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NYT vs 부진한 WP...‘저널리즘 집중’이 명운 갈랐다 [송의달 LIVE]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의 양대(兩大) 미디어이다. 1851년과 1877년에 각각 창간한 두 회사는 디지털 유료 구독자 숫자에서 세계 1위와 2위이다. 2020년 말 기준 디지털 유료 가입자는 NYT가 669만명으로 WP(300만명) 보다 많았다.
NYT는 올해 1월 말 1000만명의 유료 구독자(디지털과 종이신문 합계)를 확보했다. 당초 목표 시점(2025년 말)을 3년 넘게 앞당긴 것이다. 회사측은 ‘2027년 말까지 1500만명 디지털 유료 가입자’라는 새 목표를 내놓았다.
◇NYT 유료 구독자, 1천만명 돌파
NYT가 2016년 말 180만명이던 디지털 유료 가입자를 5년여 만에 920만명으로 늘린 일은 세계 미디어 업계에서 ‘기적(miracle)’으로 불린다. 제임스 팰로우(James Fallows) 전 US뉴스&월드 리포트 편집장은 “의제 설정과 콘텐츠, 호기심, 인재, 표현 수단에서 NYT를 능가하는 언론사는 없다. 지금의 NYT는 상상력의 기적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10여년 전 14억달러의 빚에 허덕이던 NYT는 빚을 모두 갚고 최근 인수합병 후에도 5억달러 넘는 현금을 갖고 있다. 2021년에는 9년 만에 매출 20억달러를 넘었으며(20억7498만달러), 이 가운데 13%(2억6800만달러)를 영업 이익으로 남겼다.
이런 성공은 1896년부터 NYT의 최대 주주인 설즈버거(Sulzberger) 가문과 경영진, 종업원들이 합심해 디지털 전환과 콘텐츠 제작·유통, 공격적인 M&A와 연구개발(R&D)을 한 결과이다.
단적으로 NYT는 올 1월 5억5000만달러(약 6650억원)를 들여 디지털 스포츠 저널리즘 매체인 ‘디 애틀레틱(The Atheletic)’을 인수했다. 2016년 출범한 ‘디 애틀레틱’의 유료 가입자만 120만명이다. (※ NYT의 1000만명 유료 구독자는 ‘디 애틀레틱’의 120만명을 포함한 것임)
디지털 상품 개발을 위해 NYT는 2021년 한 해에 1억6087만달러(약1930억원)를 쏟아부었다. 이는 2019년(1억641만달러) 대비 51% 늘어난 것이다. 이렇게 만든 게임(Games), 쿠킹(Cooking) 같은 디지털 상품(digital only product)의 경쟁력은 상당하다. 디지털 유료 구독자의 27%에 해당하는 214만명은 NYT의 뉴스를 읽지 않고 이들 상품만 이용한다.
여기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말부터 NYT를 상대로 벌인 ‘언론 전쟁’과 2020년 3월 시작된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디지털 유료 구독자가 크게 늘어나는 ‘행운’도 작용했다.
◇WP는 300만에서 270만명으로 감소
이와 대조적으로 2013년 8월 억만장자인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 아마존 창업주가 그레이엄(Graham) 가문으로부터 2억5000만달러에 인수한 워싱턴포스트(WP)는 상대적으로 지지부진하다.
WP는 빅테크 기업 아마존(Amazon)과 연계한 디지털 기법 도입과 풍부한 인력 및 기술 투자로 NYT를 추월하거나 버금갈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인수 후 WP 편집국을 찾았던 베이조스는 마틴 배론(Martin Baron) 편집인과 2주에 한번씩 화상(畫像) 회의 등을 하며 WP에 관심을 쏟아왔다.
그는 2014년 3월부터 미국 전역의 지역신문 정기(定期) 구독자들에게 무료로 WP 사이트와 앱에 접속토록 하는 ‘디지털 파트너 프로그램(digital partner program)’을 시작했다. 모회사인 아마존과 제휴해 약 4000만명의 ‘아마존 프라임’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WP 디지털판 6개월 무료 구독’과 ‘6개월 후 정상 가격의 3분의 1 제공’ 같은 서비스도 내놓았다.
아마존의 성공 방식처럼, 당장 수익 증대 보다 디지털 뉴스 소비자를 양적(量的)으로 늘리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그 결과 2015년 10월 WP의 인터넷 월간 순방문자(unique visitor) 수는 6690만명을 기록하며 6580만명에 그친 NYT를 앞질렀다.
하지만 WP의 우위는 오래 가지 못했다. 인터넷 트래픽 조사기관 ‘콤스코어(Comscore)’ 집계를 보면, 2020년 10월 9200만명이던 WP의 월간 순방문자 수는 작년 10월 6600만명으로 28% 급감했다. 올해 2월 8680만명으로 반등했지만, NYT의 월간 순방문자(1억2709만명) 보다 4000만명 이상 적었다.
