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국회의장 중재안엔 정치만 있고 국민은 없다

박원경 기자 2022. 4. 25.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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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트랙 사태'라는 난장을 뚫고 1년간의 유예 끝에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 핵심 내용은 검찰 권력의 상대적 약화, 경찰 권한의 상대적 강화다.

수사권 조정으로 모든 사건에 대해 가능했던 검찰의 1차 수사권은 6대 범죄로 제한됐다. 반면, 경찰은 모든 범죄에 대한 1차 수사권을 가지면서, 무혐의 처분 사건에 대한 종결권을 갖게 됐다. (이전에는 경찰이 수사한 사건은 무혐의로 판단했더라도 사건 종결 권한이 없이 의견만 달아서 검찰로 송치해야 했다. 모든 사건을 송치하는 이른바 '전건 송치'다) 경찰 입장에서 간섭으로 비치기도 했던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도 폐지됐다. 영장 단계만 제외하면 검찰의 통제 없는 경찰 수사가 가능해진 것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경찰은 만족하고 있을까

강화된 권한에 대해 경찰은 만족하고 있을까. 수사권 조정 논의 즈음부터 최근까지 기자가 접한 전·현직 경찰들의 반응은 경향성이 있었다. 고위직, 즉 수사 일선과 멀어질수록 수사권 조정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필요성에 공감하는 반면, 수사 일선에 가까워질수록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는 것이다. (물론, 기자가 접한 경찰들이 경찰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다. 다만, '경찰'이라는 이름의 집합적 의견이 소거시키는 일선 경찰들의 목소리를 경청할 필요는 있다.)

고위직(출신)들이 수사권 조정에 만족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수사권 조정의 결과 경찰 조직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졌다. 기존에는 검찰의 명령을 받는 2등 수사 기관이었지만,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이 검찰과 엇비슷한 위치로 올라서면서 자존감이 올라갔다. 사회적 위상이 높아진 조직에서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다는 건, 그것 자체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것이었다.

반면, 일선 경찰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특히, 수사 업무를 주로 맡은 사람들은 만족감보다는 부담감을, 자부심보다는 격무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가 바라는 검·경 수사권 조정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왜 그럴까.
 

수사권 조정에 어려움 호소하는 일선 경찰…왜?

외견상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가장 수혜를 봤을 것으로 짐작되는 경찰 내 수사 부서는 선호 부서가 아니다. 오히려 기피 부서에 가깝다. 사건에 치이다 보니 승진 시험 공부를 위해 시간을 내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다른 경과(정보, 경비, 기획 등)에 비해 특별 승진 기회가 많은 것도 아니다. 금전적 보상이 다른 경과보다 크지도 않다. 남다른 공명심과 정의감이 아니라면 개인으로선 크게 도움이 될 게 없는 부서다.

이런 상황에서 수사권 조정으로 처리해야 하는 사건 숫자는 늘었다. 검찰의 1차 수사권이 제한되면서 과거라면 검찰에 갔을 사건들도 경찰로 오게 된 결과다. 하지만, 수사 인력은 사건 숫자나 환경에 발맞춰 증원되지 않았고, 금전·비금전적 보상이 늘어난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권한 강화로 늘어난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선 교육 등을 통한 능력 배양이 필수지만, 이를 위한 기회와 시간은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일반 국민들 입장에선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의 업무 부담 호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다. 특히, 평생 경찰서에 갈 가능성이 높지 않은 일반 시민들 입장에선 다른 세계의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교통사고의 가능성이 있듯, 누구나 사건의 피의자가 될 수 있고, 피해자가 될 가능성은 그것보다 높다. 일선 경찰의 업무 부담 증가가 시민의 삶과 무관하지 않은 이유다.
 

수사권 조정 결과 늘어난 경찰의 사건 처리 기간

일선 경찰의 업무 부담 증가로 인한 시민들의 피해는 수치로 확인된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사기 등 경제 범죄 1건 당 사건 처리 기간은 전년도보다 9.8일(69.1일→78.9일) 늘었다. 지능 범죄와 사이버 범죄 역시 각각 4.4일(89.4일→93.8일)과 17.7일(90.2일→107.9일)씩 늘어났다. 피의자가 됐든, 피해자가 됐든 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이 바라는 건 사건의 빠른 처리지만, 수사권 조정의 여파로 이런 바람이 달성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물론, 빠른 사건 처리보다 앞서야 할 건 사건의 올바른 처리다.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합당하게 처벌받는 게 일반 국민들의 바람이다. 공정한 수사, 올바른 수사에 대한 바람이다.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 수사의 품질은 높아졌을까. 일선 경찰의 부담이 늘어난 상황에서 개별 사건 처리의 품질이 높아질 것을 기대하는 건 논리적 모순이다. 그럼 종국적 수사 품질 향상을 위한 절차라도 마련됐을까.

수사권 조정은 일반 국민을 만족시키고 있나

수사권 조정 이전엔 전건 송치를 통해 검찰이 한 번 더 사건을 살펴보는 절차가 보장됐다. 하지만,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이 1차 종결한 사건에 대해 사건 관계인이 이의 신청한 사건 등에 대해서만 검찰 수사가 제한적으로 가능하다. 경찰 수사에 만족한 사건 관계인 입장에선 현재의 수사권 조정으로 신속한 수사 종결이 가능해진 셈이지만, 수사에는 항상 상대가 있다. 사건 관계인 모두를 최대한 납득시킬 수사 품질 향상이 전제되어야 하는 이유다.

