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마스크를 벗느니 마느니를 갖고 논쟁을 하고 있지만, 중국은 코로나와 관련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중국 최대 경제도시 상하이가 코로나 확산으로 지난달 28일부터 사실상 봉쇄되어 있는데, 한달이 다 돼 가는 지금도 해제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단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고생이지만 여파는 나비효과처럼 중국을 넘어 우리나라로, 전세계로 미치고 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고 상하이 일대는 중국의 자동차와 전자 제조업이 몰려있는 최대 수출산업기지이기 때문이다. 중국에 대한 산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직격탄을 맞는다. 중국에서 생산한 공산품이 있어야 물가를 낮출 수 있는 미국과 유럽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물가를 잡지 못하면 미국은 금리를 더 많이, 더 빨리 올려야 한다. 이는 또다시 돌고돌아 우리나라에 충격을 준다.
중국의 코로나19 방역정책은 ‘제로 코로나’다. ‘위드 코로나’와 정 반대다. 코로나 확진자 발생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무리한 일도 많이 벌어진다. 확진된 6세 미만 어린이도 부모와 분리해 어린이 전담병원에 격리하는 바람에 강한 비판이 일기도 했다.
코로나19 글로벌 확산은 몇차례 변곡점을 맞았다. 대표적인 것이 백신의 등장, 그리고 오미크론 변이의 등장이다. 서구 국가들은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보다 빨리 통제를 완화했고, 경제와 사회활동을 정상화했다. 오미크론은 전염성이 너무 강해서 결국 확진자 증가세가 정점을 지나야 진정된다는 사실을 각국이 경험했다.
반면 중국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고강도 봉쇄 정책에 주민들의 반발이 심해지는 상황에서도 ‘제로 코로나’ 라는 기조를 수정할 뜻이 없어 보인다. 왜 그럴까? 중국은 언제까지 제로 코로나를 고집할까? 그 답은 시진핑 국가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가 쥐고 있다.
[그게 뭔데?] 중국 '제로 코로나' 정책의 특징
제로 코로나. 14억 인구 중 단 한 건의 코로나 발생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중국어로는 ‘칭링(淸零)’ 정책이라고 한다. 2020년 4월8일, 코로나19 유행이 가장 먼저 시작된 우한에서 76일간의 봉쇄를 끝낸 뒤 , 중국 정부는 ‘역동적 제로 코로나’(動態淸零) 정책을 발표했다.
확진 사례가 발생하면 넓은 반경을 위험 구역으로 지정해 주민들의 발을 최소 14일간 묶는다. 누적 확산 사례가 100건이 넘어가 감염 사슬 추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도시 전체를 봉쇄한다.
이런 지역봉쇄를 ‘펑청(封城’이라고 한다. (우리 한자발음으로는 봉성, 성의 출입구를 봉하여 막는다는 뜻이다.) 아파트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그 단지 전체를, 공장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공장 전체의 출입을 막아버린다. 공무원과 지역 봉사자들을 동원해 식료품 등 생필품을 가정으로 배달한다. 필수 쇼핑을 위한 외출을 허용했던 서구 국가들의 초기 봉쇄와 이 점에서 차이가 난다.
아예 도시 전체를 봉쇄하는 스케일도 중국 제로코로나의 특색이다. 인구 1,750만명으로 중국 4대 도시이자 수출산업 중심지 중 하나인 광둥성 선전시가 3월14일부터 일주일 동안 멈춰 섰고, 인구 1천300만명의 시안, 인구 800만이 넘는 창춘, 인구 9백만의 산업도시 셴양 등도 ‘펑청’을 겪었다. 3월 중순 지린성에선 2,410만명 주민 전체에 대해 성내외 이동을 전면 금지했다. 공안이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는 중국에서, 외출금지 명령을 어겼다간 두들겨 맞기도 한다.
[SBS 현장영상] 봉쇄 3주차 상하이 푸동에서 '대규모 저항 시위'…공산당보다 무서운 건 '굶주림' [ https://www.youtube.com/watch?v=2ogWNJgAc70&t=31s ]
지난 4월6일 산둥성의 한 도시에서는 방역 집행 공무원으로 추정되는 두 사람이 한 남성을 붙잡고 강제로 머리를 밀어버리는 모습이 영상에 찍혔다. 외출금지명령을 어겼다는 게 이유였다.
