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을 흔드는 '잡음' 잡을 수 있다..대니얼 카너먼 '노이즈: 생각의 잡음'[책과 삶]

김지혜 기자 2022. 4. 29.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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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노이즈: 생각의 잡음
대니얼 카너먼·올리비에 시보니·캐스 선스타인 지음 | 장진영 옮김 | 김영사 | 616쪽 | 2만5000원


“범죄 전력이 없는 두 사내가 각각 58달러40센트와 35달러20센트 상당의 위조수표를 현금화한 혐의로 기소됐다. 첫 번째 사내는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고, 두 번째 사내는 징역 30일을 선고받았다.”

1973년 미국의 마빈 프랑켈 판사의 고발이다. 형사사법제도에 의지해 살아가는 시민들은 동일한 범죄에는 동일한 형량, 적어도 비슷한 형량이 선고될 것이라 기대한다. 그런데 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현격한 형량 차이는 어떤 이유로 발생한 것일까? 프랑켈 판사는 “피고에게 내려질 징역형이 해당 사건이나 개별 피고인보다 그 사건을 맡은 판사의 관점·선호·편견 등 개인적 판단에 더 많이 좌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이 같은 ‘차별’의 시정을 의회에 요구했다.

이것이 50년 전 미국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쯤은, 많은 이들이 직감 혹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숱한 연구들이 인식을 뒷받침한다. 판결을 좌우하는 것은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만 달린 것이 아니다. 같은 판사라도 그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판결이 나온다. 2019년 한 연구에 따르면 “판사들은 지역 축구팀이 경기에서 승리한 다음날보다 패배한 다음날 더 가혹한 판결을 내린다”고 한다. “피고들은 자기 생일에 더 관대한 판결을 선고받았다”거나 “더운 날에는 망명신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낮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어디 법정뿐이랴. 비슷한 오류는 어디에나 있다. 같은 환자를 두고 다른 진단을 내리는 의사들, 같은 직원을 두고 엇갈리는 인사고과, 동일한 지문을 보고 견해가 나뉘는 과학 수사관들, 전문가마다 천차만별인 실업률의 예상 상승치….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대니얼 카너먼이 <생각에 관한 생각> 이후 10년 만에 내놓은 신간 <노이즈: 생각의 잡음>은 이처럼 같은 판단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사람 혹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내려지는 판단 오류, ‘잡음(noise)’의 존재와 그로 인한 피해를 규명한 책이다. 책에서 잡음은 문제의 핵심에서 “원치 않게 분산된 판단”으로 정의된다. 지금까지 판단 오류를 일으키는 주된 요인으로 지목돼 중점적으로 연구된 것은 핵심에서 “체계적으로 이탈한 판단”, 즉 ‘편향’이었다. 카너먼은 이 책에서 전략적 의사결정 전문가 올리비에 시보니, 정책 전문가이자 법학자인 캐스 선스타인과 함께 편향만큼이나 판단 오류의 주된 원인이 되는 잡음의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들은 “잡음이 엄청나게 많이 존재하고 그로 인한 피해도 막대하다는 사실에 놀라서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밝힌다.


징역 15년과 30일… 유사 사건에 내린 판사의 판결이 왜 다를까
좋아하는 축구팀이 패배한 다음날 판결이 더 가혹하다는 연구결과처럼
판단 오류를 일으키는 요인이 존재하며 그 피해는 막대하다
우리 삶의 질을 좌우하는 의사·수사관·심사역 등
전문가들의 판단 영역에서 ‘노이즈’를 줄이는 방법을 제안한다

고백하자면, 책의 처음 몇 장을 넘길 때만 해도 ‘당연한 얘기를 어렵게 한다’는 의심을 거두기 힘들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당연히 매번 같은 판단을 내릴 수 없고, 사람들 간의 판단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저자들은 이 ‘당연한’ 체념 혹은 무시가 방기한 판단 오류가 발생시킨 피해가 “상식 수준을 넘어”설 만큼 막대하다는 사실과 함께 잡음 역시 연구와 분석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에 주목한다.

책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우리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전문적인 판단 과정에서의 “제도 잡음”이다. 이는 “응급실 의사, 형량을 선고하는 판사, 보험회사의 보험심사역 등 서로 대체될 수 있는 전문가를 고용하는 조직에서 목격되는 잡음”으로 필연적으로 제도에 대한 신뢰도를 낮춘다. 담당자를 어떻게 ‘뽑느냐’에 따라 상이한 판단이 내려지는 제도를 마냥 믿고 의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책은 수학자 가우스의 오류 측정법 ‘평균제곱의 오류’를 이용해 편향과 잡음이 전체 판단 오류에 동일하게 기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예컨대 한 기업이 특정 지역 시장 점유율을 예측하기 위해 다수의 예측가들에게 추정값을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이들 추정값이 전반적으로 실제 점유율보다 낙관적인 방향으로 치우쳤다면 이것은 편향의 문제고, 추정값들이 저마다 현격한 차이를 가지고 분산돼 있다면 이것은 잡음의 문제다. 보통 사람들은 추정값의 분산 자체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추정값의 평균이 실제로 얼마나 정확한지 여부에만 집중하곤 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값의 정확도야 어찌 됐든 “잡음이 관측될 때마다, 그것을 줄이려고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같은 양만큼 줄어든 잡음이나 편향은 평균제곱의 오류에 같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보이는 잡음부터 일단 줄여보는 시도가, 아직 확인되지 않은 편향을 바로잡는 것만큼이나 판단 오류를 시정하는 데 효과를 발휘한다는 이야기다. 이 기업의 사례에선 예측가들이 정해진 측정 절차를 제대로 따랐는지 우선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잡음을 어떻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일까.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인부터 알아야 한다. 책은 제도 잡음을 ‘수준 잡음’과 ‘패턴 잡음’으로 유형화해 분석한다. 미국 연방 판사 208명에게 16개 가상 사건에 대한 선고를 받아본 1981년 연구를 참고해보자. 판사별로 형량 평균을 내보니, 어떤 ‘동정심이 뚝뚝 떨어지는 판사’는 16개 사건의 형량 평균이 6년6개월이었고, 대체로 무거운 판결을 내린 ‘교수형을 좋아하는 판사’의 경우 형량 평균이 8년7개월이었다. 판사 간에 ‘가혹함의 수준’이 달라 판단 결과가 분산된 것이다. 이 가혹함의 경향성 차이가 바로 “서로 다른 개인이 내린 평균 판단의 변산성”으로 정의되는 ‘수준 잡음’이다.

