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호광장의 심리툰과 함께 - 세상과 나 바라보기] 5. 배가 고파요
'먹는다는 것' 신체 건강 필수적
심리적 요인과도 깊은 관련
프로이트 구강기 욕구 미충족시
물질 의존 등 고착 문제 경험
먹을 때 포만감·온기·풍미
부족한 심리적 공허함 충족
내적만족까지충족시킬 재료
긍정적 정서·인간관계 친밀함

코로나 팬데믹의 시간을 지나오며 야외 활동이 줄면서 체중이 급격히 늘었다는 사람이 많았고, ‘확찐자’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쓰였던 적이 있습니다.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만, 실제로 우리의 몸은 섭취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고 남은 열량은 되도록 많이 저장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습니다.
수천수만 년의 인류 역사에서 먹을 것이 풍부했던 시기는 최근의 수십 년에 불과합니다. 수렵과 채집으로 먹을 것을 구해야만 했던 때, 먹을 것이 부족한 시기를 견디려면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저장하고 견디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습니다. 농경 사회에서도 가을에 거둔 곡식이 바닥나고 이듬해 봄 보리를 수확할 때까지 보릿고개라는 기근의 시기가 존재했습니다. 기후 변화나 병충해로 흉작이 닥치면 많은 사람이 더욱더 고통받기도 했지요. 식사량을 줄여도 생각보다 체중 감량이 쉽지 않은 것은 생존을 위한 오랜 진화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먹는다는 것은 신체적인 건강을 위해서도 필수적이지만, 심리적인 요인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식욕이 떨어지거나 증가하는 것은 우울증의 주요한 증상입니다. 우리는 긴장하거나 걱정이 많을 때 잠시 식욕을 잃기도 하고, 스트레스가 많을 때 평소와 달리 충동적으로 폭식을 하기도 합니다. 익히 정신분석의 아버지라 불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먹는 것을 단순히 생존을 위한 영양소의 섭취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상징적 행위로 해석하였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초기 12~18개월에 이르는 시기를 구강기라 하는데, 이 시기에는 빨고, 씹고, 깨무는 등 입 주변에서 일어나는 자극들이 쾌감의 주요 원천이 되며, 엄마 젖을 먹으며 얻는 만족감이 애착 형성과 심리 발달에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만약 그런 욕구가 적절하게 충족되지 못하게 되면 물질 의존 등 이 시기에 고착되어 나타나는 특징적인 문제들을 경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인간관계에서도 식사는 중요합니다. 누군가를 소개받을 때, 중요한 일을 시작할 때, 우리는 늘 먹는 것으로 관계를 시작합니다. 주인공의 식사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 ‘황해’에서도 면정학(김윤석 분)과 구남(하정우 분)의 첫 관계는 시끌벅적한 장마당에서의 식사로 시작되었습니다. 비록 범죄를 모의하는 상황에서의 게걸스러운 식사였지만, 그 장면은 둘 간의 합의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또한 사람들은 불편한 사람과의 식사는 웬만하면 피하고 싶어 합니다. 영화 ‘신세계’에서 동료들과의 식사를 권유하는 정청(황정민 분)의 제안을 적대적인 입장에 있는 이중구(박성웅 분)가 완곡하게 거절하는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진화론적으로도 식사를 하는 동안에는 주변에 대한 경계가 늦추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적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과거의 적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관계의 회복과 화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회식이 없어져 좋아하는 직장인들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소중한 사람들과 식사를 함께하며 친밀함을 나눌 기회가 부족했던 시간을 지난 2년간 보냈습니다. 한편으로 대중 매체와 온라인 SNS에는 요리에 관한 프로그램과 먹방(음식을 먹는 방송)이 넘쳐납니다. 배달 앱으로 손쉽게 그 음식들을 배달해서 먹을 수도 있습니다. 먹방에 나오는 음식들은 특별한 음식들보다 떡볶이, 라면, 삼겹살, 곱창 등 누구나 쉽게 접하는 음식들이 많습니다. 함께하는 식사와 대화에서 서로의 삶과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다면, 혼자 먹방을 보며 느끼는 만족은 내가 아는 그 맛에 대한 원초적 감각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SNS에는 맛있는 음식 사진들과 자랑하고 싶은 물건들, 여행했던 곳의 사진들까지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은 화려하고 좋은 모습들이 넘쳐나지만 왠지 우리의 마음은 비어가는 것 같습니다.
음식은 내적인 만족을 줍니다. 먹을 때의 따뜻함과 포만감, 풍미, 잠시 고민을 잊게 하는 충만함 같은 것들은 남들에게 보이는 외적인 모습들이나 현실의 이야기들만으로는 부족한 심리적 공허감을 채우기에 더없이 보충적입니다. 내적인 만족의 재료는 배부름의 감각이 아니라 긍정적 정서나 인간관계의 친밀함, 지혜 같은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한 먹을거리가 있음에도 늘 허전함을 느끼는 사람들, 혼자 먹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유독 많은 요즘 사실 우리는 배가 고픈 것이 아니라 마음이 고픈 것은 아닐까요? 이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되고 마스크를 완전히 벗는 날도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좋은 음식을 나누며 그동안 굶주렸던 마음을 든든하게 채우기를 바랍니다.
팔호광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심리툰 작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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