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돈바스 침공 날, '역대급 흑자' 자랑한 푸틴..제재는 무의미한 걸까
돈바스 침공 날, '역대급 흑자' 자랑한 푸틴
우리가 지금까지 목격한 비극보다 더 큰 비극이 우크라이나에서 다시금 시작된다는 이야기입니다만, 이 비극이 시작되기 직전 푸틴은 서방 세계를 향해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러시아의 침공 행위를 중단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오히려 미국과 유럽에선 인플레이션과 실업, 경제 전망 위축 등을 유발하며 자충수가 됐다는 내용입니다.
"Russia withstood the unprecedented pressure. Situation is stabilising. Rouble exchange rate is back to early February level and supported by a strong balance of payments. As of the first quarter, surplus of the current account is above 58 billion (U.S.) dollars. And it is a historic maximum"
즉, 러시아는 서방 세계와 달리 전례 없는 제재를 잘 견디고 있다는 내용인데 특히 우려되는 건 러시아가 1분기에만 경상 수지 580억 달러 규모의 역대 최고 수준의 흑자를 기록했다는 부분입니다.
열린 뒷문 덕에 예상됐던 흑자
한 달 전 SBS 8뉴스는 원유‧가스 수출로 사실상 제재의 뒷문이 열렸고, 그 결과 러시아가 올 한 해에만 2천억 달러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할 것이란 내용을 국제금융협회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트위터를 인용해 보도한 바 있습니다.
▷ 러 국가부도 임박?…원유·가스 수출로 제재 뒷문 열려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679870 ]
이런 배경에는 독일 등 유럽 연합의 상당수 국가들이 러시아에 대한 높은 에너지 의존도(원유, 천연가스 등)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브뤼셀에 있는 유럽의 경제 분야 싱크 탱크인 Bruegel 소속의 한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EU가 개전 이후에도 천연가스와 석유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면서 매일 8억 유로, 우리 돈 1조 원을 러시아에 지급하고 있다고 설명한 적도 있습니다.
뒤늦은 후회
실제로, 제재 초기 루블화의 가치는 40% 가까이 폭락했고 이 과정에서 뱅크런 현상이 러시아 곳곳에서 목격됐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러시아 중앙은행은 금리를 2배 이상 올리고 개인의 외화 인출량을 엄격히 제한하는 등 러시아 내부는 정상 국가의 모습과는 동 떨어져 있었습니다. 때문에, 내부의 혼란으로 우크라이나보다 러시아가 먼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서방의 비웃음 섞인 예상들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유럽에서 받은 막대한 에너지 수출 대금으로 역대급 흑자를 기록하면서(금융 제재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외화가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루블화의 가치는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즉, 제재의 1차 목표 달성이 물 건너 간 겁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유럽 연합 국가 중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인 독일은 최근 "러시아와 교역하고자 러시아산 에너지에 의존했던 것이 큰 실책이었다."라고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주 뒤늦은 후회입니다.
제재의 효과는?
이렇게 러시아 실물 경제를 뒷받침하는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게 될수록 러시아 정부는 에너지 수출로 벌이들인 부를 우크라이나 침공이 아니라 자국 경제를 위해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미국이 최근 밝힌 제재의 방향성과도 맞아떨어집니다. 실제로, 지난 12일 대러 제재를 총괄하는 미 재무부의 부장관 월리 아데예모는 "러시아의 금융 시스템에 대한 압박을 지속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보다는 자국의 경제를 부양하는 데 더 많은 돈을 쓰게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문제는 시간입니다. 결국, 이런 제재로 인해 언제쯤 러시아가 손을 들고 침공 행위를 중단할지가 쟁점인 것입니다. 만약 동부 돈바스를 향한 러시아의 더 잔혹해진 군사작전이 모두 다 끝난 뒤까지도 제재가 효과를 내지 못한다면 그건 곧 실패를 의미합니다. 제재의 목적은 러시아의 경제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경제적 압박을 느낀 러시아가 침공 행위를 중단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동부 돈바스 침공 당일 국제사회의 제재를 비웃으며 역대급 흑자를 푸틴이 자랑한 건 서방 세계를 향해 앞으로 남은 시간 싸움에 자신이 있다고 선전포고를 한 건 아닐까요.
안상우 기자asw@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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