전작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인간의 사고체계를 통찰력 있는 아이디어로 설명했던 대니얼 카너먼은 경영 전략가 올리비에 시보니, 정책 전문가 캐스 선스타인(왼쪽부터)과 함께 전작의 논의를 확장·심화한 <노이즈: 생각의 잡음>을 펴냈다. 김영사 제공


한편 ‘패턴 잡음’은 수준 잡음으로 설명되지 않는 “같은 사례에 대한 개인적이고 고유한 반응 차이”를 의미한다. 예컨대 가혹함의 수준과 별개로 “좀도둑에게는 엄격하고 교통법규 위반자에게는 대체로 관대한 판사”가 있을 수 있다. 형량의 평균 수준과 별개로 특정 범죄에 더 가혹한 처벌을 내리는 이 판단에는 “개인이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따르는 원칙이나 가치”가 반영된다. 날씨나 기분 같은 요소에 판단이 좌우되는 ‘상황 잡음’도 패턴 잡음에 속하지만, 더 결정적인 것은 “성격만큼이나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자의 독특성”이다. 즉 수준 잡음이 ‘가혹성’처럼 판단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영역에서의 개인 간 경향성 차이에서 발생한다면, 패턴 잡음은 판단 자체와는 큰 상관이 없는 개인의 독특한 생각과 개성에서 기인한다. 저자들은 수준 잡음보다도 개인적 의견이 중시되는 패턴 잡음이 제도 잡음을 형성하는 주된 역할을 한다고 분석한다.

“판단의 목표는 개인적인 의견의 표현이 아니라 정확도”다. 이는 저자들이 잡음을 줄이는 방법으로 제시한 ‘결정 위생’의 제1원칙이다. 무슨 세균이든 일단 제거하고 보는 ‘손 씻기’처럼, 결정 위생은 잡음에 영향을 미치는 기저 오류와 개성들을 사전에 일괄적으로 차단해보려는 예방책이다. 예컨대 과학 수사에서는 유력한 용의자가 누구인가 등의 예단이 개입하지 않도록 정보를 순차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거나, 의료계와 법조계에 판단 가이드라인·알고리즘 평가를 도입해 판단자의 재량을 줄여야 한다는 방법들이 제시된다. 판단을 여러 개의 독립적인 과제로 구조화하기, 이른 직관 참기, 여러 판단자들로부터 나온 독립적인 판단을 집계하기 등의 방법도 나온다. 이 모든 절차에 앞서 전문적인 판단을 내리는 조직에서 개별 판단의 변산성을 측정하는 ‘잡음 감사’가 일상이 돼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책은 이 같은 잡음 축소의 시도가 도리어 인간의 개성과 창의력을 억압하고 알고리즘과 규칙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낳을 수 있다는 등의 반론에 대해서도 꼼꼼히 검토한다. 저자들은 “잡음의 적정 수준은 0이 아니”며 “어떤 영역에서는 잡음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함을 인정한다. 또한 “개인의 가치, 개성과 창의성은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전문적 판단의 영역에 한해서만 이것들이 제한돼야 함을 분명히 한다. 잡음을 줄인다는 이유로 인종차별 등 편향이 나타날 수 있는 알고리즘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에 대해선 오히려 인간의 편향보다 알고리즘의 개선이 용이하다고 반박하기도 한다.

지금껏 ‘보이지 않던’ 잡음의 실체를 증명해 “불필요한 비용이 없어지고, 공공 안전과 공중 보건이 개선되고, 피할 수 있는 많은 오류가 미연에 방지”되는 “잡음이 덜한 세상”을 꿈꾸는 책이다. 실은 ‘잡음’이라 이름 붙이지 않았을 뿐, 모두가 어렴풋이 알고서도 체념했던 문제에 대해 개선의 자신감을 불어넣어준다. 과학적이면서도 친절한 책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지만 얼마든지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읽게 된다.

정부 기관, 형사사법제도, 공중보건기구, 인사위원회 등 전문적인 판단 기관의 종사자들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판단의 오류를 줄이고자 하는 개인들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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