제로 코로나 정책의 두 번째 기둥은 대대적인 핵산검사다. 어느 정도 대대적이냐 하면, 2021년 9월 인구 푸젠성 샤먼에 델타 변이 확산으로 확진자가 속출하자, 5백만 인구의 샤먼시민 모두를 4차례에 걸쳐 검사했다. 2021년 7월에는 인구 930만의 난징(南京) 전 시민에 대해, 지난달 인구 1,750만의 선전에서도 통제기간 중 전 시민을 상대로 3차례 PCR 검사를 실시했다. 인구 2,600만의 상하이도 예외가 아니다.
제로 코로나의 세번째 특징은 무모하리만치 과격하고 단호한 격리시설 수용이다. 컨벤션 센터 등에 대규모 격리시설을 짓고, 확진된 사람을 강제 수용한다.
[그래서, 통했나?] 나쁘지 않았다, 오미크론 등장 전까지는...
우리의 작명법을 원용하면 중국의 제로코로나 정책은 ‘차이나’의 앞글자를 따서 ‘C-방역’이라 부를 수 있을텐데, C-방역의 성적은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로만 보면 준수하다.
2020년 9월 중국은 방역 표창대회를 열고 코로나19와의 전쟁 승리를 선언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한창 대유행과 봉쇄로 시름하던 때였다. 시진핑 주석은 방역 유공자들에게 직접 훈장을 수여하며 “코로나19 전쟁에서 거둔 중대한 성과는 중국 공산당과 사회주의 제도의 우수성을 보여줬다”고 자찬했다. 당시만 해도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일상을 되찾는 나라가 될 것처럼 보였다.
2021년 9월 까지만 해도 중국은 누적 확진자를 10만 명 이내, 누적 사망자 수를 5000명 아래로 묶어둘 수 있었다. 당시까지 누적 확진자로는 우리의 절반, 누적 사망자로는 우리의 2배 수준이었다. 중국의 엄청난 인구, 그리고 코로나19 최초 발생국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우수한 성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말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외국인 기자에게 이렇게 면박을 줬다.
오미크론, 중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2022년이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올해 1월 이미 베이징, 상하이, 텐진, 선전, 다롄 등 6개 성 9개 주요도시에서 오미크론이 확인됐다. 모두 정치 · 경제적으로 중요한 도시들이다. 1월 중순에는 오미크론 확진자들이 출근하지 못하는 바람에 닝보 항 등에서 물류차질이 빚어졌다. 코로나19를 이겨냈다고 안심하던 중국인들의 마음속에도 불안이 싹트기 시작했다. 올해 3월부터는 남부의 수출산업지대를 중심으로 오미크론이 확산하면서 확진자 그래프의 기울기가 급격히 올라가는 양상을 보인다.
중국의 1일 신규확진자는 지난 3월10일경부터 1,000명 대로 뛴다. 한국은 이때 일일 신규확진자가 30만명을 넘던 시점이니 그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적은 숫자이긴 하지만, 눈여겨 볼 것은 그래프가 튀는 양상이다. 오미크론이 먼저 휩쓴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나타났던 바로 그 급상승이다. 오미크론 본게임을 중국도 올해 3월부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상하이 봉쇄 사태의 시작
인구 2천6백만의 거대 도시로 성(省)급 행정구역에 해당하는 상하이는 원래 중국에서 가장 부드러운 코로나19 정책을 펴 왔던 곳이다. 누적 확산 사례가 100건을 넘어가면 도시 전체가 ‘펑청(封城)’이라는 대규모 봉쇄에 돌입했던 다른 도시들과 달리 상하이는 봉쇄구역을 작게 나누고 행정력을 단기간에 총동원해 1,2차 밀접 접촉자를 찾아내서 격리하는 방식을 썼다.
