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은 삐걱대던 탈냉전 시대의 종말 예고하는 것" [세상을 보는 창]

박병진 2022. 4. 2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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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러시아의 일방적인 승리 예상 빗나가
푸틴, 동부지역 친러 세력만 믿고 침공
친서방 국가 변모 간과.. 가장 큰 패착
2차대전 이후 유럽 최대 규모의 전쟁
향후 발트 3국·폴란드의 위기감 커져
러, 전승기념일 이전 전쟁 끝내려 할 것
30년간 유지돼온 국제질서 재편 전망
세계화 후퇴.. 신냉전 시대 회귀 주목
, 4강외교 탈피 국제 위상 키워야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이 18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성격과 특징, 세계경제에 미칠 파장 등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2주 정도가 전쟁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지난 30년간 유지돼온 국제질서는 재편되고, 탈냉전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오는 24일이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두 달째를 맞는다. 러시아의 일방적 승리에 단기전으로 끝날 것이라던 예상은 빗나갔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완강한 저항에 다급해진 러시아는 전쟁 수행 목표를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점령으로 수정한 뒤 최후통첩을 했다. 우크라이나는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발생한 가장 큰 규모의 전쟁. 냉혹한 국제정치의 역학관계가 불러온 이 전쟁은 신냉전 시대로의 회귀로 주목받는다. 미 달러화에 대한 도전과 함께 유럽연합(EU) 회원국의 에너지믹스(전원 구성비) 변화, 곡물 가격 급등 등 세계경제를 뒤흔든 악재가 하나둘이 아니다.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다 유가 인상의 직격탄을 맞은 우리에게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유튜브 채널 ‘삼프로 TV’에서 지구본 연구소를 진행하고 있는 최준영 박사. 지난 18일 만난 그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의 성격과 향후 진로를 물었다. “삐걱대던 탈냉전 시대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규정지었다. 명함에 적힌 그의 직함은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대학에서는 조경학을 전공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골프장 환경문제를 다뤘다. 도시 문제와 부동산에도 조예가 깊다. 군사 분야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얼마 전 한 일간지에 게재된 우크라이나군과 우리 군 전투장비를 비교한 그의 칼럼은 세간의 화제가 될 정도였다. 현재 직장으로 옮기기 전 10년간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을 거쳤다. 2018년부터는 방송을 통해 이야기꾼으로 거듭났다. 이쯤되면 ‘팔방미인’이 따로 없다. “천성이 산만하고 호기심 많아서…”라고 둘러댄다. 그러면서도 “계획의 프로세스를 아는 게 중요하다. 쓰는 용어와 히스토리만 다르지, 어느 분야든 다 비슷하다”며 남다른 지식 습득과 축적의 과정을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그렇게 흐름을 쫓았다고 했다.

―전면전이 될 것으로 예상은 했나.

“전쟁이 시작되기 전, 러시아군의 위협에 우크라이나가 당황하거나 우왕좌왕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내전을 치른 탓인지 러시아군 기세에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러시아가 침공해도 쉽지 않겠다 여겼다. 그래도 전면전이 아닌 동부 일부, 마리우폴, 흑해 주변지역 등에 그치는 제한적인 전투가 될 것으로 봤다. 잘못 판단했다.”

―러시아가 쉽게 승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당초 미국식 ‘충격과 공포’ 작전을 통해 우크라이나 지도부를 수도 키이우에서 밀어내고 친러 정권을 세울 계획이었다. 그런데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강제병합 이후 8년간 우크라이나가 어떤 나라로 변모하는지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의 친러 세력만 믿고 나머지 지역에서 친서방 국가로 변모하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가장 큰 패착이다. 러시아에 크림반도를 뺏긴 우크라이나군의 각성도 무시할 수 없다. 2015년 군 개혁에 나선 우크라이나군은 소련 시절 군사체제 흔적을 지우는 대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과 언제든지 협력·호환할 수 있는 군사력을 키우는 데 절치부심했다. 여기에는 미국의 독특한 지원도 거들었다. 미국은 2015년 ‘우크라이나 자유법’을 만들었는데, 우크라이나군이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고 일정 성과를 내야만 지원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이러다 보니 부패했던 역대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이 지원금에는 손대지 못했다. 미군은 또 젊은 우크라이나 장교들을 미국으로 데려가 교육훈련을 했다. 이렇게 양성된 우크라이나군 전투력을 미군은 높이 평가했다. 무엇보다 유럽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임에도 국민들은 군을 가장 효율적이며 개혁적인 집단이라고 믿었다. 지금 러시아군과 차별화되는 대목이다.”
―우크라이나군이 펼친 시가전이 독특한데.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과 마주하며 충돌하는 전선을 만들지 않았다. 대면 접촉을 기피했다. 고층건물이 들어차고, 지하 공간과 구조물들이 복잡하게 얽힌 도시로 러시아군을 끌어들여 후방을 때리는 전술을 구사했다. 또 보급물품을 운송하는 러시아군의 약점을 노리고, 대전차미사일 ‘재블린’ 등을 동원해 유류 공급 파이프라인 등 군수지원시설을 집중 공격했다. 그래서 연료가 떨어져 버려진 러시아 전차와 장갑차가 부지기수였다. 러시아군 전력을 소모시키는 이런 형태의 전투 방식은 상당 부분 전과를 올렸다. 물론 우크라이나군 피해도 컸다.”

