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사기'..烹 당하기전 떠나거나, 복수의 칼을 갈던가

기자 2022. 4. 25.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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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 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⑭ 토사구팽의 정치학

범려, ‘토사구팽’ 말 남기고 떠나

상업으로 富쌓아 백성에 나눠줘

오자서, 자결 명받고 ‘멸망 예언’

충정외면한 王은 결국 대가치러

오자서라는 사람이 있었다. 2500년 가까이 복수의 달인으로 일컬어져 온 인물이다. ‘사기’를 저술한 사마천도 오자서는 복수를 통해 자신을 성장시켰고 공명을 크게 이뤘다며 아낌없이 칭찬했다.

보통 복수는 추가적 손해나 희생을 동반한다. 하여 복수에 매몰되면 복수자의 삶도 피폐케 되기 일쑤다. 오자서는 이와 정반대의 길로 복수에 성공했으니 사마천이 크게 상찬할 만했다. 그런데 오자서가 달인의 솜씨를 발휘한 건 복수뿐만이 아니었다. ‘토사구팽’을 되치는 솜씨 또한 일품이었다.

흔히 ‘팽’이라고 줄여 부르는 토사구팽에 대처하는 길로는 적어도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목적이 달성되면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팽시킨 이에게 통쾌하게 되갚아 주는 길이다.

첫째 길은 왠지 공허해 보일 수 있다. 장량은 한 고조 유방이 천하의 패권을 거머쥘 때의 핵심 측근이었다. 그러나 그는 개국공신들이 차례대로 팽당하는 모습을 보고는 고조 곁을 멀리 떠나 깊이 숨어 살았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장량이 속세를 떠나 신선이 됐다며 미화했지만 팽을 피해 떠나는 장량의 뒷모습이 씁쓸해 보이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훌쩍 떠나서 멋진 여생을 보낸 이도 있었다. 범려라는 이가 대표적 예다.

그는 와신상담 고사의 주인공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복수할 때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같이 공을 세운 동료에게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가 삶아진다는 말을 남기고는 구천 곁을 표연히 떠나 타지에 정착했다. 토사구팽의 지적재산권자가 범려였음이다. 그는 그곳에서 이름을 도주공으로 바꾼 후 상업에 손대 엄청난 부를 쌓았다. 그러더니 재산을 백성에게 골고루 나눠준 후 사랑하는 이와 함께 속세를 훌훌 떠났다. 훗날 상업의 신으로 추앙받기에 부족함 없는 삶이었다. 팽을 피해 떠나는 길이 꼭 공허함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 셈이다.

팽을 피하는 두 번째 길은 첫째 길에 비해 많이 위험하고 고통스럽다. 억울함을 머금은 삶을 살아내다가 무고한 죽음에 이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오자서가 바로 그러했다. 그는 부차가 아버지의 원수 구천을 칠 때의 일등 공신이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부차는 복수에 성공하자 바로 오자서를 멀리했다. 언제 팽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오자서는 부차 곁을 지켰다. 구천이 기필코 재기해 복수할 것임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부차는 직언을 일삼는 오자서가 갈수록 거슬렸지만 무작정 팽시킬 수는 없었다. 그러다 드디어 빌미를 잡았다. 오자서가 자기 아들을 부차가 적대하고 있던 제나라의 유력 가문에 양자로 들였기 때문이다.

부차는 바로 오자서에게 비수를 내렸다. 자결하라는 뜻이었다. 오자서는 담담히 비수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예언을 겸한 유언을 남겼다. “무덤에 가래나무를 심고 내 두 눈을 파내어 오나라 도성 성문에 걸어놓아라. 내 두 눈으로 부차가 망하는 모습을 보리라. 가래나무가 자랄 때쯤 구천이 복수에 성공할 터, 이 가래나무로 부차의 관을 짜라”는 내용이었다.

이 말을 들은 부차는 격노했고 오자서의 시신을 강물에 버렸지만 역사는 오자서의 예언대로 펼쳐졌다. 부차는 결국 구천에게 처참하게 보복당해 죽음에 이른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자결하기 전 얼굴을 하얀 천으로 가리고 관에 넣어달라고 했다. 죽어서 오자서를 볼 면목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오자서에 대한 패배를 인정한 것이다. 오자서는 이렇게 자신의 충정을 외면하고 자기를 팽시킨 부차에게 역사라는 무대를 빌려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했다.

그런데 몰인정한 얘기지만, 토끼를 잡은 사냥개가 팽당할 때 그 사냥개를 안타까워한 적이 얼마나 될까? 팽시킨 자를 인간답지 못하다 욕한 적은 또 얼마나 있었을까? 혹 팽을 당한 이나 팽을 시킨 이 모두 어느 정도라도 ‘급’이 돼야 안타까워도 하고 비난도 했던 것은 아닐까? 급이 안 되는 이들 사이에서의 팽은 그들의 저급한 일상사일 뿐, 그러한 이전투구를 안타까워할 일은 별로 없기에 하는 말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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