그런데, 오미크론은 아무리 행정력을 풀어도 밀접 접촉자 격리 방식으로는 쫓아갈 수 없을만큼 확산이 빨랐다. 지난 3월 말 중국의 공식 발표 상 코로나 일일 확진자가 5천 명 대로 폭등하고, 그중 절반이 상하이시에서 나오면서 상하이도 결국 대규모 봉쇄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중국 당국은 상하이에 대해 3월28일부터 순환식 도시 봉쇄를 실시하고, 2천6백만 시민에 대해 전수검사를 하기로 했다. 상하이의 중심인 황푸강을 기준으로 도시를 동서로 나눠 4일씩 교대로 집행하는 방식이다. 봉쇄구역 안에 있는 사람은 집안에 머물러야 하고 버스, 지하철, 택시 등 대중교통도 운영하지 않는다. 또 봉쇄구역 내 기업은 물, 전기, 연료, 가스, 통신 등 공공 서비스를 제외하고는 재택근무를 하라고 당부했다.
마구잡이식 격리...시설과 급식도 열악
중국 당국 나름으로는 무려 76일간 도시 전체를 봉쇄했던 우한의 경우보다 유연한 접근법을 채택한 것이지만 봉쇄의 부작용은 만만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지성 SBS 베이징 특파원은, 이미 음성판정을 받았는데도 증상 유무와 경중에 관계없이 다른 확진자들과 뒤섞여 열악한 시설에 격리돼 있는 교민의 목소리를 전하기도 했다.
[SBS 김지성 특파원의 리포트] 중국 분위기 심상찮다…봉쇄 비난하는 노래에, 은어 등장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719852 ]
상하이에 감자를 실어주러 왔다가 봉쇄 날벼락을 맞아 노숙 생활을 하게 된 트럭기사의 사연도 눈길을 끌었다.
웨이 씨는 3월28일 동료 기사 2명과 함께 대형 트레일러 3대에 감자 100톤을 나눠 싣고 산둥성 라이우 시를 출발했다. 3월 29일 새벽 상하이 도매시장에 도착해 감자를 하역하고 곧바로 라이우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그러나 상하이에 도착하자마자 도매시장이 폐쇄됐다. 다음날 봉쇄가 더욱 확대돼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감자 수송을 부탁한 중개상의 도움으로 겨우 인근 창고를 거처로 삼았다.
식당과 상점도 모두 문을 닫았으니 배를 채우는 게 문제였다. 중개상의 도움으로 식용유와 소금을 구해 감자를 익혀먹으며 연명했다. 상하이에 온지 10일만에 싣고 온 감자를 처분하는데는 성공했는데, 이번엔 도움을 주던 중개상이 확진 격리돼 연락이 끊겼다. 이들은 라이우로 돌아갈 통행증을 발급받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실패했다.
구역봉쇄로 인해 주택단지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주민들에게는 당국이 식자재를 갖다주긴 하지만 양도 부족하고 상태도 나쁘다는 불만이 소셜미디어에 잇따랐다. 현장에 시찰나온 공산당의 상하이 최고책임자에게 주민들이 언성을 높여 항의하는 사태도 빚어졌다.
억압적, 폭력적 집행
봉쇄나 격리 수용이 갑작스럽고 거칠게 집행되는 것도 문제다. 상하이 주민들은 흰색 방역복을 입은 요원들을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에 빗대 ‘백위병’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일 상하이 푸둥 신구에서는 시설로 격리되는 확진자의 반려견을 방역요원들이 길가에서 때려죽인 사건이 있었다. 확진이 되면 부모와 어린 아이도 떼어놓는 마당에 당국이 반려견 동반을 용인할 리 없었다. 확진된 주민이 할 수 없이 개를 놓아둔 채 격리시설행 버스에 올랐는데,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이런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주민위원회 관계자는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세균 같은 게 묻어 있을 수도 있다고 걱정이 돼 그랬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 외에도, 집에 갇혀있기 답답해서 또는 먹을 것을 구하러 집밖에 나온 시민을 ‘통제에 따르지 않고 밖에 나왔다’는 이유로 폭력적으로 다루는 모습이 영상에 찍혀 소셜미디어에 공개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중국에서 보기 힘든 강력한 주민 반발...공산당 직접 겨냥까지
그러다보니, 중국 본토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주민들의 반발이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 14일, 상하이 푸둥 신구의 한 임대아파트 단지에서 주민들이 집단 시위를 벌였다. 당국이 단지 내 11개동을 코로나19 감염자 격리시설로 지정했다며 퇴거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울부짖으며 무릎을 꿇고 퇴거 명령 취소를 호소했지만 방역복을 입은 공안들은 폭력적으로 이들을 제압했다. 격분한 다른 주민들이 쏟아져나와 나중엔 시위군중이 천8백명까지 늘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의 금기를 넘어 공산당을 직접 비난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봉쇄 지침을 어기고 집밖으로 나와 누군가와 전화를 하면서 격렬하게 공산당과 공산주의를 비난하는 남성의 영상도 소셜미디어를 타고 확산됐다.
