람의 용기는 지역의 문화를 바꿔내진 못했지만, 그 용기를 전해 들은 누군가에겐 큰 울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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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지난 3일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주최로 차별금지법 즉각 제정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말고] 명인(命人)|인권교육연구소 ‘너머’ 대표

오늘은 필자에게 각인된 세가지 일화를 나누려고 한다.

첫번째 일화는 내가 사는 지역에서 몇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어떤 면 단위에서 이장단 연수를 가서 밤엔 노래방엘 갔더란다. 술은 기왕이면 여자가 따라야 제맛이라 믿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도우미를 불렀고, 성희롱과 성추행이 자연스레 오가면서 술자리가 점점 흥건해지려는 찰나, 그런 자리인 줄 모르고 참석했던 이장 한 사람이 그 추태를 못 견디고 “이게 뭣 허는 짓거리들이여?” 하면서 술상을 엎었다. 그 일화가 알려진 건 오히려 그 일을 생생하게 떠벌리고 다니는 다른 이장들 때문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매양 이렇게 끝이 났다. “이번 연수는 한참 재미질라는디 ○○가 아조 베려부렀당게.” 나에게 일화를 전한 선배의 말끝은 이랬다. “그런 자리에 난 아예 안 가는 게 수인 중만 알었는디 ○○는 그렸다네 글씨.”

다음은 지난달 트위터에서 본 일화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어떤 아저씨가 함께 타고 있던 장애인에게 ‘장애인 놈이 어딜 돌아다니냐’고 소리 지르면서 꿀밤을 때렸다. 그런데 그때 주변에 있던 한 사람이 ‘당신 뭐냐?’며 그 아저씨를 제지했다. 학생 옆에 있던 아주머니는 “괜찮아요, 괜찮아” 하면서 겁먹은 장애인을 다독여주었고, 또 다른 사람들도 그 아저씨를 제지하는 목소리를 더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장애인을 윽박지르던 사람의 기세가 조금은 누그러졌지만, 그는 여전히 장애인을 비하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지하철의 정차로 문이 열리자 그 사람을 밀어내며 말했다. “당신 같은 사람은 지하철 탈 자격도 없어!” 지하철이 다시 출발하자 다른 승객들이 연신 장애인을 위로하며 대신 사과했다고.

마지막 일화는 2012년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있었던 일이다. 청소노동자들이 임금삭감에 항의하여 파업했다. 공항이 쓰레기 더미로 뒤덮여 아수라장이 된 사진이 한국 신문에도 보도됐다. 그 사진에서 출입국 수속을 위해 줄 서 있는 여행객들의 모습은 일상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이 소식을 알게 된 바르셀로나의 한국인 유학생들이 자원봉사단을 꾸려 청소를 하러 갔더란다. 뜻밖에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거친 항의를 받은 건 시위 중인 청소노동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원봉사단이었다고.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권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 시민들의 항의 이유였다. 청소년노동인권교육 시간에 가끔 이 사진으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학생들은 이구동성 이야기하곤 한다. 이 사진에서 한국인 자원봉사자들은 쓰레기만 보았다고. 시민이라면 노동자의 권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위에 언급한 첫번째 일화에서 한 사람의 용기는 지역의 문화를 바꿔내진 못했지만, 그 용기를 전해 들은 누군가에겐 큰 울림을 주었다. 두번째 일화에서 여러 사람이 낸 용기는 지하철 안의 공기 자체를 바꾸었다. 그리고 마지막 일화는 성숙한 시민의 상식이란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시민들의 상식은 그 사회의 제도에 영향을 받지만, 사회의 잘못을 고치는 제도를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 국회 앞에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한달째 단식 중인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혐오와 차별을 막기 위해 용기를 내는 첫번째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그 사람의 용기에 반응하는 두번째, 세번째 용기가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어렵게 낸 누군가의 용기를 꺾는 방관자, 아니면 알게 모르게 차별에 동조하거나 혐오를 확산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과연 어떤 시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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