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같은 장소, 같은 금액..김인철 후보자의 외대와 대교협 '수상한 업무추진비'
김인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한국외대 총장 시절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을 겸직하면서 외대와 대교협 양 기관의 업무추진비를 동시에 사용했는데, 이 과정에서 수상한 업무비 집행이 발견됐다.
뉴스타파는 김 후보자가 각각 외대 총장과 대교협 회장으로 쓴 업무추진비 내역을 비교했다. 그 결과 같은 날, 같은 장소, 같은 금액, 같은 명목으로 결제한 업추비가 양 기관에 모두 집행 처리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수상쩍은 업추비 동시 집행은 여러 건 확인됐다.
이는 김 후보자가 양 기관에 카드 영수증을 이중 청구했거나 1회 업무비 지출액을 적게 보이려고 카드 쪼개기를 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하지만, 대교협과 달리 외대 측은 김 후보자가 쓴 업무비 지출 영수증을 공개하지 않아 의혹은 풀리지 않고 있다.
앞서, 뉴스타파는 김 후보자가 외대 총장 시절 업무추진비 부당 집행으로 교육부 징계와 검찰 수사를 받고도 골프장 이용과 고급 호텔 회원권 구입 등 업무비를 방만하게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대학 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학생회 운영비를 줄이면서 총장 업무비도 6개월간 전액 삭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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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두 기관 업무추진을?...수상한 업무추진비
김인철 후보자는 2014년 3월부터 2022년 2월까지 8년간 한국외대 총장으로 재직했다. 8년의 총장 재임 동안, 김 후보자는 2020년 4월 8일부터 2022년 2월 28일까지 사단법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 회장을 지냈다. 대교협은 교육부로부터 대학 입학과 평가 등의 업무를 위탁받은 교육부 유관기관이다.
뉴스타파는 김인철 후보자가 외대와 대교협에에 쓴 업무비 집행 내역을 비교했다. 김 후보자가 양 기관의 업무비를 동시에 쓴 기간은 2020년 5월~2022년 2월까지다.
이 1년 7개월간, 김 후보자가 쓴 외대 총장 업무추진비는 6,274만 원(355건), 대교협 회장으로 쓴 업무비는 1,374만 원(68건)이다. 양 기관에서 쓴 업무비를 합하면, 19개월간 약 7,600만 원(423건). 월 평균 400만 원을 사용했다. 웬만한 직장인 월급을 웃도는 금액이다.
그런데, 양 기관의 업무추진비 집행 일자와 장소를 확인한 결과,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사용한 내역이 12건 나왔다. 금액으론 외대 총장 업추비가 267만 원, 대교협 회장 업추비가 306만 원이었다.
이 12건의 업무비 집행은 모두 같은 날, 같은 호텔이나 식당에서 사용됐다. 이중 5건은 금액까지 같았고, 1건은 날짜, 장소, 금액, 사용 목적까지 정확히 일치했다. 그런데도 외대와 대교협 양쪽에 모두 업무비를 집행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
먼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결제해 양쪽 기관의 업추비로 청구한 내역을 보자. 외대 업추비 지출 내역을 보면, 김 후보자는 2021년 12월 28일, ‘전직 교육부 장관 등 면담’을 이유로 ‘소피텔 앰배서더’ 호텔에서 4명, 32만 5,000원을 썼다.
대교협 내역에도 같은 날 업추비를 쓴 내역이 있다. 장소는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호텔 앤 서비스드 레지던스’. 업무 대상자는 ‘전직 교육부 장관 등 외부 전문가 면담’이라며 22만 원을 썼다고 돼 있다. 날짜와 장소는 물론 집행 목적도 '전 교육부 장관 등 면담'으로 같다.
결국, 김 후보자는 같은 날, 같은 호텔에서 전직 교육부 장관을 만나 업무비 52만 원을 쓴 다음, 이 가운데 32만 원가량은 외대 업추비로, 22만 원가량은 대교협 업추비로 집행한 것이다.
비슷한 행사에 ‘100원’ 단위까지 똑같이 동시 결제
같은 날, 같은 장소, 사용금액까지 같은 업무추진비 내역이 양 기관에 동시에 집행된 사실도 확인했다. 모두 5건이다.
2021년 12월 7일, 김 후보자는 외대 업추비로 코리아나 호텔 3층에 있는 ‘대상해’라는 중식당에서 3명, 8만 5,000원을 사용했다. 그런데 같은 날, 같은 식당에서 대교협 업추비 법인카드로도 8만5,000원을 결제했다. 집행 목적도 ‘대학교육혁신포럼 오찬’과 ‘대학교육혁신포럼 준비 모임’으로 비슷하다.
