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나의 쌍꺼풀 해방일지

10대 시절에는 쌍꺼풀이 부러웠다. 최재성과 임성민과 최수종이 최고 미남으로 평가받던 시대였다. 모두 쌍꺼풀이 있었다. 미남의 필수 불가결 조건이었다. 어머니는 손창민을 좋아했다. 티브이로 드라마를 보다가 말씀하셨다. “손창민이는 눈이 우째 저래 이쁘노.” 나는 옆에 앉아 내 눈을 생각했다. 쌍꺼풀이 전혀 없는 작은 눈. 짙은 쌍꺼풀을 가진 어머니는 어찌하여 아버지의 ‘무쌍(쌍꺼풀 없는)’ DNA에 승리하지 못한 결과물을 옆에 둔 채 손창민을 칭찬하는 걸까. 야속했다.
이정재가 등장하자 모든 게 바뀔 것 같았다. 1990년대에 그는 ‘무쌍 신세대 미남’이라는 좀 민망한 이름으로 불렸다. 나는 그 눈이 좋았다. 적어도 장동건 눈보다는 내 눈에 가까웠다. 물론 쌍꺼풀이 없다는 것 외 이정재와 나의 공통점은 전혀 없다. 그래도 나는 심지어 이정재와 나를 동일시하는 마음의 만행을 저지르면서까지 ‘무쌍’의 시대가 오기만을 바랐다. 그런 일은 금방 일어나지 않았다. 이정재는 홀로 독특한 존재였다.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를 보다가 배우 손석구의 얼굴에 찬탄했다. 카메라는 쌍꺼풀이 없는 얼굴을 시도 때도 없이 극단적 클로즈업으로 애무했다. 10년 전만 해도 손석구는 로맨스의 주인공을 맡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조폭 영화에서 ‘최고 칼잡이’ 정도의 타이틀로 등장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요즘 인기 있는 남주혁도 박서준도 쌍꺼풀이 없다. 우리 대부분은 쌍꺼풀이 없다. 한국인의 쌍꺼풀 비율은 30% 정도다.
미의 기준은 바뀐다. 무쌍 배우가 늘어난다는 것은 우리가 마침내 한국인 고유의 얼굴을 패배감 없이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더는 미남 배우가 되기 위해 쌍꺼풀 수술을 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게 ‘공정 경쟁’과 ‘기회 균등’이라는 새로운 시대정신과도 꽤 어울리는 변화라고 믿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글을 읽은 부장님 나이의 당신이 “나 같은 무쌍이 다시 대세라네 껄껄껄” 하고 MZ 세대 직원들 앞에서 아재 농담을 해도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혹시나 모를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덧붙이는 말이다. 의외로 남자들은 그런 오해를 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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