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비하인드] '비대면 진료'만 하는 병원은 '불법'일까?
※ '코로나 비하인드'는 코로나19 취재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SBS 보도본부 생활문화부 박수진 기자의 취재기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기사에는 담지 못했던 박 기자의 취재물과 생각들을 독자들께 풀어놓습니다. [편집자 주]
"비대면 진료만 하는 병원이라고 해서 연락드렸는데요."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휴대폰 너머로 "아니요. 저희 대면 진료도 해요. 잘못 아신 거예요"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다른 병원과 지역 보건소에서 '비대면 진료만 하는 병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전화를 걸었던 건데, 단번에 아니라고 하니 당황스러웠습니다. 통화를 이어가다 보니 지난 3월 개원 이후 '현재로선' 비대면 진료만 하고 있는 곳인 건 맞았습니다. 다만 대면 진료도 곧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5월 말부터 대면 진료도 할 예정입니다. 대면 진료할 공간도 따로 마련돼 있어요."
찾아가 봤습니다.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서울 강남의 주상복합 건물에 자리한 '의원'이었는데, 건물 밖은 물론 안에서도 간판이나 안내 표시를 찾긴 어려웠습니다. 이 의원은 4층과 6층에 두 개의 공간을 갖고 있었는데, 출입문에는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00의원은 4층과 6층에서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한시적으로 6층에서 비대면 진료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5월 중 4층에서 대면진료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기자: 여기 병원 맞나요? 진료 가능한가 해서요.
직원: 진료 보는 곳은 4층인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닫아서요.
현재는 비대면 진료만 하고 있고요, 대면 진료는 아직 안 됩니다. 죄송해요.
기자: 대면 진료는 언제부터 하세요?
직원: 5월 중순이나 하순부터 시작할 거예요.
건물을 나와서 비대면 진료 앱을 켜고 이 의원을 검색해봤습니다. 의사 2명이 '진료 중'이라는 안내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또 다른 의원. 이곳은 이미 일부 언론에 인터뷰도 실린, '비대면 진료만 하는 병원'으로 알려진 곳이었습니다. 이 의원을 운영하는 이의선 원장도 처음 통화를 했을 때 '비대면 진료만 하시나'라는 기자 질문에 비슷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오해입니다. 그동안 대면 진료를 하러 오는 분들도 적지만 있었고요. 그분들을 거부한 적은 없어요. 앞으로 대면 진료도 더 늘릴 예정이에요."
이곳도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고층 아파트 단지 옆 상가에 자리하고 있는데, 건물 내부 입점 시설 안내판에는 이 의원의 이름은 적혀있지 않았습니다. 주소상으론 3층에 있다고 나오는데, 올라가 보니 대형 내과와 치과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겨우 출입문을 찾고 나서야 문에 붙어있는 의원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문은 닫혀있었습니다.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왼쪽에 안내데스크와 오른쪽에 환자들이 앉아서 대기할 수 있는 의자도 보였습니다. 조금 의아했습니다. SBS 비디오머그팀이 인터뷰를 위해 이 의원을 1주일 전 방문했었는데, 그때 촬영했던 내부 모습에선 이런 안내데스크나 환자 대기용 의자는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의선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병원 세팅이 그때랑 조금 바뀌었어요. 대면 진료도 가능한 세팅으로 바꾸고 있어요. 안내데스크랑 의자도 놓고, 대면 환자 검진할 수 있는 베드도 들여놓고요."
[SBS 뉴스 사이트에서 해당 동영상 보기]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741754&plink=YOUTUBE&cooper=DAUM ]
"비대면만 하지 않는다", "오해다" 손사래 친 이유
"보건소에서 두 번 행정지도를 왔다 가셨어요. 2주 전에 한 번, 그리고 오늘. 비대면만 하는 건 불법 소지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대면 진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불법이 되면 안 되니까 하이브리드 식으로 대면 진료와 비대면 진료를 모두 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고 있어요." (서울 영등포구 의원)
"보건소에서 한번 오셨었는데요. 저희 5월부터 대면 진료 오픈한다고 안내문 붙어있는 거 보시고 돌아가셨어요." (서울 강남구 의원)
보건복지부에도 물었습니다. 비대면 진료만 하는 병원이 있다는 민원을 받았고, 보건소에 현장 지도 공문을 내렸다고 했습니다. 보건의료정책과 관계자는 "보건소에서 직접 나가 조치한 걸로 알고 있다. 대면 진료하라고 지도했고, 그렇게 하겠다고 답을 받은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비대면 진료 앱을 통해 원하는 병원과 의사를 고르고, 전화로 진료 후 약까지 배달받는 세상이 그 어느 때보다 친밀해진 현재. 병원이 '비대면 진료'만 하는 건 안 되는 걸까요? 정부는 왜 여러 차례 현장 점검까지 나가며 대면 진료 병행을 요구한 걸까요?
불법인 듯, 불법 아닌, 불법 같은
그런데도 정부가 행정조치를 할 수 있는 근거에는 우선 의료법 15조 '진료 거부 금지' 조항이 있습니다.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개설자가 진료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하게 돼 있는데요, 비대면 진료'만'하는 병원의 형태는 대면 진료를 거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게 정부 설명입니다.
