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 청소문화, 자비 원정 순수함 지킨게 붉은악마의 힘"
[스포츠 오디세이] 2002 월드컵 응원단장 유영운씨
한여름밤의 꿈은 동시대 사람들의 가슴 속에, 기억 속에 소중히 간직돼 있다. 그런데 2000년 이후 태어난 세대는? 축구 때문에 온 나라가 뒤집어졌다는 걸 얘기로만 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사람을 소환했다. 2002 월드컵 당시 축구 대표팀 응원단 ‘붉은 악마’의 응원단장(공식 명칭은 콜 리더) 유영운 씨다. 조그만 메가폰 하나만 잡고 6만 관중을 들었다 놨다 했던 축구장의 마에스트로. 그가 들려주는 2002 월드컵 스토리다.
독일과 준결승 문구 ‘꿈★은 이루어진다’
Q : 어떻게 붉은 악마 응원단장이 됐나요.
A : “저는 축구를 사랑하지만 선수 출신은 아닙니다. 황선홍·최문식·안익수가 뛰던 포항 스틸러스를 좋아했어요. 서울에 살면서 포항 원정 응원을 자주 갔더니 포항 서포터스 회장과 콜 리더를 시켜주더라고요. 그 무렵 붉은 악마가 자생적으로 만들어졌고, 자연스럽게 A매치 콜 리더를 거쳐 2002년까지 왔죠.”
Q : 월드컵을 앞두고 운영진들이 어떤 계획을 짰나요.
A : “무조건 16강 가게 하는 응원을 만들자. 홈이기에 가능한 응원을 준비하자는 원칙을 세웠고요. 초대형 태극기 제작, 메시지 전달을 위한 카드섹션, 스타디움을 압도하는 꽹과리의 위력을 앞세운 사물놀이 같은 걸 준비했죠. 당시 K리그 10개 구단 서포터스가 힘을 합쳐 드림팀을 구성했습니다.”
Q : 첫 경기가 부산에서 열린 폴란드전이죠.
A : “98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전의 ‘오렌지 쇼크’를 잊을 수 없었죠. 우리도 해 보자고 해서 1년 전부터 ‘비 더 레즈(Be the Reds)’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저희는 경기 2시간 전에 들어와 준비를 했는데 1시간 전부터 경기장이 온통 새빨개졌어요. 오늘은 무조건 이겼다고 확신했죠.”
Q : 황선홍·유상철 골로 2-0 승리를 했는데요.
A : “보통 2골 차 이상 앞서면 막판에 파도타기 응원을 합니다. 승리의 흥겨움을 만끽하는 거죠. 그런데 그걸 못하겠더라고요. 월드컵 1승도 못해본 나라가 첫 승을 하려는데, 한 골 먹으면 알 수 없는 게 축구인데…. 그래서 ‘파도타기 합시다’는 열화와 같은 요청을 외면하고 끝까지 ‘대∼한민국’과 선수 이름 외치고 아리랑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파도타기 못해서 죄송합니다(웃음).”
Q : 초대형 태극기는 어떻게 만들었나요.
A : “대구월드컵경기장 앞 광장에서 며칠 동안 제작했죠. 통천과 페인트 값만 1500만원 들었습니다. 가로 40m, 세로 30m인데 운반하는 데도 40~50명이 필요했어요. 평가전 때 펼쳐봤는데 너무 커서 1층 상단을 넘어가 태극기가 구겨지는 겁니다. 게다가 애국가가 연주되는 1분 동안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 것도 볼 수 없는데 괜찮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어요. 그래도 모든 분들이 잘 협조해 주셔서 대성공을 거뒀죠. 그 태극기가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다고 들었는데 이번 월드컵 20주년에 맞춰서 한 번 더 펼쳐졌으면 좋겠습니다.”
Q : 카드섹션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A : “한태일·김용재라는 두 친구가 정말 멋진 문구를 만들었어요. 2002 카드섹션의 꽃은 이탈리아전 ‘AGAIN 1966’이었습니다. 1966년은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북한에 져 탈락한 해입니다. 이탈리아 축구가 가장 기억하기 싫은 순간을 소환해 그들의 자존심을 긁은 거죠. 독일과의 준결승 문구가 그 유명한 ‘꿈★은 이루어진다’입니다.”