당국의 코로나19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힙합 영상도 화제가 되었다. (물론 영상은 오래지않아 검열에 의해 삭제됐다.) ‘방략 아스트로(方略Astro)’라는 이름의 상하이 래퍼인데, 가사 내용은 이렇다.
이런 반발은 상하이라는 도시의 특수성과도 관련이 있다. 중국 북부에 정치와 군사 수도로서의 베이징이 있다면 중국 남부에는 경제 수도로서의 상하이가 있다. 상하이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외부와 교류, 교역 경험도 많아 훨씬 개방적이고 문화적 자존심도 높다. 그러니 베이징식 통제가 적용된 다른 도시들에 비해 반발도 더 크고, 정치적으로도 더 민감한 문제가 된다.
왜 제로코로나를 고집할까? (1) 중국산 백신의 문제
중국은 시노백, 시노팜 등 자국 제약사들이 만든 백신만 쓴다. 중국 백신은 바이러스를 비활성화시켜 인체에 주입해 항체를 만드는 전통적 방식-이른바 ‘사(死)백신’ 방식이다. 싸고 보관·유통이 쉽고, 부작용이 적지만, mRNA를 이용하는 화이자·모더나 백신보다 효과는 떨어져 이른바 ‘물백신’ 논란이 일었다.
세계보건기구(WHO) 자료를 보면, 중국산 시노백 백신의 기존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예방율은 화이자 백신의 절반 수준이었다. 오미크론 변이의 감염을 막는 능력은 더욱 약하다. 지난해 말 홍콩대학이 공개한 연구에 따르면, 화이자 백신 접종자 25명 가운데 5명이 오미크론을 막아냈지만, 시노백 백신 접종자 25명은 전원이 감염을 피하지 못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은 백신 접종율을 충분히 높인 뒤 위드 코로나로 나아갔지만, 자국 백신만 고집한 중국은 그런 접근법을 택하기 어렵다.
왜 제로코로나를 고집할까? (2) 중환자 치료 기반 부족
중국은 중증환자가 치료받을 수 있는 중환자 집중치료실(ICU) 병상이 부족하다. 중국 당국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중국의 중환자실 병상 수는 인구 10만명당 4.37개였다. 대한민국의 절반, 미국의 1/3수준이다.
지역별 격차도 크다. 중국 최대 도시인 베이징과 상하이의 인구10만명당 중환자 집중치료실 병상 수는 6개 이상으로 중국 평균보다 1.5배 많은 수준이지만 간쑤성 · 장시성 · 허베이성 · 푸젠성 · 안후이성 · 하이난 등은 3.5개 이하로, 중증 환자가 폭증할 경우 의료체계 붕괴 위험성이 크다. 가장 부유한 도시라는 상하이에서도 다른 병을 앓는 환자가 병원에 가지 못해 숨지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위드 코로나' 말했다가 '매국노'로 몰린 전문가
중국에선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원이 미국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산 바이러스가 중국으로 옮겨져 우한에서 첫 확산이 보고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를 중국인들의 애국적 투쟁으로 제압하여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확진과 사망을 기록했고, 그러면서 경제 성장도 이뤘다는 것이 중국의 C-방역 서사다. 그 정점에는 이 모든 것을 영도한 공산당의 지도자 시진핑이 있다. 방역은 정치다.
그러다보니 방향 전환이 쉽지 않다. 다른 나라의 경험과 바이러스의 과학을 살펴 ‘위드코로나’로 전환하자고 말한 전문가들은 각종 압력과 ‘매국노’ 비난을 받고 입을 닫아야 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장원훙이다. 장원훙은 상하이 푸단대 부속 병원의 간부로, 중국 내 유명한 보건 전문가다. 그가 지난해 7월29일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글을 썼다.