"비대면 진료만 하는 것은 진료 거부에 해당하는 소지가 있습니다. 대면 진료를 받으러 오는 환자들을 거부하는 걸로 볼 수 있는 거죠. '불법'이라고 단정하려면 물론 법적 판단이 있어야 하지만, 만약 '내가 진료를 거부당했다'는 환자가 나오면 문제가 되죠."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
이외에도 의료법 제17조와 17조의2는, 진단서와 처방전의 권한도 '직접 진찰한 의료인'에 한하고 있는데 이 '직접'의 개념에 과연 비대면 진료도 포함될 수 있는지도 논란의 여지는 있습니다. 의료법 제34조가 규정하는 '원격의료'는 의사-의료인 간 원격의료 (먼 곳에 있는 의료인에게 의료지식이나 기술을 지원)는 제한적으로 인정하지만,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는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즉, 병원이란 공간은 있지만 대면 진료는 하지 않는 '비대면 중심 병원'은 코로나로 바뀐 일상과, 한시적 규제 완화라는 시류를 만나 탄생한 '변종'인 셈입니다. 위에 소개한 두 의원도 의료기관 등록 과정에선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전지적 소비자 시점: 편리함과 소통의 용이함
코로나에 확진되며 비대면 진료 어플을 처음 이용해본 후 적극적 비대면 진료 소비자가 된 지인은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소감을 털어놨습니다.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엔 이렇게 답했습니다. "의사를 만나는 시간은 5분도 안되는데, 그 5분을 만나려고 대기는 20분, 30분씩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점심시간이나 토요일 아침 이럴 땐 사람이 몰리니 더 기다려야 하고. 그런 에너지 낭비를 줄일 수 있다."
SBS 비디오머그팀이 취재한 <코로나19로 허용된 비대면 진료, 앞으론 어떻게 될까?> 기사에는, "팔순 부모님이 코로나 확진되셔서 전화로 진료 보고 처방받아 퀵으로 받았는데, 신원확인 등 절차만 보완하고 약물 오남용만 없다면 간단한 진료는 편리하고 좋았다"는 등 편리함을 큰 장점으로 꼽는 사용자들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SBS 뉴스 사이트에서 해당 동영상 보기]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741754&plink=YOUTUBE&cooper=DAUM ]
의사와의 상시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을 비대면 진료의 장점으로 꼽는 분들도 있었는데요. 실제로 비대면 진료 앱에서 후기가 많거나 일명 '좋아요'가 많은 병원, 의사들을 보면 환자들이 남긴 각종 후기에 의사들이 일일이 댓글을 달며 차후 발생할 수 있는 증상과 대처 방법까지 설명하는 모습을 왕왕 볼 수 있습니다.
전지적 의료계 시점: '닥터쇼핑'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박수현 의사협회 대변인은 SBS와 인터뷰에서 "비대면 진료는 앞으로 굉장히 중요한 의료정책이 될 수 있다. 의료계가 더 이상 반대만 하면서 배제가 돼선 안 된다. 주체가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 24일 열린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의협 주도의 원격의료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안건으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개원의들로부터는 조금 더 솔직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는데요. 서울의 한 상가에서 가정 의원을 운영 중인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비대면 진료가 시행되면 개원가는 다 죽을 거로 생각했었는데, 막상 코로나 상황을 겪어보니 '윈윈'인 측면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곳들이 많다. 특히 규모가 작거나 위치가 썩 좋지 않은 소규모 개원 병원엔 돌파구가 되기도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앞서 소개한 '비대면 진료 중심 의원'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3월에 문 열었을 때 코로나가 한창이고, 동네 병의원으로 코로나 진료가 확대된 때였어요. 수요가 많으니까 비대면 진료부터 빨리 열었습니다. 어떤 면에선 대면 고객 유입을 위한 마케팅 요소라고 볼 수 있을 거예요. 사실 개원하고 홍보하려면 광고 회사도 이용해야 하고 비용이 꽤 들거든요. 비대면 진료를 통해 병원을 먼저 알린 거죠. 비대면으로 이용한 환자들이 병원 빨리 열어달라고 요청도 많이 들어와요." (서울 강남 비대면 중심 의원)
그렇다고 우려가 다 사라진 건 아닙니다. 환자를 직접 볼 수 없기에 발생할 수 있는 오진, 그로 인한 의료사고 등에 대한 의료인의 법적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근본적 우려는 여전합니다. 또 현재 비대면 진료가 플랫폼 업체들을 통해 중개가 되는 상황에서, 이른바 '닥터쇼핑'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민관 '비대면 진료협의체 구성과 의료법 개정
▲허용 의료행위: 진단 및 처방 포함한 비대면 진료
▲대상 의료기관: 의원급 의료기관 (병원급 의료기관 예외 허용)
비대면 진료만으로 운영 금지 (허용 환자 비율 복지부령에 위임)
▲대상 환자: 격오지 거주자 / 교정시설 수용자 및 군인 / 1회 이상 대면 진료한 환자
▲의사 책임: 대면진료 시와 같은 책임 (예외 조항 있음)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4일 보건의료발전협의체에서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신중히 논의가 필요하므로 충분한 준비 기간을 거쳐 협의체를 운영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했습니다. 비대면 진료는 한달음에 우리 현실 앞에 놓였지만, 이를 제도화할 법적 근거를 수립하는 과정은 간단하진 않을 걸로 보입니다.
취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약국에 들러 해열제를 샀습니다. 저 말고도 한 여성분이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며 약사에게 어떤 약을 먹으면 좋겠냐고 상담하고 있었습니다. 계산을 하고 나오려는데 '딩동'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배달원이 들어와 "000씨 약 맞죠?"라며, 선반 위에 놓인 약봉지를 집어 들고 있었습니다.
'이 풍경은 공존할 수 있을까, 아니면 한쪽만 살아남게 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취재 : 박수진, PD : 김도균, 일러스트 : 김정연, 제작 : D콘텐츠기획부)
박수진 기자star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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