앞서 살펴봤듯, 현재 체제에서 검찰에 의한 수사 보완을 위해선 사건 관계인의 이의 신청 등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단순이 불만이 있다는 것이 아닌 경찰 수사 결론에 동의하지 못하는 법적·논리적 반박을 담은 '제대로 된' 이의신청이 사실상 필수다. 이런 '제대로 된' 이의 신청을 위해선 경찰이 왜 무혐의 판단을 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기자가 접한 경찰의 불송치 결정문(무혐의 판단 이유를 담은 문서)은 놀라운 정도로 간략한 것이 많았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던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고소·고발 내용에 대해 두루뭉술하게 증거가 불충분해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고 적혀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물론, 충실히 내용은 담은 불송치 결정문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검찰의 불기소 이유서(무혐의 판단 이유를 담은 문서)에 비하면 간략하게 적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사건 관계인이 '제대로 된' 이의신청을 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치 논쟁'으로 변질된 수사권 조정과 검찰 개혁

사건을 처리한 경찰의 능력 부족이나 불성실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게 아니다. 수사권 조정이라는 체계의 변화, 그 체계 변화에 대한 준비 부족이 만들어 낸 구조적 결과다. 일선 경찰들의 수사권 조정에 대한 우려와 불만도 이 지점과 관련 있다.

현실에 대한 책임은 수사권 조정에 만족감을 표하는 경찰 고위직에 있는 것도 아니다. 책임과는 거리가 먼 권한 확대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 반면, 책임을 성과와 실질로 채워야 하는 사람들은 이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조직의 기본적 속성이다. 때문에 현실에 대한 책임은 조직 논리에 대한 기본적 고려 없이 현재의 체계를 만든 설계자들, 체계의 변화에 국민을 삶을 중심에 놓기보다는 체계 변화를 정치적 논쟁으로, 검찰과 경찰 조직의 자존심 대결로 변질시켜 변화 자체를 성과로 포장한 체계의 설계자들에게 물어야 한다.

대선 이후 민주당 강경파 중심으로 급발진된 '검수완박' 추진 과정에 지난 1년 여 간의 수사권 조정 결과에 대한 검토는 없었다. 수사권 조정이 일반 국민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수사권 조정에 따른 현장의 변화가 국민의 편익을 향상 시켰는지에 대한 검토는 없었다. 검찰을 악마화해 검찰의 권한을 빼앗는 정쟁의 수단으로 '검수완박'을 이용했을 뿐이다.
 

정치만 있고, 국민은 빠진 국회의장의 중재안

국회의장의 중재안에도 정치만 있을 뿐 국민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과반 의석의 거대 여당의 급발진 제어를 위해 나온 반작용성의 결과물이라고 하더라도 중재안에는 수사권 조정 시행에 대한 검토가 전제 됐어야 했다. 하지만, 중재안 역시 수사권을 누구한테 줄지, 검찰이 수사 개시 가능한 범죄의 숫자를 몇 개로 줄 일지를 중심으로 논의됐을 뿐, 일반 국민들이 겪을 피해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정치권이 '검수완박' 논의로 정치 싸움을 벌이는 사이, 검찰과 경찰 역시 정치 싸움으로 최전선으로 내몰리고 있다. 수사력에 대한 각자의 자존심 싸움과 권한에 대한 쟁투로 수사에 전념해야 할 수사 기관들이 '여의도화'되고 있다.

사실 많은 국민들은 수사권을 검찰이 갖는지, 경찰이 갖는지는 크게 중요치 않다. 수사가 공정하고, 엄정하며, 정확하게 진행되기를 바랄 뿐이다. 제도의 변화는 그런 바람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이뤄지길 바랄 뿐이다. 6대 범죄에 대한 수사권 역시 검찰이 갖든, 경찰이 갖든, 혹은 중대범죄수사청이 갖든 일반 국민들에게는 크게 중요치 않다. 일반 국민이 6대 범죄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은 있지만, 6대 범죄의 피의자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치권과 수사 기관들의 '6대 범죄 수사권' 논의가 일반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닌 6대 범죄의 피의지가 될 가능성이 높은 그들을 위한 논의가 아닌지 의심스러운 이유다.
 

기본으로 돌아간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 필요성

국회의장 중재안에 대한 합의가 있었지만, 추후 있을 논의 과정에선 국민이 중심이 된 논의가 진행되길 기대한다. 수사권을 누가 갖는지에 대한 논의보다는, 그 결과 일반 국민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될 지에 초점을 맞춘 논의가 진행되길 기대한다.

이런 차원에서 검·경 개혁에 대해 일반적으로 논의됐던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복원을 중심으로 한 논의도 진행될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쉽지는 않다.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어려운 게 만들어진 제도를 없애는 것이고,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게 없앤 제도를 다시 만드는 것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다만, 1차 검·경 수사권 조정이 검찰의 적폐 수사 과정에서 급변침한 결과라는 점에서, 1차 수사권 조정 결과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수사권 조정은 검찰과 경찰 조직 간 대결이나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대결이 아닌 일반 국민을 중심으로 놓고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수사지휘권('수사지휘'라는 이름에 대한 경찰의 반발이 컸던 점에 비춰 '수사에 대한 사법통제권')을 복원 포함한 검경의 수사에 대한 통제 방안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는 것도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지 않을까.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박원경 기자seagu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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