글이 올라오자 전직 장관급 인사, 명문대 교수를 비롯해 수많은 중국인들이 그를 비난했다. 바이러스는 박멸할 대상일 뿐 공존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이러스에 대한 항복 선언이라는 비판도 등장했다. 이는 '미국에 항복한 것'이라는 뜻이나 다름없는 정치적 공격이었다. 중국 당국은 코로나19 미국 기원설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일부 애국주의 네티즌은 그를 ‘당대의 왕징웨이’라고 비난했다. 왕징웨이(汪精衛)는 1940년대 중화민족을 배반한 친일파 매국노 오명을 쓴 인물이다. '미국이 키운 개(美國養的狗)' 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결국 장원훙은 20일만에 '현재 정책이 적합하다'며 자신의 주장을 꺾었다.
중국 당국에게서 권위를 인정받는 의학자라 해도 방역정책 전환을 얘기하기 쉽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사스를 퇴치해 중국의 의학 영웅으로 추앙받는 중난산 중국 공정원 원사는 지난 6일 영국 옥스퍼드 대학이 발행하는 학술지 <내셔널 사이언스 리뷰>에 장기적으로 제로 코로나는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글을 썼다.
이 글은 발표된 지 10여일 만인 지난 18일 중국어로 번역돼 중국 매체들에 실렸지만 곧 삭제됐다. 장원훙처럼 매국노 소리를 듣진 않았지만, 그의 주장이 현재 ‘당국의 정책 방향’과 반대된다고 평가된 것이다.
제로코로나 고수하는 시진핑 "승리는 인내에서 나온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3월17일 공산당 중앙정치국 회의를 소집해 코로나19 방역에 한층 더 만전을 기울일 것을 지시했다.
시진핑 주석은 “끝까지 버틴다면 결국 이겨낼 것”이라며 “모든 지역과 각 부처, 사회 각계가…방역에 소홀함이 없도록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적이고 꼼꼼한 대처로 ‘실시간 코로나 제로(動態清零)’를 실현하고 전염병 확산세 억제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상하이 봉쇄의 경제적 충격
최고지도자의 뜻이 '버티면 이긴다' '제로코로나 실현'에 가 있다보니 상하이 뿐 아니라 선전 등 주변 대도시 지역이 돌아가며 봉쇄에 시달린다. 이 때문에 중국 자동차 · 전자 산업 전체가 충격을 받고 있다. 일대에 공장을 둔 테슬라 애플 등 글로벌 기업까지 아우성을 치자 당국이 나서서 일부 예외적으로 공장 가동을 허용하기도 했다. 직원들이 공장 내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밖에 나오지 않는 조건을 달았다. 하지만 주거지에 격리 또는 봉쇄돼 있는 직원들이 출근하지 못하고 자재와 부품 조달 차질도 여전해서 생산이 정상화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중국 경제성장률은 올해 1분기 (1~3월) 4.8%를 기록했다. 그 자체로는 그리 나쁜 성적은 아니다.
문제는 1분기(1-3월) 성장의 대부분은 1,2월에 달성한 것이고, 경제 허브의 코로나 급속확산으로 난리를 겪은 3월의 경제성적이 상당히 나쁘다는 것이다. 3월 중국의 소매판매는 1년 전보다 3.5% 감소했다. 소비 감소는 2020년 7월 이후 처음이다. 고용 통계도 나빠지고 있다. 생산도 둔화했다. 이런 상황이 반영될 2분기 성장률은 그리 좋지 않을 것이라고 뉴욕타임스 등은 전망했다.
한국경제에 튀는 불똥
현대경제연구원은 중국 경제성장률이 1%p 떨어지면 한국 경제성장률은 0.5%p 하락 압력을 받는다고 분석한 바 있다. 우리 핵심산업인 배터리, 반도체 등은 중국에서 들여오는 부품과 자재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정형곤 선임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배터리 관련 수입액의 80% 이상, 반도체 관련 수입액의 30% 이상이 중국에서 들어오는 것이다.