―러시아의 침공이 우크라이나에서 다른 유럽 국가로 확산될 조짐은.

“지금 당장은 없을 것 같다. 그렇더라도 러시아가 향후 발트 3국(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과 폴란드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발트 3국과 폴란드가 느끼는 위기감은 한층 커졌다. 이들 국가가 앞뒤 가리지 않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한 배경이다.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다음 차례가 자신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전쟁의 종착역은.

“전선이 동부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여기 우크라이나군 핵심 전력이 있다. 러시아군은 이를 괴멸시키는 것이 최소한의 목표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영토를 내주더라도 평화는 구걸하지 않는다는 결의에 차 있다. 힘과 힘의 대결로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러시아군의 무차별 공격이 있을 것이고, 아마도 5월9일 전승기념일 이전에 전쟁을 끝내려 할 것이다. 앞으로 2주 정도가 분수령이다.”

―푸틴 대통령의 축출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현재로선 대안이 없다. 오히려 푸틴 축출은 중장기적으로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러시아군 내부에서 동요나 폭동이 일어날 경우는 예외로 하자.”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도 각성하게 만들었다고 보는데.

“삐걱대던 세계화와 탈냉전은 이제 끝장났다. 지난 30년간 유지돼온 국제질서는 재편될 것이다. 이전과 비슷한 세계는 없다고 보면 된다. 세계화의 후퇴가 폭력적인 후퇴가 될지, 아니면 가랑비에 옷 젖는 것처럼 서서히 이뤄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우리에겐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지지 못할 때 어떤 신세로 전락할지 일깨웠다.”
―지난 8일 유엔 긴급총회에서 러시아의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정지 결의안이 통과됐다. 회원국 간 이해충돌로 지지부진하던 안보리 개혁 논의가 재점화할 것으로 보나.

“러시아의 전쟁범죄 행위가 더욱 심화된다면 상임이사국 재편까지도 고려하는 단계로 비화할 수 있다. 그렇다고 독일이 상임이사국 가는 것을 유럽 여러 나라들이 좋아할까, 일본이 간다면 우리가 박수칠 수 있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외교노선은.

“4강외교 틀에서 벗어나 대한민국만의 ‘룸’을 만들려는 쪽으로 움직여야 한다. 공동의 이해관계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협력을 확대하는 동시에 국제사회에 문제가 있을 때 이를 해결하고 중재할 수 있는 국가로서 위상을 키워야 한다. 대한민국 스스로 깎아내리지 않는다면 충분히 그런 자격이 있고, 능력 발휘가 가능하다고 본다.”

―러시아가 디폴트(채무상환불이행)에 직면하자 달러화 대신 루블화 결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전투에서는 위력을 잃어가지만 경제전쟁에서 선전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는데.

“푸틴 대통령은 전쟁 수행기간 러시아 경제 핵심지표를 어떻게 떠받칠지에 대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지표만 보고 러시아가 잘 버티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성급하다. 루블화의 국제화는 자원 하나만 가지고는 힘들다. 루블화 결제가 늘면서 ‘달러 패권’을 잠식할 것으로 보는 전망도 시기상조인 것 같다.”

―전쟁이 한창이지만 유럽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는 꺾이지 않고 있다. 유럽이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줄여 러시아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겠나.

“상당 부분 있다. 제로 퍼센트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대체할 수 있는 수준, 가령 대체에너지 15% 선까지는 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렇더라도 이번 전쟁은 청정에너지로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다는 과도할 만큼의 낙관론을, 좀 더 현실론 쪽으로 전환하게 만들었다. 상호 공존을 통해 에너지믹스와 수급 정책을 바꿔나가야 한다는 공감대를 마련한 것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로선 어쩌면 가장 취약한 상황을 맞이했다고 볼 수도 있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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