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물류센터 12시간 노동에 산재 신청도 못해..인권침해"
응답자 77.6% '빨리 걷는 수준 이상 노동강도'
"일용직 노동자, 산재 신청하면 블랙리스트에"
“근무 시간이 연장이랑 점심시간 그런 거 포함하면 14~15시간이 돼요. 출퇴근 통근하는 시간이 대기시간을 빼도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끽해야 5~6시간. 밥 먹고 그러면 자는 시간은 실제로 3~4시간.”(택배 물류센터 노동자 ㄱ)
“거기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사람으로 안 봐요. 일단, 야, 너! 이렇게 시작해요.”(택배 물류센터 노동자 ㄴ)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공개한 ‘생활물류센터 종사자 노동인권상황 실태조사’ 연구용역보고서에 담긴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목소리다. 인권위가 생활물류센터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과 극심한 장시간 노동으로 인권을 침해받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불안정한 고용구조 탓에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다쳐도 산재를 신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인권위가 사단법인 참세상 부설 참세상연구소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부설 노동권연구소에 의뢰해 작성한 연구용역보고서 ‘생활물류센터 종사자 노동인권상황 실태조사’를 8일 보면, 노동자들은 열악한 작업 조건과 위험한 노동 환경에 놓여 노동인권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었다. 보고서는 단일품목 판매사·택배사·종합판매사 물류센터 노동자 49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와 물류센터 노동자와 관리자 등 52명 면접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보고서는 물류센터 노동의 특성으로 △야간 노동 △장시간 노동 △극심한 노동강도 △중층화된 도급구조 등을 꼽았다.
연구 결과, 야간·장시간 노동은 물류센터 노동자에게 일상이었다. 특히 민간택배사 노동자의 경우 저녁에 출근해 다음 날 아침에 퇴근하는 밤샘작업 때문에 하루 평균 12시간에 가깝게 일하고 있었다. 이들은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물류 작업장으로 출퇴근하느라 수면 시간이 하루 서너 시간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간택배사에서 일하는 한 50대 남성은 “하루에 3시간 자면 푹 잔 거다. 점심을 일찍 먹고 어디 짱박혀서 20∼30분 자는 식으로 벌충한다”고 했다.
노동강도와 관련한 질문에서는 노동자 496명 중 77.6%(385명)가 ‘빨리 걷는 수준 이상의 힘듦’이라고 답했다. 특히 노동강도가 세서 ‘막장 알바’라고 불리는 상·하차 작업 노동자의 경우 ‘계속 빨리 걷는 수준’의 노동강도(34.3%)보다 ‘달리기하는 수준’의 노동강도(43.5%)라는 응답이 더 많았다.
강도 높은 일에 노동자들은 자주 다쳤다. 노동자 496명 중 18%는 입고·집품·포장·운반·분류·상·하차 등의 공정에서 다쳤으며 이중 상·하차 작업의 비율이 가장 높게 나왔다. 이들은 허리와 목의 통증, 근육통이나 손·팔·다리 저림 등을 느꼈다. 그러나 산재신청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일하다 다쳐서 4일 이상 치료를 받은 노동자 가운데 산재보험으로 치료비를 받았다는 응답자는 546명(중복응답) 가운데 30명(약 5.5%)이었으며, 자비로 부담했다는 응답자는 113명으로 4배에 달했다. 일하다 다쳤지만 치료받지 않았다는 응답자도 37명이었다. 보고서는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거나 못함으로써 제도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정보의 접근권이 약하고, 고용상의 불안정 때문에 노동자가 스스로 산재신청을 체념한다. 대부분 노동자들이 치료나 병가를 지연시키며 생계유지를 선택하기도 한다”고 짚었다.
보고서는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겪는 문제의 근원에는 불안정한 고용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의 조사에 응답한 노동자 중 계약직은 37.1%, 일용직은 31.9%, 상용직은 30.0%인 것으로 집계됐다. 계약직의 경우에는 무기계약직 전환과 퇴직금 지급을 회피하기 위한 쪼개기 계약이 만연했다. 일용직의 경우에는 인력업체들이 산재 신청 등을 하는 노동자의 경우 블랙리스트를 공유해 노동자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택배터미널 인력회사 전직 관리자는 보고서에 “산재 신청을 하면 다음부터 (운영)회사 차원에서 (인력)업체에 다 공유해서 (산재 신청을) 안 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보고서는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중층화된 도급구조와 비표준적 고용 관행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연구진은 “파견법에 대한 근본적 폐지를 검토하고 모든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원사용자가 책임을 지고, 표준 고용에서 벗어나 있는 노동자들의 사회보험 이력 관리를 제안한다”고 했다. 또한 근로기준법에 야간 노동을 규제하는 법안을 신설하거나 물류산업 영업시간을 제한해 야간 노동을 규제하고, 택배회사 물류센터를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택배물류 노동자들을 과로위험 직업군 업종으로 지정하고 노동자들에게 작업거부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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