디지털 유료 구독자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WP 내부 자료를 인용해 “2021년 1월 300만명이던 WP 유료 디지털 가입자 숫자가10개월만에 270만명으로 떨어져 회사에 비상이 걸렸다”고 보도했다.
◇저널리즘·스타 기자로 매진하는 NYT
두 회사의 성장 전략은 몇가지 점에서 극명하게 엇갈린다. NYT의 주력 무기는 ‘스타 기자’들과 ‘스타 컬럼니스트’들, 즉 저널리스트들의 전문성인 반면, WP는 소프트웨어와 기술을 더 중시한다.
NYT에는 토머스 프리드먼(69), 데이비드 브룩스(61), 폴 크루그먼(69), 게일 콜린스(77) 같은 유명 칼럼니스트들은 물론 분야별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전문기자들이 수두룩하다. 1996년부터 20년 넘게 백악관을 취재 중인 피터 베이커(Peter Baker·55) 수석기자와 150만명의 트위터 팔로워를 갖고 있는 매기 해버먼(Maggie Haberman·49) 워싱턴지국 기자, 1976년부터 45년간 과학전문기자로 일한 도널드 맥닐(Donald McNeil), 외교안보 분야 전문 기자인 데이비드 생어(David Sanger·62)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2~3년새 NYT가 영입한 에즈라 클라인(Ezra Klein), 벤 스미스(Ben Smith), 카라 스위셔(Kara Swisher)는 신생 인터넷 매체인 복스(Vox)와 버즈피드(BuzzFeed), 리코드(ReCode)의 간판 인물이었다. NYT 편집국 내 4명의 부국장(deputy managing editor) 가운데 한 명의 주 임무는 외부의 우수한 기자를 뽑아오는 일이다.
이와 달리 WP에는 세계적 유명 저널리스트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다. 조지 윌(George Will·81), 유진 로빈슨(Eugene Robinson·68), 다나 밀뱅크(Dana Milbank·54) 같은 대표 칼럼니스트의 존재감은 미약하다. 편집국 최고위직인 편집인(executive editor) 조차 발탁 직전까지 보스톤글로브, AP통신에서 각각 일한 마틴 배런과 샐리 버즈비(Sally Buzbee)를 임명할 정도로, WP의 스타 기자 양성은 전략이 없고 소극적이다.
◇WP는 아크·제우스 같은 ‘기술’이 강점
2013년 8월 당시 580명이던 WP 편집국 인원은 제프 베이조스의 지원으로 꾸준히 늘어 현재 1050명이다. 200여명의 디지털 엔지니어·기술팀과 인공지능(AI) 및 빅데이터 연구·분석팀도 별도로 있다. 부족한 취재 인력 탓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WP는 ‘제우스(Zeus)’ ‘아크(Arc)’ 같은 자체 개발한 콘텐츠관리시스템(CMS)’과 여러 뉴스 채널과의 협업에 강점을 보이고 있다. ‘제우스’는 리얼타임(real time) 입찰 방식의 광고 플랫폼이며, ‘아크’는 디지털 기사 작성 첨단 소프트웨어이다.
WP는 아크를 LA타임스를 포함한 국내외 언론사에 라이선스 유료로 판매해 상당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베이조스가 인수한 후, WP에는 기사 작성 단계부터 기자와 엔지니어, 광고 담당자들이 이들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나란히 앉아 일하는 문화가 형성됐다.
요약하자면 NYT의 본원 경쟁력이 ‘저널리즘’과 ‘스타 기자’라면, WP는 ‘기술(technology)’이다. 특히 눈여겨 볼만한 것은 5대째 연속으로 NYT 발행인을 맡고 있는 설즈버거 가문의 역할이다.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도 저널리즘은 놓칠 수 없다”는 각오로 직접 경영을 챙기는 설즈버거 가문은 2000년대 들어 최악의 경영 위기에서도 편집국 인원을 1100명 이상으로 유지했고, 미국 신문업계에서 가장 높은 기자 연봉 지급 약속을 지키고 있다. 현재 NYT 편집국 인원은 1750여명이다.
◇“디지털 시대에도 고급 저널리즘은 불멸”
WP에선 레이건 대통령 시절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프레드 라이언(Fred Ryan·67)이 2014년부터 CEO를 맡아 베이조스의 대역을 하고 있다. WP가 유망 외부 기업을 상대로 인수합병(M&A) 입질만 하다가 결행(決行)을 못하는 것은 이런 지배구조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WP의 총구독자 가운데 55세 미만 인구는 14%인 반면, NYT의 미국내 총구독자의 58%는 MZ세대이다. 이는 WP가 변화 대응에도 게으르다는 방증(傍證)이다.
노혜령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는 “NYT와 WP의 엇갈리는 성적표는 충분한 콘텐츠 혁신이 병행되지 않는 하드웨어 투자는 효과가 제한적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투철한 저널리즘 정신으로 무장한 발행인과 기자들, 그리고 고급 저널리즘(high-quality journalism)은 디지털 시대에도 불멸(不滅)의 존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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