‘오찬’과 ‘준비 모임’으로 조금 다르게 기재돼 있지만, 사실상 같은 행사였을 가능성이 높다. 대교협이 국회에 제출한 업추비 영수증을 보면, 김 후보자가 이날 호텔 식당에서 카드를 결제한 시각이 낮 12시 40분이다.
2022년 2월 10일도 마찬가지다. 김 후보자는 이날 외대 업추비와 대교협 업추비로 각각 35만 원을 동일하게 사용했다. 사용 장소가 외대에는 ‘서울 미라마’, 대교협 내역에는 ‘그랜드하얏트서울’이라고 돼 있다. 서로 다른 장소 같지만 ‘서울 미라마’는 그랜드하얏트 서울호텔을 운영하는 법인의 이름이다.
이날 김 후보자가 그랜드하얏트 서울에 쓴 70만 어치의 업무비 지출은 같은 행사였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사용 목적으론 외대의 경우 ‘처장단 위로 모임’이라고 써 있고, 대교협에는 ‘회원대학 총장 면담, 협의’를 위해 업추비를 사용했다고 기재했다.
보름 후인 2022년 2월 25일에도 김 후보자는 ‘조선호텔앤리조트’에서 지출한 24만 2,100원을 각각 두 기관 업추비로 사용했다고 기재했다. 사용 명목은 외대에는 ‘외대 총동문회장 등 오찬’, 대교협에는 ‘교육 관계자 면담’이라고 조금 다르게 적었다.
하지만, 대교협에서 이날 결제한 업추비 영수증을 보면 카드 결제 승인 시간이 오후 1시 29분이다. 둘 다 점식 식사 비용으로 결제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물론 김 후보자가 같은 장소에서 두 기관의 업무를 모두 처리했을 수도 있다. 또 비슷한 인원이 같은 비용의 식사를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제 청구 금액이 100원 단위까지 동일한 데다, 이 같은 동일한 결제 내역이 10건이 넘게 발견된다는 점에서 결제 금액을 낮춰 보이기 위한 ‘업추비 쪼개기’ 또는 ‘영수증 이중 청구’ 의혹이 제기된다.
대교협 업무추진비는 1인당 쓸 수 있는 간담회 비용이 정해져 있다. ‘대교협 업무추진비 집행 규칙’에 따르면, 간담회비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1인 1회당 4만 원을 넘길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행사 성격 상 불가피한 경우엔 증빙서류로 사유를 밝히고 1인 한도액을 초과해 집행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접대 대상이 공직자일 경우에는 청탁금지법에 따라 접대비를 3만 원 이하로 쓸 수 있다.
하지만, 대교협 회장 업추비 내역에는 인원이 따로 적혀 있지 않다. 따라서 김 후보자가 ‘1인 1회당 4만 원’의 규칙을 제대로 지켰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실제 대교협이 공개한 영수증에는 금액만 나올 뿐, 인원은 따로 분류돼 있지 않다.
반면, 한국외대 총장 업무추진비는 1인당 사용 상한액이 정해져 있지 않다. 1건당 50만 원 이상인 경우에는 상대방의 소속 및 성명을 증빙서류에 기재하도록 하고 있지만, 청탁금지법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대학 업무와 관련된 곳에 제한 없이 지출할 수 있다.
때문에 김 후보자가 상대적으로 사용이 제한돼 있는 대교협 업추비 규칙 위반을 피하기 위한 꼼수로 외대 업추비로 분할하는 ‘카드 쪼개기 결제’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아니면, 김 후보자가 대교협 법인카드로 결제한 영수증을 한국외대에도 또 다시 이중 청구해 업추비를 현금으로 수령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외대 총장과 대교협 회장의 업무추진비는 모두 교비로 마련된다. 즉, 모두 학생 등록금에서 나왔다는 뜻이다.
뉴스타파는 이 같은 의혹을 풀기 위해 외대 측에 김 후보자가 쓴 업추비의 지출 증빙 내역의 공개를 요청했다. 하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대교협에도 1인당 4만 원이 넘는 간담회비 집행에 대해 김 후보자가 사유를 입증한 별도의 증빙서류를 제출했는지 물었지만, 역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뉴스타파는 김 후보자에게 같은 날, 같은 장소, 목적과 금액까지 같은 법인카드 결제 내역을 양쪽 기관의 업무추진비로 중복해 지출한 이유는 무엇인지 질의했다. 답변은 오지 않았다. 교육부에도 동일하게 질의했다. 교육부 대변인실은 “현재 일일이 답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해명이 필요한 부분은 후보자가 청문회 때 소명할 것”이라고 답하고 구체적인 해명은 회피했다.
뉴스타파 홍여진 sara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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