Q : 카드는 어떻게 준비했나요.
A : “20년이 지나서 말씀 드리는데요. 그 종이를 살 수도 없는 거고, 당시 회사 홍보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한솔제지 천안공장에서 10만 장이 넘는 종이를 제공했습니다. 빨강·흰색 종이에 응원가까지 인쇄해서 트럭으로 날라다 주셨죠. 경기당 2만 장 정도를 관중석에 테이프로 붙여 놓습니다. 관중 입장이 끝나면 저의 ‘대∼한민국’ 선창에 따라 카드를 올렸다 내리는 연습을 몇 차례 했죠.”
A : “제가 해외 원정에서 메가폰 잡았던 게 60경기 정도 됩니다. 나갈 때마다 원정단을 모아 놓고 ‘우리는 열심히 응원하고 이기고 돌아가면 된다. 그런데 오늘 오시는 교민들은 평생 이 나라에 사셔야 될 분들도 많다. 그러니까 열심히 응원하되 겸손하게 행동하고 정리정돈 잘하고 마무리 인사 잘하고 오자’고 당부를 합니다. 저희들의 그런 모습을 교민들이 너무나 좋아하셨고 ‘이게 대한민국의 힘이다’라며 자랑스러워 하셨죠.”
“붉은악마 나올 때가 더 깨끗” 얘기도
유 씨는 “청소는 붉은 악마 응원의 또 하나의 문화입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동남아 일부 국가에서는 우리가 들어갔을 때보다 나올 때가 더 깨끗한 곳도 있었습니다”라며 웃었다.
Q : 해외 원정 경비는 축구협회나 누가 좀 지원해 줍니까.
A : “절대 없습니다. 모든 경비는 본인이 부담합니다. 회사에 휴가를 내든 월차를 모아서 쓰든 본인 결정이지요. 원정위원회에서 비용을 공고하면 정한 시간 내에 입금해야 출발할 수 있습니다. 답답할 정도로 순수함을 고집한 게 붉은 악마가 오늘까지 존속할 수 있었던 힘이 아니었을까요.”
A : “대한민국의 국격과 브랜드 가치가 엄청나게 상승하는 계기였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극적으로 보여준 게 ‘태극기’입니다. 이전에 태극기는 존엄의 대상이었는데 2002 월드컵을 계기로 여성들이 치마를 만들어 입을 정도로 친근함의 상징이 됐죠.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그렇게 가슴 뜨겁게 외쳐본 적이 있었을까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내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끓어 넘쳐서 온 세상을 뒤덮은 역사의 현장이 바로 2002 월드컵이라고 봅니다.”
■ 응원가 ‘오~필승 코리아’ 외신은 ‘오 피스 코리아’로 해석
「 2002 월드컵 하면 가장 기억에 남는 응원이 “짝짝짝 짝짝 대∼한민국”이다. 이 응원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유영운 씨는 “이 응원의 기원에 대해서는 수원 블루윙즈 서포터스가 외치는 ‘수∼원 삼성’이 원조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반면 ‘부∼천 SK’가 먼저라는 말도 있고요. 어쨌든 외국인한테는 굉장히 어색한 엇박자인데 우리한테는 잘 맞는 박자라고 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오∼ 필승 코리아’ 노래도 부천 SK 서포터스가 부르던 “오~부천 FC”를 가사만 바꾼 거라는 게 정설이다. 당시 외신 기자들 사이에서도 이 노래가 인기였는데 그들은 가사를 ‘오 피스(peace) 코리아’로 알아들어 “역시 한국은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라고 해석했다고 한다.
이처럼 2002 월드컵 응원가나 구호는 프로축구 각 구단 서포터스가 쓰던 걸 빌려온 게 많다. 유영운 씨는 “붉은악마 응원은 K리그 서포터들이 각자의 장기를 갖고 나와서 만든 일종의 종합선물세트라고 봐도 됩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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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UCN 대표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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