정 선임연구위원은 "자동차와 휴대전화 부문은 상하이로부터의 수입 비중이 각각 11.2%, 14.3%로 높다"면서 "한국과 경제 관계가 더 긴밀한 장쑤성, 광둥성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면 상하이 봉쇄보다 영향이 더 클 것으로 예상돼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코트라(KOTRA) 상하이무역관도 경고 메시지를 담은 보고서를 냈다. "장쑤성, 저장성, 안후이성 등 상하이 인근 지역도 계속해서 엄격한 통제 정책을 유지하고 있어 컨테이너 물류 운송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며 기업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또 "상하이 방역 통제 장기화는 이제 중국 전역의 공급망과 물류 운영에 상당한 압력 요인으로 자리하고 있다"며 “중국 항구의 수출입 통관 지연이 지속되고… 4월 무역상황은 더욱 악화할 것”이라는 현지 전문가들의 전망을 전했다.
국내 생산현장에도 직접적인 충격파가 나타나고 있다. 경형SUV 캐스퍼를 생산하는 광주글로벌모터스(GGM)는 중국에서 생산하는 에어백 컨트롤 유니트(ACU)를 공급받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회사는 캐스퍼를 하루 평균 200대 가량 생산해 왔는데, 중국산 부품 수급 차질로 18일 오후부터 20일까지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했다.
국내 금융시장에도 상당한 충격이 예상된다. 중국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생산해 내는 공업제품이 없으면 미국 등 각국은 물가를 낮출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중국에서 진행중인 코로나 봉쇄 사태는 가뜩이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뒤엉킨 글로벌 공급망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물가(인플레)가 안 잡히면 미국은 금리를 더 빨리 더 많이 올려야 할 것이고, 그러면 한국도 따라서 금리를 더 올려야 하는 압력이 생긴다. 안그러면 외국자본이 빠져 나갈 우려가 크다.
그러나 금리를 올리면 이미 빚을 많이 끌어 집을 샀거나 생계자금으로 쓰고 있는 사람들,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동안 대출로 연명해 온 자영업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중국의 코로나 장기화가 우리 경제에도 엄청난 딜레마를 제기하는 것이다.
결국은 시진핑 '3연임 즉위식' 때문
중국은 국가권력과 시민의 관계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는 다르다. 중국의 지도부는 '중국은 너무나 방대한 나라이고 인구도 많아서, 모든 얘기를 다 들어줘 가면서 다스릴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개혁개방으로 지금의 중국을 만든 덩샤오핑 조차도 그랬다. 시민들 가운데 '중국공산당의 영도력 덕분에 이만큼 살게 됐다. 당의 강한 지도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제로 코로나 정책 덕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들보다 어쨌든 누적 확진 및 사망자가 현저히 적지않느냐는 주장도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러기 위해 지금 중국에서 벌어지는 것과 같은 통제를 감수할 것인가. 이는 가치관의 문제이고 선택의 문제다.
미국 선거에서 나온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라는 말이 있다. 그건 반만 맞는 말이다. 경제가 중요한 건 권력의 향방이 경제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먹고 사는 문제라면 권력은 죽고 사는 문제다. 어떤 사람들에게, 경제는 권력만큼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최근 수년간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올해 10월쯤 열릴 중국공산당 제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을 잡음 없이 관철시키는 일이다. 3연임은 중국 지도부의 수십년 관행을 깨고 '개헌을 통한 장기집권'을 하는 것이어서 '시 황제 즉위식'에 비유되며 많은 논란을 낳았다.
시진핑 3연임의 순조로운 확정을 위해 지금까지 각종 선전을 강화하고 반발여론은 검열로 무력화시켜 왔는데, ‘즉위식’에 해당하는 정치행사를 6개월 앞두고 다시 코로나가 창궐하는 상황을, 중국 공산당이 감당할 수 있을까? 더구나 지금은 베이징에서 1,200km 넘게 떨어진 상하이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올 여름 베이징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 상황을 중국 공산당이 용인할 수 있을까?
공산당도 현실을 모르지는 않으므로 때때로 세부적인 융통성은 발휘하겠지만, ‘제로 코로나’ 기조를 올 10월까지는 유지할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